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애니메이션 <소울>
<소울>을 보는 내내 뉴욕을 여행했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시끄럽고 정신없던 겨울의 뉴욕, 음침한 지하에 위치해 있던 하드 록 클럽. 그리고 기억은 뉴욕을 거쳐 LA로 옮겨 갔다. 라라랜드 촬영지였던 허모사 비치의 노을 지는 풍경과, 그 바다 앞에 위치한 라이트 하우스 카페에 앉아 듣던 라이브 밴드의 흥겨운 재즈 음악. 그 선율에 몸을 맡긴 채 흐느적대던 커플의 모습과, 맥주를 홀짝이던 행복한 나. 그래도 여행을 가장 강렬히 떠오르게 만들었던 영화 속 장면은 흔해빠진 뉴욕의 메트로 입구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래, 뉴욕 메트로 입구가 저렇게 볼품없고 초라했었지, 하고선. 문득 어디선가 뉴욕 메트로의 습하고 축축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픽사의 신작 <소울>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우리 삶의 목적(영화에선 Spark로 묘사되는)은 거창한 것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이 영화가 인생의 목적이 없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 세미나의 '제리'가 하는 이 같은 말이 내 생각을 뒷받침한다.
"인생의 목적이요? 오 이런, 인간들은 왜 자꾸 그걸 찾는 거죠? Spark는 그런 게 아니에요!"
인생은 사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자 행복이라는 것이다. 음식의 맛과 계절의 냄새를 온전히 느끼며, 살랑이는 바람결에 설렐 수 있는 것. 비로소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목적이라고 말한다. 참 고루한 이야기다 싶으면서도, 그 고루한 이야기를 픽사 답게 세련되게 풀어냈다. 뭐, 절대 애들이 볼 애니메이션은 아니다 싶었지만.
나는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고 이를 엮어 책을 냈다. 이렇게 늘 무언가를 창조하는 작업을 해왔고, 여기서 즐거움을 느꼈다. 때로는 그것이 나의 '소명'이라고까지 여겨지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글쓰기는 바로 지옥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는 창조가 내 인생의 'Spark'라고 느끼고는 있지만, 예전처럼 심오하고 고독한 예술가 코스프레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창조는 그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니니까.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끝끝내 꿈에도 그리던 무대를 무사히 마치고 난 뒤 느끼던 묘한 공허와 허무는 내가 첫 책을 내고 느낀 그것과 비슷하게 보였다. 인생에서 너무도 간절히 바라던 것을 막상 성취해냈을 때의 공허와, 그 뒤로도 인생은 결국 똑같이 끝없이 지루하게 흘러가고 말 것이라는 막막함. 내가 인생에서 원하던 것이 이렇게 시시한 것이었나, 하는 뭐 그런 감정들.
그치만 나 역시 주인공처럼 한 차례의 폭풍 같은 방황을 끝내고 난 뒤 깨달았다. 단풍나무의 씨앗이 내려오는 풍경과, 골목에 앉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식사하는 사람들의 모습. 인생은 그런 것들 속에서 희미한 미소를 띨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삶은 길고도 긴 지루함 위에 가끔 선명한 빨간 점을 찍으며 나아가는 길고도 긴 여행이자 마라톤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이렇게 잔뜩 리뷰를 해놓고 나니, 다시 여행이 떠나고 싶어 졌다. 여행은 아주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새롭게 느끼고 그 안에서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손쉬운 행위다. 여행자가 아닌 어느 누가 점심시간 수다를 떨고 있는 타인을 보며 설렐 수 있단 말인가. 한참을 <소울>에 대해 쓰고 나니, 결국 인생은 길고 긴 여행이라는 그 뻔한 비유가 역시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러나 나는 매일을 여행하듯이 살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니, 아무래도 코로나가 풀리면 그땐 꼭 기필코 비행기를 타야겠다.
덧. 본 영화가 시작되기 전 나온 단편 애니메이션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창피해서, 겁이 나서, 몰라도 안 물어보고 혼자서 끙끙대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친절하고 의외로 나에게 호의적이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