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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Nov 16. 2015

런던의 마지막 밤

(2014.12.30, in London, UK)  - 3

참 많이도 걸었던 하루였다. 네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런던 시내를 쉬지않고 구경했다. 그럼에도 버스는 딱 한 번을 탔으니, 참 지독하게도 많이 걸었구나-하고 생각했다. 여행지를 걸으면서 마주치는 다양한 풍경들은 보는 것 만으로도 즐겁다. 그렇지만 내가 걷는 이유가 단순히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겐 스마트폰 지도라는 획기적인 기술이 생겼다. 굳이 사람들에게 길을 묻지 않더라도, 목적지가 정해진 대중교통을 타지 않더라도 내 두 발만 있으면 처음 가는 장소도 얼마든지 나만의 방식으로 찾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대중교통은 노선마다 정해진 루트가 있고, 정해진 곳에서 그 노선을 타야 내가 원하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다. 노선이 정해져 있다는 얘기는, 만약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다른 길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대중교통을 탔다면, 그 길로 나의 천금 같은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머나먼 타국의 길바닥에 버려지기 시작한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런 일들이 종종 있었다.  정신없이 다니다가 대중교통을 잘못 타곤 했고, 그럴 때마다 내가 도대체 무슨 귀신에게 홀려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질렀을까 하고 후회하곤 했다(그리고 후회한 시점에서 이미 지각은 불 보듯 뻔했다). 근데 그게 심지어 먼 타국에서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대중교통이 내가 전혀 모르는 곳에 나를 내려놓았을 때의 그 허망함과 두려움이란. 그래서 나는 유럽을 여행할 때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이동했다. 그건 영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통용됐다. 숙소에서 아침에 시내로 이동하기 위해 타는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대중교통을 타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잘못 타서 경험하게 될 괜한 두려움이 싫었다. 참 지독히도 조심스럽고 소심한 사람이다.

서머셋 하우스는 겨울마다 이렇게 스케이트장으로 꾸며 놓는다

코벤트가든 마켓에서 나와 다음 목적지였던 서머셋 하우스에 도착했다. 연말의 런던은 어디를 가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는데, 이 곳 역시 그랬다. 마치 우리나라 서울시청의 스케이트장을 연상케 하는 대형 스케이트장이 설치되어 있었고 가족과 연인, 친구 단위의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서머셋 하우스는 그 자체로도 무척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건축물인데, 1547년 지금의 위치에 Lord Protector이자 1st Duke of Somerset이 된 Edward Seymour의 저택이 지어진 것이 최초였다고 한다. 그 뒤 이 저택은 왕실이 소유하기 시작하면서 화려하게  개보수되었고, 지금과 같은 형태의 모습을 갖춘 것은 1800년대에 이르러서였다고 전해진다.


2차 대전 전까지는 영국의 몇몇 정부기관들과 해군 사무실이 들어서 있는 곳이었다고 하는데(이런 곳에 정부기관들이 있다니 어쩐지 유럽스럽다), 지금은 이 건물의 최초 건축가인 William Chambers경의 의견을 받들어 문화, 예술, 학술의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유서 깊은 미술사 대학원인 The Courtauld Institute of Art와 대학원 소속의 Courtauld Gallery가 들어서 있고(이 곳에는 고흐의 자화상이 있다), 스케이트장을 비롯해 각종 문화 행사 역시 Chambers' Great Courtyard라 불리는 중앙의 커다란 광장에서 열리기도 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결혼식 역시 이 곳에서 진행할 수 있고 누구든지 건물 내부도 들어가서 제한된 공간을 제외하고는 둘러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어쩐지 위용 있고 다가가기 어려워 보였던  첫인상에 비해 푸근하고 친근한 느낌이었다. 이렇게나 근사한 건물이 시민들에게 쉽게 개방되어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영국이라는 나라에 감탄했다. 이 곳은 런던에서 마치 보석과도 같은 장소였다.

게다가 나 같은 관광객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 역시 어쩐지 내겐 맘에 들었다(관광객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을 마주치는 것을 싫어하는 이 모순이란). 후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더니 서머셋 하우스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런던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었는데, 사실 내가 이 곳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나온 곳이었기 때문. 주요 장면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러브 액츄얼리의 영화 극 초반부에 스케이트장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 곳이 바로 이 서머셋 하우스였다.

