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넷플릭스는 예전부터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큐 맛집으로 불렸다. '다큐멘터리는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던 이들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뒤, 새로운 장르가 주는 재미에 사로잡혔다. 때문에 종종 넷플릭스 콘텐츠 추천 콘텐츠들에서는 어렵지 않게 영화/드라마 외에도 다큐멘터리 장르도 볼 수 있었다.
<나의 문어 선생님>역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의 명성을 잇는 작품이다. 넷플릭스에 쓰인 작품 설명에는 이 작품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해초 숲을 헤엄치던 영화감독이 특별한 문어를 만난다. 경계에서 교감, 우정으로 발전하는 두 생명의 관계. 세계의 숨은 신비가 모습을 드러낸다. - 넷플릭스, <나의 문어 선생님>
문어와 인간의 교감? 처음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설명이다. 어렴풋하게 '문어와 해양 생태계에 관련된 작품이겠구나'하고 떠올릴 뿐이다.
다큐멘터리 주인공인 영화감독 크레이그 포스터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웨스턴 케이프 주 출신이다. 바위 투성이 해변과, 다시마 숲으로 이루어진 바다에서 살다시피 한 그에게 어린 시절부터 수영은 그에게 최고의 취미이자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고향을 떠나 생활하게 되면서 물과 점차 멀어진 그는, 영화감독 일을 하며 직업적 슬럼프를 겪는다.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가족들과의 사이는 나빠졌으며 직업에 대한 부담감에 짓눌려 병까지 얻은 그는 문득 20년 전쯤 칼라하리에서 만난 한 원주민 사냥꾼을 떠올린다.
사냥꾼은 자연의 경이롭고 미묘한 징후를 살피고 몇 시간씩이고 사냥감을 추적했다. 그 모습을 보며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과거의 그를 떠올리고는, 현재 자신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선 근본적인 변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대서양의 품에 다시 안긴다.
고향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프리다이빙을 즐기던 크레이스 포스터는 어느 날 우연히 암컷 문어 한 마리를 마주하고, 그녀에게서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한다. 이전의 그였다면 문어 한 마리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쳤겠지만, 칼라하리 사막에서 보았던 사냥꾼을 기억하고 있던 그에게 이 문어는 특별함 그 자체였다. 조개껍데기 따위를 집어 올려 자기 자신을 숨기고 있던 문어가, 갑자기 그를 발견하고는 재빨리 도망쳐버리는 진귀한 광경을 목격한 것. 결국 감독은 이 문어를 날마다 관찰하며 들여다보기로 마음먹는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펼쳐지는 대서양의 바닷속을 보고 있자면, 마치 우주처럼 느껴진다. 햇살이 갈라지는 다시마 숲과 푸른 물길 사이를 우아하게 유영하는 문어의 모습. 우리가 살면서 거의 본 적 없는 생물들의 놀라운 생활환경은 육지에 발 붙여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건 차라리 미지의 영역, 인간이 정복하고자 애쓰는 우주의 모습에 더 가까워 보인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에는 물속에 사는 기이한 존재와 인간의 사랑이야기가 등장한다. 물에는 모양이 없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이 영화의 제목은 굉장히 모순적이다. 이건 어쩌면 한국어판의 부제로 붙은"사랑의 모양"처럼, 영화 속에서 물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형상화처럼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판이하게 다른 이(異) 종간의 교감에서 물은 둘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역할하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영화가 바로 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였다. 인간과 물에 사는 존재의 교감을 그리고 있는 다큐멘터리에서 이 영화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인간과 다른 종의 교감을 다룬 영화는 대체로 뭔가 친숙하고 낯설지 않은 대상들이었다. 돌고래라든지(프리윌리), 아름다운 비행(비둘기)등이 그랬다. 그러나 <셰이프 오브 워터>도 그렇고 <나의 문어 선생님>도 그렇고, 여기서 인간이 교감하는 대상은 낯설고, 다소 징그럽기까지 한 대상들이다.
심지어 문어는 우리가 그저 식재료 정도로만 여겨온 탓에, 감정의 존재 유무 자체를 망각했던 생물이라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이 다큐멘터리 속 문어의 존재가 익숙하면서도 전혀 다른 생명체로 느껴진다는 것이 어떤 충격인지 상상이 갈 것이다.
*아래부터는 다큐멘터리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다큐멘터리 속 크레이그 포스터와 문어의 교감은 결국 문어가 새끼를 낳고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끝난다. 한 시간 반 남짓한 시간 동안, 감독의 시선을 따라 문어와 함께 한 우리는 마지막 문어의 죽음에서 일종의 숭고함까지도 느끼게 된다. 후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결국 생을 마감하는 일. 그렇게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가 자신의 뒷 세대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것. 인간이든 문어든 어떤 종이든, 결국 모두의 세계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주 기이하고, 그래서 아름다운 <나의 문어 선생님>. 만약 당신이 바다를 좋아하고, 우주를 좋아하며, 낯선 무언가에 아주 강하게 이끌리는 사람이라면 이 다큐멘터리가 가슴속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내가 문어를 보고 울게 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