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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Aug 17. 2021

체르니 치던 남자애

어릴 적 나는 그 나이 또래의 소년들이 다니던 합기도니 태권도 같은 도장 대신 아파트 상가에 있던 조그마한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그곳에선 바이엘이니 하농이니 체르니 같은 악보를 보며 꾸역꾸역 연주 횟수를 채우곤 했다. 커서는 피아노를 좀 더 열심히 할 걸 하고 후회하는 때가 더 많지만, 어릴 적엔 피아노 학원에 보내는 엄마가 못내 미웠다.


지금은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살던 큰 이모부께서 한 번은 “남자 놈이 무슨 피아노는, 태권도장이나 보내지”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선명한 것을 보면, 그때 그 문장 하나가 분명 어린 소년의 마음속에 콕-하고 깊게 박혔음에 틀림없다. 물론 그 문장에 어떤 악감정이 있다거나, 원망하는 마음 따위는 전혀 없다.


그 뒤로도 나는 피아노 학원에 보내는 엄마가 미웠고, 다른 남자애들처럼 태권도장이나 합기도장에 보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무서운 일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키가 작았던 나는 같은 반 여자아이들 보다도 왜소해서, 툭하면 시비를 걸고선 한 대 맞고 울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만화 H2의 히로 같았달까. 물론 히로는 맞고 다니진 않았지만.


어릴 때 피아노 학원이 아니라 태권도장에서 흰색과 검은색의 건반 대신 흰색 도복에 검은색 띠를 두르고 발차기를 했다면 지금 나는 좀 달라졌을까? 문득문득 내가 지닌 섬세함과 감수성이, 유난스러운 취향과 취미들이 못내 싫어지는 순간마다 그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지금이야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지만, 어릴 적만 하더라도 “남자가 우냐”라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들으며 자라왔다. 부디 내가 그런 말을 너무 당연하게 듣고 자란 마지막 세대이길 바라본다. 교실에서 슬픈 영화를 보고 펑펑 운 뒤, 며칠씩 놀림에 시달렸던 열세 살의 소년이 받은 상처를 이제는 되풀이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감정 표현에 서툴러 늘 힘들어하면서도 감수성은 여린 모순에 시달리는 슬프고도 기괴한 인간이 또 탄생하는 불행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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