여기 와서 보니 왜 러브 액츄얼리에서 이 서머셋 하우스를 담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러브 액츄얼리의 오프닝 시퀀스는 개인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가장 잘 표현해냈다고 생각하는 영상 중의 하나다. 영상에서는 히드로 공항이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모두들 한껏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중 나온 그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까지도 행복해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런 다음 Love is all aroud라는 영화의 타이틀곡과도 같은 노래가 등장하며 런던의 곳곳의 모습이 나올 때, 서머셋 하우스의 모습이 잠깐 스쳐간다.


사실 그렇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위대한 감정이지만 거창한 감정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 누구나 소소하게 느끼고 있는 감정이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일 테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의 일상 속 공간에 녹아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러브 액츄얼리 제작진은 표현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연말에 솔로들이 외롭다고 절규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어디서나 사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랑이 내 옆에는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솔로는 몸서리치게 외로운 법이다(잠깐만 울자).


Whenever I get gloomy with the state of the world, I think about the arrivals gate at Heathrow Airport. General opinion's starting to make out that we live in a world of hatred and greed, but I don't see that. It seems to me that love is everywhere. Often, it's not particularly dignified or newsworthy, but it's always there - fathers and sons, mothers and daughters, husbands and wives, boyfriends, girlfriends, old friends. When the planes hit the Twin Towers, as far as I know, none of the phone calls from the people on board were messages of hate or revenge - they were all messages of love. If you look for it, I've got a sneaky feeling you'll find that love actually is all around.
세상 돌아가는 꼴이 우울하다고 느껴질 때, 나는 히드로 공항의 도착 게이트를 떠올린다. 세상에는 증오와 탐욕만 가득 찬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부모와 자식, 부부, 연인, 오랜 친구사이. 911 테러의 희생자들이 세상을 떠나가던 순간에 남긴 건 모두, 사랑의 메시지였다. 찾아보면 사랑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러브 액츄얼리 오프닝에서-

서머셋 하우스에서 뜻 하지 않은 행복감(과 외로움)을 느끼고 나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런던아이를 타러 가기 위해 이동했다. 마침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고, 런던을 여행하며 지겹게 건넜던 워털루 브릿지에서 해질 무렵의 템즈강을 바라볼 수 있었다.

런던에서 이 다리를 건너는 것도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괜히 평소보다 센치해지는 기분이 들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느린 속도를 내며 다리를 건너갔다. 다리에는 운동을 나온 시민들이 더러 있었다. 해지는 템즈강을 배경으로 러닝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저 사람들은 '참 아름다운 삶들을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딜 가나  해질녘의 강변은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해질녘의 한강도 그 아름다움에 몇 번이나 넋이 나가 감상하곤 했었다. 템즈강의 해질녘을 보니 조금은 한강이 그리워졌다.

워털루 브릿지를 건너 조금만 걸으면 런던아이가 나온다. 내가 예약했던 시간은 오후 다섯 시였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 런던아이가 보이기 시작하자 왠지 모르게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오늘의 모든 여정이 이 동그란 관람차 하나를 타기 위해 거쳐왔던 것 같이 느껴졌다.

밀레니엄을 기념해 지어진 런던아이는 원래 1999년 처음  완공된 이후 5년 간만 운영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구조물은 생각보다 많은 인기를 끌었고, 현재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철거되지 않고 런던의 랜드마크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놀이공원이나 유명한 관광지를 가보면 하나씩은 있는 이 동그란 관람차가 이렇게 런던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런던 시내의 모습을 높은 곳에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큰 이점이 있었기 때문일 테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런던의 야경을 보며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을 정리하고 싶었고, 런던아이는 그런 내 욕구를 가장 충실히 충족시켜줄 수 있는 수단이었다.


기다림이라는 행위 자체에 익숙해져서 웬만큼 기다리는 정도는 힘들지 않았지만, 일상이 아닌 여행지에서의 기다림은 엄청난 인내를 동반해야 하는 일이었다. 특히 혼자 하는 여행에선 더더욱 그랬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외로운 순간(혹은 심심한 순간)중의 하나는 길게 늘어선 관광객들 사이에 멀뚱멀뚱 서서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멀리서만 봐 왔을 땐 일반적인 관람차와 별 다를 것 없어 보였던 런던아이를 가까이서 올려다보니,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관람차엔 상기된 얼굴을 한 채로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곧 있을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수 많은 사람들도 저마다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건 런던아이를 타는 사람들, 혹은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질 수 있는 묘한 유대감이기도 했다. 혼자 심심함에 몸서리를 치며 연신 셔터만 눌러대던 내 얼굴도 저 사람들처럼 상기되어 있었을 테다.

