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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Oct 01. 2020

명절의 행복한 소란

돌아갈 곳이 없는 이들

제주에 혼자 살면서 명절이 큰 의미가 없던 때가 있었다. 평소에도 친척들을 보고 싶어 하진 않았지만 제주에 살 때는 비행기표가 비싸다는 이유를 대고 집에 있었던 탓이다. 혼자 있었음에도 제주에서는 늘 명절이 버거웠다. 내가 살았던 제주의 작은 마을은 평소와는 달리 명절 때만 되면 육지에서 내려온 일가친척들로 동네가 떠들썩해지는 탓이었다. 수도권에서만 평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무척 낯선 풍경이었다.


명절마다 떠난 이들이 고향이라는 이유로 돌아오는 도시에서 가족 없이 사는 건 다소 외로웠다. 그때마다 나는 혼자 늙는다는 건 명절마다 조금씩 외로워지는 삶일 거라고 우울한 상상을 하곤 했다. 홀로 지내는 명절이 더 서글프다는 독거노인들의 기사가 유난히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일 년에 두 번 볼까 말까 한 친척들보다 한 달에 한 번 보는 친구들이 더 가족 같다고 생각하므로, 명절마다 가족이 뭉쳐야 된다는 생각은 대한민국의 가족주의 신화가 만들어낸 구시대적 산물이라고 여기지만, 눈 앞에서 다른 이들의 행복을 보고 있으면 조금은 외로워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그 행복한 소란을 온전히 견딜 수 없었다. 왜였을까. 집을 가지 않기로 한 것은 내 선택이었는데도. 견딜 수 없을 때면 나는 어디로든 나가서 행복한 여행자인 척을 했다. 제주에서는 여행자를 흉내내기 좋았다. 길 가는 사람 열에 다섯은 여행자였으니까. 그렇게 행복한 여행자인 척을 했지만, 그건 척에 불과했으므로 당연히 기분은 더 나빠지기만 했다. 돌아갈 곳이 사라진 이들은 그래서 공항으로, 타지로 떠나는 걸까. 명절이 없는 곳으로.

사실 제주든 서울이든 명절은 나 같은 반 프리랜서 혹은 백수에게는 그저 똑같은 하루에 지나지 않는다. 어제도 새벽 다섯 시까지 글을 쓰고 이력서를 넣다가 잠들었고, 내게 휴일은 딱히 의미 없는, 어쩌면 오히려 남들이 쉰다는 사실에 배가 아픈 날일 뿐이다. 이건 누군가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고 해외를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이제는 갈 수 없게 되었지만), 누군가는 편의점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고, 광화문에서 시민의 치안을 위해 근무를 서고, 병원에서 응급환자들을 돌보거나(심지어 명절이면 응급환자의 수가 평소보다 더 증가한다) 버스와 지하철을 운전할 것이다. 명절에 멈춘 사람들을 대신해서 누군가는 세상을 움직여야 하니까.


명절이 되면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돌아갈 고향이 없는 이든, 돌아갈 수 없는 이든. 평소엔 아무렇지 않았던, 아니 오히려 행복하다고까지 할 수 있었을 사람들이다. 나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정말로 모두가 행복한 명절이었으면 좋겠다. 행복이 욕심이라면 적어도 외롭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진심을 담은 인사를 습관처럼 덧붙인다. 모두 즐거운 명절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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