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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Apr 12. 2021

뉴요커의 따뜻한 냉소

넷플릭스 오리지널, <도시인처럼>

외로운 도시

도시는 겨울 공기만큼이나 차가웠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부분에서 과하게 친근함을 드러냈고, 정작 필요한 부분에서는 누구보다 쌀쌀맞게 굴었다. 나는 이 도시에서 철저하게 혼자였다.

혼자라는 외로움, 영어가 서툴다는 서러움. 인간의 몸은 지독히도 연약하여, 상처입은 정신에 쉽게 지배당한다. 오늘 아침 나는 결국 타국에서 몸져눕고 말았다. 감기 기운에 시달리며 호텔방의 침대 위에서만 뒹굴대던 나는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저녁에 있는 공연을 보러 갔다.

앞의 글은 2018년 말 뉴욕을 여행할 때 내가 일기장에 적어두었던 일기의 일부분이다. 내가 느낀 뉴욕은 차갑고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도시였다. 그건 도시의 분주함과 정신없음과는 별개였다. 아니, 오히려 그 분주함이 나를 더 철저히 고립되게 만들었다. 예전에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의 퇴근길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도시인처럼>은 프랜 리보위츠라는 작가의 대화로만 이루어지는 다큐멘터리다. 아니, 이 영상을 다큐멘터리라 부를 수 있을까? 장르 분류는 다큐멘터리로 되어있지만 실은 일종의 대담집에 가깝다. 어떠한 사전 정보도 없이 오직 감독 이름에 적힌 '마틴 스코세지'라는 인물 하나만으로 보기 시작한 다큐멘터리였다.


그녀는 뉴욕의 거리를 거닌다. 날카로운 비판으로 세상을 저격한다. 하지만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풍자와 유머의 작가 프랜 리보위츠, 그녀와 마틴 스코세이지의 대화. - 넷플릭스의 <도시인처럼> 설명.


프랜 리보위츠는 뉴욕에서 글을 쓰며 생활하는 작가다.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데, 70세가 넘는 나이가 될 때까지 뉴욕에서 몇십 년 이상을 글로 생활을 영위해 온 사람이니 미국에서는 아마도 꽤 유명한 사람일 것이라고 대충 짐작해볼 뿐이다.

꼰대는 아니지만 냉소적인


<도시인처럼>은 다음과 같이 총 일곱 편의 챕터로 구성되어있다.

1. 도시인처럼

2. 문화, 예술, 그리고 재능

3. 대중교통에 관하여

4. 돈은 싫지만

5. 건강하게 살기

6. 나이를 먹으면

7. 책으로 만난 세계


작품에서 프랜은 시종 일관된 태도를 보여주는데, 바로 '시니컬'함이다. 자칫 70세의 시니컬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결합하여 '본인의 사상이나 가치관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며, '타인을 계몽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소위 말하는 '꼰대'가 바로 그런 어른을 가리킨다. 그러나 프랜의 시니컬은 꼰대와는 느낌이 다른데, 세상의 다양성을 자신의 냉소적인 태도 위에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태도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네 그런 행동이 아주 멍청하다고 생각하지만, 뭐 네가 굳이 그러겠다면 말리진 않겠다. 너희들도 다 겪어보면 알게 될 것이니."

여기에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봤던 그녀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 뉴욕의 길바닥엔 뭐가 참 많아요. 횡단보도도 많고요. 물론 지키는 사람은 저뿐이지만요. 차들한테 소리 질러야 해요. '횡단보도잖아!' 그래도 들은 척도 안 하죠.


- 뉴욕은 지루할 틈이 없어요. 바꿔 말하면 어딘가 앉아서 뭔가 기다릴 때 있잖아요. 글쎄요, 지하철이라든가, 아니면 지하철에 앉아서 지하철이 출발하길 기다린다던가요. 대부분 휴대폰을 보죠. 간혹 책 읽는 사람도 있고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전 그냥 앉아서 사람들 구경하는 게 좋아요. 대체로 무척 재밌는 일이에요. 가끔은 과할 정도로요.


- 뉴욕에선 이런 광경을 봐요. 물론 걸으면서 문자도 보내고 내가 지나가려는데 인도 한가운데 서 있기도 하죠. 하지만 저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들도 많이 보게 돼요. 물론 전 휴대폰이 없으니 문자를 보내진 않지만. 실제로 휴대폰이 있어서 문자를 보낸다 할지언정 절대 그걸 걸으면서 하진 않을 겁니다.

- 그중에서도 최악은, 끔찍한 것들이 참 많지만 그중 최악을 꼽자면 뉴욕 사람들은 걷는 법을 잊었어요. 뉴욕도 옛날에는 참 괜찮은 곳이었어요. 물론 상종 못 할 인간들이 많기는 했지만, 길을 걷는 보행자라면 누구든 길은 걷다 맞은편에 다른 사람이 보이면 본인도, 상대도 조금씩 움직였어요. 그렇죠? 그래야 무사히 하루를 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젠 그걸 안 해요. 이제 저만 해요. 다른 사람들은 휴대폰을 보거나 세상 혼자 사는 사람들이니까요.


- 어렸을 땐 글 쓰는 게 좋았어요. 돈 받고 글을 쓰게 되기 전까진 글 쓰는 게 무척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싫어졌어요.


- 잘하지 못하더라도 뭐든 할 수는 있어요. 정말 어설프고 끔찍하더라도 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혼자만 하세요. 남한테 보이지 말고요. 세상에 뭔가 보이려고 한다면 의무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위대함까진 아니고요. 그건 아무나 못 해요. 적어도 남보단 나은 것을 보여야 한단 의무감요. 요즘엔 다 보여주죠, 아무거나요.

프랜의 따뜻한 냉소

직설적이면서도 신랄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일이 마냥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분명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고 놀라는 지점도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이 작품을 인상 깊게 본 이유는, 뉴욕뿐 아니라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모두들 한 번 정도는 공감할 법한 이야기들을 솔직한 그녀만의 화법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저 xx는 왜 저러고 다니지?'같은 것들.


이런 그녀의 차가운 말속에는 역설적이지만 따뜻한 휴머니티가 들어있다. 그러니까, 인류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분명히 믿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같은 것들. 누군가는 말하지 않던가, 제일 무서운 건 악플이 아닌 무플이라고. 그래선지 프랜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인류애 가득한 욕쟁이 뉴요커 할머니'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분명 뉴욕에서 살아가는 뉴요커로서 도시에 대해,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는 대한민국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나에게도 충분히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다.


서울에서의 삶이 질려 2년 정도를 제주에서 산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얼마나 '도시인'인지를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도시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아침 출근길 지옥철에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욕설을 삼키고,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예의를 지닌 사람들과 마주치더라도, 그것 역시 도시의 일부였다는 걸, 제주에서 살다가 서울의 그 너저분함이 그리워 다시 서울로 돌아온 뒤에야 깨달았다. 나는 도시인이었고, '도시인처럼'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도시의 사람들 중 하나였다는 것을.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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