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크라운>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어릴 적부터 영국과 관련된 콘텐츠를 끊임없이 접했다. 워킹 타이틀사의 거의 모든 영화를 사랑했고 비틀즈, 오아시스, 콜드 플레이 등의 록 밴드등의 음악을 하루종일 들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고등학교 도서관에 앉아 셜록홈스 시리즈를 독파하기도 했고 해리포터 시리즈의 굿즈만 보면 환장을 했으며, 매끈한 슈트를 입은 냉철한 007 시리즈 속 주인공들을 보며 클래식 복장에 대한 로망이 생겨났다. 영국이라는 나라까지 좋아하게 된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이처럼 영국은 셰익스피어와 같은 고전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문화 예술의 발상지였다. 따라서 태어나 살아오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한 번도 접하지 않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영국에 여행 갔을 때 가장 흥분했던 건 내가 사랑하는 이 모든 문화의 발상지를 드디어 두 눈으로 담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콘텐츠는 입헌군주제로 대표되는 왕실의 존재다. 21세기에도 (명목상으로나마) 왕의 통치를 받는 국가 영국에서는 지난 2017년 즉위 65년인 사파이어 주빌리를 맞이한 살아있는 콘텐츠이자 역사 그 자체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있다. 그리고 이 '콘텐츠 그 자체'인 인물을 다룬 드라마가 있다. 바로 넷플릭스의 <더 크라운> 시리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크라운>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중심으로 영국 왕실과 그 주변 국제 정세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젊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어떻게 여왕의 자리에 올랐는지, 태어나자마자 여왕일 것 같았던 그녀가 어떤 시행착오를 거치며 어떻게 여왕의 자리에 적응해나가는지가 이야기의 핵심이다.
조지 6세가 서거하자 맏딸인 엘리자베스가 왕으로 즉위한다. 군주로서의 의무와 한 인간으로서 갈등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엘리자베스 2세의 인생을 그린 드라마. - 드라마 <더 크라운> 시놉시스
<더 크라운>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부친의 죽음으로 왕위에 오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놉시스에서도 드러나듯이 드라마는 여왕의 자리에 오른 엘리자베스 여왕의 인간적 모습에 집중한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예전 같지 않아 진 영국의 위상, 그 속에서 여왕이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을 그려내면서도 끝까지 왕실의 품격과 여왕이 지켜야 하는 전통적 가치를 지켜내는 과정이 흥미롭게 묘사된다. 이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면 엘리자베스라는 인물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책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장 최근에 나온 시즌 4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마가렛 대처와 다이애나 왕세자빈, 아일랜드 독립과 피의 일요일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앞의 한 문장 속에 들어간 인물과 사건들의 상징성을 생각해보면, 엘리자베스 여왕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를 새삼 느낀다. 한 사람의 인생을 훑고 갈 뿐인데도 그 길목에는 스토리가 그야말로 '즐비'하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단순히 영국이라는 한 국가를 둘러싼 근현대사의 역사를 훑는 데에 의의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킹스 스피치>라는 영화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부친이었던 조지 6세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에 공감하며 봤듯이, <더 크라운>역시 한 나라의 군주 이전에 인간인 엘리자베스 여왕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마냥 부럽기만 한 여왕이라는 자리가,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절대 부러워지지 않고 안쓰러워지기까지 하는 건 그만큼 드라마가 여왕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더 크라운>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경구가 가장 많이 떠오르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일종의 치트키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생각까지 든다. 문득 비단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콘텐츠 제작자들이 이 '드라마틱'한 영국 왕실의 스토리, 그중에서도 살아있는 여왕인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탐냈을지 궁금해진다. 시즌6까지로 예정되어 있다고 알고 있는 드라마 <더 크라운>이 과연 얼마나 여왕의 스토리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뽑아낼지(꿀을 빨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비단 스토리뿐만 아니라, 이 드라마는 실존 인물과의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배우들의 면면을 보는 재미와, 격식 있는 영국 문화와 복식 등을 보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특히 시즌4 다이애나 왕세자빈 역을 맡은 배우 엠마 코린이 나왔을 땐 두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높은 싱크로율에 입이 벌어지기도 했다
<더 크라운>의 새로운 시즌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드라마를 보고 있으니 7년 전 여행했던 런던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제는 코로나로 갈 수 없게 된 런던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내일은 포트넘 앤 메이슨 홍차라도 마시며 영국 왕실의 이야기를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