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욱 Oct 02. 2020

마감은 최고의 동기

연말까지 매일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이유

최근 100일 동안 매일 하루 한 편의 글을 쓰는 일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 같은 경우는 컨셉진에서 도전 과제를 받고 시작하신 모양이던데, 저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서(...) 그냥 개인적인 올해 하반기의 목표로 잡고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를 한 지 벌써 5년이 흘렀습니다. 브런치 북 프로젝트 2회에서 금상도 받고, 운 좋게 책도 두 권씩 내면서 어디선가는 작가로 불리고 있긴 하지만 최근에는 개인적인 사정들로(구직활동과 우울증)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글을 못 쓰는 순간에도 늘 글을 생각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글을 아예 쓰지 않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력서도 글이라면 몇 천자 정도의 글을 계속해서 썼기 때문입니다. 단지 글에도 일종의 태도가 있어서, 자기소개서나 이력서 같이 쓰기 싫고 딱딱한 글을 쓰다가 갑자기 여행기나 에세이로의 전환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글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글을 버린 것인데도 말이죠. 아래는 제가 글이 써지지 않고 한참 우물 파던 시기에 인스타에 올렸던 글입니다.

글이 나를 버렸는지 내가 글을 버렸는지 모르겠는 시간들이 흘러간다. 물론 당연히 내가 글을 버린거겠지. 생산적이지 않게 산지 한 달이 넘었다.

매일 자고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지만 하는 일이라곤 유튜브나 보다가 맥주를 마시고, 자소서를 쓰고 채용 과제를 진행하다 탈락 소식에 다시 맥주를 마시는 식이다. 생각만 많고 실행에 옮기지를 않는다. 게으름이 습관이 되어 들러붙었다.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었는지 잊어버렸다. 아니, 뭔가를 할 수는 있는 사람이었던가?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뒤늦게 시작해 끝냈다. 보는 내내 신념, 정의를 지키면서도 상처 받지 않고 패배하지 않을 수 있는 삶 따위에 대해 생각했다.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새로이를 응원했다. 물론 그런 삶은 현실에 없다. 언젠가는 나처럼 서른 줄의 아저씨가 되어 닳고 닳아 적당히 타협하는 삶에 익숙해진다. 현실에서 모두가 꿈꾸는 삶을 그리니 웹툰이고, 그러니 드라마겠지.

거창한 목표, 그럴싸한 인생을 기대하지 않게 되는 삶. 그렇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 자꾸만 어린 동생들에게도 지레 삶의 지난함에 대해 얘기하며 포기와 타협을 종용한다. 씁쓸하게 드라마를 보던 어느 날은 주인공처럼 소주를 마셔보기도 했다. 집에서는 의도적으로라도 한 번도 마시지 않던 소주였다. 술이 달았다. 그러나 인상적인 하루는 아니었다. 문득 이태원에 자주 가던 시기에 지나다니던 육교가 보고 싶어 졌다.

글쓰기를 버렸다. 글을 쓸 수가 없다.

뭔가를 적으려고만 하면 흰색의 화면이 무섭고 막막한 날들이었습니다. 글쓰기 총량의 법칙이라도 있는 것인지 자기소개서 따위의 글로 몇 천자를 쏟아내고 나면 더 이상 글을 쓸 여력도 생기지 않더군요. 글쓰기에도 일종의 근육이라는 것이 있어서 꾸준히 연습하고 길러줘야 하는데, 운동이 그렇듯 글쓰기도 시작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혼자 꾸준히 100일 동안 매일 한 편씩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00일 동안 글을 써내고 나면 연말이 되겠지요. 그럼 올 한 해에 그래도 내가 뭐라도 했구나 하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도 매일 글을 쓰며 '이런 걸 올려도 되나'싶을 때가 있습니다. 퀄리티는 점점 떨어지고, 다른 할 일도 많은데 몇 시간씩 글을 붙잡고 있는 자신을 보는 것도 스트레스입니다. 그래서 하루 이틀 정도는 사실 올리지 못하고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혼자 세운 목표라도 되는 데까지는 지켜보려고 합니다.


작가는 마감과 원고료를 연료 삼아 움직인다는 걸, 작가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작가 뿐이 아니라 모든 글 쓰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표현입니다. 마감은 최고의 동기입니다. 마감이라는 최고의 동기가 없으니, 스스로 동기를 만들었습니다. 100일 동안 어떤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약 2주 정도가 지난 지금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듯합니다. 이렇게 글쓰기 근육을 키우는 것이겠죠. 글을 쓴 다는 것은 대단한 영감과 번뜩이는 재능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들에 더 도움을 많이 받는 법이니까요.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성실한 스포츠맨처럼 하루하루 하나라도 더! 하고 자신을 밀어붙이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언젠가 글쓰기가 막막할 때 써야지 하고 생각했던 매일 글쓰기의 이유로 글을 올렸으니 더 이상 이 소재를 쓸 수도 없겠네요. 일단은 당장 저녁 약속을 가야겠습니다. 말은 안 했지만, 브런치에서 저를 구독하고 읽어 주시는 11,000여명의 구독자 분들께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덕분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절의 행복한 소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