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 번째 입사
지난 11월, 프리랜서 생활을 청산하고 회사에 입사했다. 사실 말이 프리랜서였지 계속 구직활동을 해왔으니 사실상 백수나 다름없었지만.
2월이 되면서 수습기간 3개월이 끝났다. 3개월.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의 3개월은 1년 같기도, 3일 같기도 했다. 오랜만에 하는 회사생활은 꽤 즐겁고 설렜다. 아침마다 의식처럼 들리는 스타벅스도, 왕복 네 시간의 출퇴근길도, 4년만에 일반적인 회사생활을 하는 내게는 상당한 즐거움이었다. 마케팅이라는 영역은 처음이었고, 대체로 좌절했으며 여전히 나의 부족함을 절실하게 깨닫는 매일이었지만 이런 일상들이 나를 크게 성장시켜주리라 믿는 시기이기도 했다.
지난 3개월의 시간 동안 참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가장 큰 깨달음은 '내가 인생을 너무 즐기며 살았구나'였다. 하고 싶은 것만 주구장창 하며 살아 온 20대였다. 그리고 대체로는 하고 싶은 것들을 이루기도 했다. 책을 쓰고 싶다고 책을 냈고, 제주에 내려가고 싶다며 제주로 내려갔다. 퇴사를 했으며, 사고 싶은 것들을 사고 돈은 한 푼도 모으지 않으며 펑펑 써보기도 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살 수 있었다는 것은 물론 큰 행운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즐겜러로 인생을 사는 동안, 열심히 인생을 살아 온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허송세월'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들은 자기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았고, 탄탄한 입지를 다져놓았다. 알 수 없는 어려운 단어들, 전문지식들, 그리고 과장, 차장 따위의 직급들 까지. 아주 솔직하게 말해 어린 그들이 회사라는 집단에서 이룬 성과를 보면 지난 인생이 후회되곤 했다. 나는 무얼 하고 살았는가, 싶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물론 많은 이들이 내게 지난 시간들이 헛되지만은 않았다고, 책을 두 권이나 내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말해준다. 나 역시 그 시간들이 아주 쓸모없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하고 싶은 걸 내려놓고, 하기 싫은 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따위의 말을 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는 그 메시지를 전달하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니까. 이제는 이런 내 생각을 실제 삶에도 적용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지난 3개월 동안 회사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들은 얘기들은 대충 이랬다.
- 프리랜서 왜 그만뒀어요?
- 책상이 남직원 책상 같아 보이진 않네요...(내 책상엔 향수와 핸드크림 등이 올려져있다)
- 이 쿠키 직접 만든거라고요?
- 인천에서 어떻게 와요?(그러게요...)
- 그래서...회사가 뭐 하는 곳이라고?(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이 얘기를 안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중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프리랜서에 관한 얘기였는데, 사실 답변은 간단했다. 돈이 안됐으니까. 한 달에 돈을 천 만원씩 벌었으면 나도 아마 회사는 쳐다보지도 않고 프리랜서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나는 연봉 1500을 겨우 받을까 말까 한 무명 작가였다.
사실 한때는 프리랜서가 꿈이었다. 어릴때까지도 그랬다. 자유로운 시간관리, 내가 하고싶을 때만 일하고 놀 수 있는 멋진 직업. 6개월은 일하고 6개월은 해외에 나가있는 삶. 더울 땐 추운 나라에서, 추울 땐 더운 나라에서 사는 삶.
그러나 그건 프리랜서가 아니라 건물주 정도가 되어야 가능한 얘기였다. 프리랜서로서의 삶은 밤 12시까지도 어영부영 일하는 둥 노는 둥 보내고, 주말에도 밀린 일을 하는. 주 7일을 어정쩡하게 일하는 노동자였다. 내가 관리를 잘 못해 벌어진 일일수도 있었겠지만, 프리랜서에게 놂은 곧 빈곤의 동의어였다. 노는 동안은 돈을 벌 수 없었다. 회사는 그래도 적당히 일해도 적당히 돈이 들어왔지만, 프리랜서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회사가 얼마나 내가 일한 것 이상의 돈을 주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튼 이런 이유들로, 나는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프리랜서의 삶. 강제적으로 해야하는 순간이 오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그 길을 택할 일은 없을 것 같다.
3개월 동안 총 두 명의 인턴을 떠나보냈다. 한 명은 나와 같이 일한 기간이 길지 않았고, 한 명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입사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였다. 그들을 보며 나는 예전 직장 선배들이 떠올랐다. 인턴부터 직원까지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선배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나는 보호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게는 밥값 술값과 같은 것부터, 크게는 업무와 회사생활에 대한 것들까지. 그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그런 것들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구나 하고 뒤늦게 생각했다.
나는 인턴들에게 그런 선배가 되고 싶었다. 보호받는다는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누군가는 나를 사려깊게 챙겨주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선배. 노력은 했지만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다. 떠나는 인턴들을 보며, 그들의 앞날을 응원했다.
최근 회사가 사옥을 옮겼다.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는 만큼, 기존 사무공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고, 마케팅본부는 신사옥에 먼저 가서 업무를 시작했다. 연휴 전날, 새로운 사옥에서의 이틀 째에 몇몇 동료들과 회사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남겼다. 빌딩 숲 사이로 지는 해를 보며 잠시 감상에 젖었다. 음력으로 새로운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한 해가 오고 있었다. 새로운 사옥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수습기간이 끝난 시점에 어울리는 이사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의 회사생활은 어떻게 될까? 나는 부디 지금보다 조금 더 능숙한 회사원이 되어 있기를 바라본다. 내 목표는 이제 프리랜서 작가가 아닌 유능한 직장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