한 시간 남짓 기다렸을까,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커다란 캡슐 모양의 관람차에는 하나 당 약 열 명 남짓의 사람이 탑승할 수 있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같이 탄 사람들 중에 혼자 타고 있는 사람은 나 뿐인 듯했다. 다들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런던의 마지막 밤을 정리하기 위해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런던아이에 올라 바라본 런던의 밤은 고요했다. 마지막 밤을 보내기에 이만큼 좋은 장소도 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뻔하디 뻔한 장소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3일 동안 그렇게나 열심히 돌아다녔던 런던이,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내 발 아래 펼쳐져 있었다. 밤의 색으로 갈아입은 런던의 모습은 낮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놀랐던 것은 그토록 열심히 런던을 돌아다녔음에도 내가 처음 보는 런던의 모습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이었다. 물론 3일밖에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런던을 다 볼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런던은 참 다양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도시였다. 런던의 대도시 같은 면모들은 이 날 런던아이에 올라 처음 목격할 수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런던의 변두리(?)만을 돌아다녔는지 느낄 수 있었다(런던에 고층 빌딩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런던아이에 올라와 보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런던의 화려한 밤 풍경, 그건 내가 3일간 미처 보지 못했던 런던의 또 다른 모습들이었다.

한참을 야경에 푹 빠져 셔터를 누르고 있으니 어느덧 내릴 시간이 다 되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대도시의 야경은 언제나 옳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오글거리게 표현하자면 땅에서 별이 빛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달까. 어쩌면 사람들은 그런 야경의 속성에서 낭만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물론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저 불빛들이 다 이 시간에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꺼지지 않는 것이라고.)


런던아이를 타기 시작하면서부터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탑승을 끝내고 내리자 완전한 밤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런던의 밤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다. 런던아이에서 내린 나는 무작정 템즈강을 걷기 시작했다.

런던아이 밑에는 회전목마가 있었다. 반짝거리며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보니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다. 회전목마는 아이들에게는 즐거움을, 어른들에게는 추억과 기억을 선사해주는 놀이기구다.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사실 나는 어릴 적 놀이동산에 있는 놀이기구들 중에 회전목마를 가장 무서워했다. 롤러코스터는 잘 타면서도 회전목마에는 나를 꽉 잡아주는 안전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릴 적의 나는 종종 안전바 없는 회전목마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는 상상을 하곤 했다.


우리는 때로 아무리 무섭고 위험한 일이라 할 지라도 나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 일을 실행에 옮기곤 한다. 반면에 누가 봐도 안전하고 별 탈 없을 것만 같아 보이는 일도, 개인에 따라서는 실행에 옮기기에 큰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내겐 어릴 적의 회전목마가 마치 그런 일과도 같았다. 때로 살다 보면 안전바가 있는 롤러코스터보다 회전목마가 더 무서울 때도 있는 법이다.


한참을 회전목마 앞에서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구경하던 나는 템즈강변을 산책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섯 시 반 밖에 안된 이른 시간에 숙소를 들어가기엔 어쩐지 아쉬웠다. 런던의 마지막 밤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놓고 싶었다.

12월 30일. 한 해를 하루 남긴 템즈강변에는 현지인과 관광객이 남녀노소 뒤섞여 어우러져 있었다. 거리에는 맛있는 냄새로 행인들을 유혹하는 노점들과,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거리 예술가들이 가득했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행복한 연말이었다. 생각해보니 연말에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나를 따뜻하게 만들어 줬지만 한편으론 속수무책으로 외롭게 만들었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이제 나에게 남은 일정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템즈강변에 있는 러브 액츄얼리의 또 다른 촬영지를 찾아가는 일이었고, 남은 하나는 런던의 상징물인 타워 브릿지를 보는 일이었다. 이 두 가지 일정을 끝으로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 밤은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러브 액츄얼리 촬영지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비슷비슷한 벤치들은 보였지만 딱 내가 영화에서 봤던 그 장소는 생각보다 쉽게 등장하질 않았다. 왔던 길을 몇 번씩이나 되짚어 걷고 나서야, 드디어 똑같은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밤이라서 모습은 살짝 달랐지만, 내가 영화에서 봤던 바로 그 장소였다.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핸드폰으로 스크린샷까지 찍었더랬다. 강변이라서 바람은 쌀쌀했고 하루 종일 걸은 탓에 다리는 점점 아파오는데 왜 있어야 할 장소는 보이질 않는 건지. 한참을 원망하다 겨우 찾았을 때 나는 


'드디어!!!!!'


