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욱 Jan 24. 2021

출근길과 사고현장

죽음은 늘 삶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다

캠핑을 끝내고 친구 차를 얻어 타 집으로 돌아가던 날이었다. 익숙한 가게들이 보였고, 슬슬 내릴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막힐리 없는 집 앞 도로가 막혔다. 그때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기 전에는.


저 멀리에 응급차와 경찰차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군중이 그 주위를 웅성거리며 둘러싸고 있었다. 사고로 도로가 정체되고 있었던 것이다. 차 안에 있어 소리가 차단되었음에도, 사고 현장의 소란스러움이 차창 너머로 느껴졌다. 그 일련의 소란 속에서 내가 볼 수 있는거라곤 사람들 머리 위로 우뚝 솟은 뒤집힌 그랜저 한 대였다. 차가 전복될 정도의 큰 사고가 날 정도의 동네가 아니었으므로, 내비게이션을 잘못 찍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풍경이었다.

집에 도착해 캠핑장비를 정리한 뒤 인터넷으로 급히 기사를 검색해보니, 폐지 줍는 노인의 리어카를 그랜저 운전자가 덮친 사고였다. 이 사고로 리어카를 끌던 노인은 끝내 사망했다. 동네에 20년 가까이 살면서 내가 수도 없이 지나던 길이었다.


기사를 읽고 난 뒤, 궁금증이 풀려 가벼워질 줄 알았던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기사 몇 줄로 남은 누군가의 사망. 80년을 넘게 지속된 한 세상의 끝은 그렇게 몇 분만에 '00동 리어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찾아볼 수 있는 기사로만 남았다.


그렇게 아침마다 누군가의 죽음이 남아 있는 곳 근처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한다. 사고현장을 지날 때마다,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얄팍한 안도감과, 그 죽음에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느끼는 애도의 감정들이 나를 어지럽힌다. 매일은 아니지만, 종종 사고 현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얄팍한 이기심과 애도, 남겨진 이들의 비통함 등이 섞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내것이었을 수도 있는 죽음을 보며, 나는 늘 내가 매일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메멘토 모리. 죽음은 늘 삶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계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서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