하고 속으로 작게 소리쳤다.


"아빠, 나 사랑에 빠졌어요"
"난 또, 나쁜 일인 줄 알았네"
"사랑보다 큰 고통이 어딨어요?"
-영화 '러브 액츄얼리' 중에서

이런 내용의 대화를 나누던 부자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다. 나 역시 인상적이었던 이 장면은 세인트 폴 대성당이 보이는 템즈강변의 어느 벤치에서 촬영됐다. 그렇다. 아마 사랑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일테다. 내 아들이 저렇게 대화를 걸어왔다면, 나는 거기서 어떻게 대답했을까.


막상 힘들게 촬영지를 찾았건만, 저 장면들을 찍는 것 외에는 딱히 더 할 일이 없었다. 기왕 걷기 시작했으니, 무리를 해서라도 타워브릿지까지 걸어가자고 생각했다. 한강보다 좁은 폭의 템즈강은, 건너편이 훤히 보일 정도였고, 고층아파트가 아닌 다양한 건물들이 보이는 템즈강의 모습이 내겐 무척 색다르게 다가왔다.

타워브릿지로 이동하다 보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들이 조금씩 드러났다. 런던의 가장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이 곳에는 고층 건물들과 함께 런던의 가장 현대적인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더 샤드'라 불리는 이 건물은 런던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하는데, 건물의 꼭대기는 마치 등대처럼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달과 함께 신비로운 빛을 내고 있는 이 건물의 묘한 모습을 무언가에 홀린 듯 한참 동안이나 쳐다봤다.


겨울의 템즈강변은 습했다. 건조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럽의 겨울은 무척 습한 느낌이었는데, 템즈 강변은 마치 비가 내리기라도 하는 듯이 바닥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혹자는 이런 유럽의 겨울이 뼈가 시릴정도로 춥다고 하는데, 추위를 잘 타지 않아서인지 내게는 한국의 겨울보다 덜 춥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이 날의 마지막 일정인 타워브릿지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해보니 사진에서 봤던 타워브릿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의 인상이었다. 인상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풍경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런던에 왔으니 타워브릿지를!'이라는 생각은 '파리에 왔으니 에펠탑을!', '로마에 왔으니 콜로세움을!', '한국에 왔으니 경복궁을!'같은 느낌이다(물론 파리와 로마에서 전부 저 두 곳을 의무처럼 들렀다). 어쩐지 한 번은 들러야 그 나라에 다녀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랜드마크들이 있지 않은가. 타워브릿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저녁도 먹지 않고 하루 종일 제대로 앉아서 먹은 음식이라곤 점심 나절 먹었던 잉글리시 브랙퍼스트가 전부였다. 이렇게 정신없이 걸은 나도 대단하다 싶었다. 잔뜩 녹초가 되어 터덜터덜 워털루 역으로 걸어가면서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이제 런던 센트럴로 들어올 일은 없겠구나 싶은 아쉬움이 컸다. 런던은, 이제 마지막이었다.


잔뜩 허기지고 녹초가 된 몸으로 숙소에 돌아왔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은, 주인집 부부와 맥주에 간단한 디저트를 먹으며 보냈다. 그들과는 다음날 아침 일정에 대한 조언과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여행에 대한 서로의 생각들과 인생사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게 런던에서의 5일을 가장 잊지 못할 좋은 추억으로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이 부부였다.


지금도 유럽여행 기간 동안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고,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데, 그건 아마도 이 부부가 스타트를 잘 끊어주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폭풍 같았던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은 일상적인 듯 일상적이지 않게 지나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날 밤 침대에 누워 '정말 마지막 밤이구나'하고 내뱉었다.


정말로 실 감나지 않는 런던의 마지막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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