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old dog
지금 이 순간 나는 알아 왠지는 몰라 그냥 알아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가을방학 - 언젠가 너로 인해>
2005년 어느 날, 하얗고 조그마한 페키니즈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왔다. 아직 한 살도 채 되지 않은 강아지의 코와 발바닥은 분홍빛을 띄고 있었다. 나는 '체리'라는 이름을 짓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으나 그 강아지의 이름은 결국 '아롱'이가 되었고, 그렇게 아롱이는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2005년생인 아롱이는 올해로 약 16년을 산 셈인데, 그런 아롱이의 나이를 들으면 다들 깜짝 놀라곤 한다. 강아지로서는 적지 않은 열여섯이라는 나이와 사람으로 치면 100살이 넘은 나이임에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아롱이의 외모 덕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롱이를 보고 있으면, 가끔 본인이 어느정도의 세월을 살았는지 알고는 있을까? 하고 궁금해지곤 한다.
아롱이는 내 인생의 절반을 함께 지냈다. 이제는 내 인생에서 아롱이가 없었던 시간보다, 아롱이라는 강아지가 함께 했던 시간이 더 긴 셈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고등학생을 거쳐 대학생이 되었고, 군인이기도 했다가 직장인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작가로 불리던 순간과, 첫 책의 교정을 보던 그때에도 아롱이는 늘 옆에 있었다. 연인과 사랑의 단어를 속삭이던 밤들과, 헤어짐에 가슴 아파하던 순간에도 아롱이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채 무심하게 잠을 잤다.
그런 아롱이도 세월에 따른 노화를 비켜갈 수는 없어서, 겉모습만 아기처럼 보이는 노령견이 되었다. 무뎌진 후각,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 비틀거리는 뒷다리, 자신이 어딘지 모르겠다는 듯 꿈을 꾸는 듯한 멍한 표정과, 병원에 갈 때면 늘 듣는 안 좋은 신장 수치 등 객관적인 각종 노화의 징후들까지.
2년 정도쯤 전에, 아롱이가 침대에서 잘못 떨어지며 턱뼈를 다친 적이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침대에서 글을 쓰고 있었고, 내 옆에 누워 있던 아롱이가 방을 나가려고 침대를 내려가던 중에, 침대 가장자리에 부딪히며 턱을 다친 거였다. 그즈음 슬슬 노화에 따른 건강 악화가 지속되고 있었으나 아롱이의 상태가 나빠진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그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일로 아롱이는 전신마취를 하고 대수술을 진행해야 했다. 부러진 턱 뼈 보다도, 이미 썩을 대로 썩어버린 치아가 더 문제라는 의사의 소견과 함께 아롱이는 모든 이빨을 다 뽑아야만 했다. 썩어버린 치아로 인해 신장과 간 수치가 계속해서 안 좋아지는 탓이었다.
사람도 치아를 뽑고 나면 치매와 노화 증상이 더 빠르게 나타난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아롱이도 수술을 마치고 잘 회복하고 난 뒤부터 점점 노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처음엔 좀 둔한가 싶다가, 불러도 대답이 없는 걸 보곤 귀가 나빠졌구나 싶으면서, 맛있는 냄새가 나도 '춉춉춉'하면서 달려오는 소리가 없는 걸 보니 후각도 안 좋아졌구나, 하는 식이었다.
최근엔 제 힘으로 혼자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뒷다리를 아예 짚고 서 있을 수 없게 된 탓이다. 어릴 때부터 척추가 안 좋아 다리를 절곤 했는데, 이제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다리에 힘이 없어 스스로 딛고 설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 아롱이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아쉽지 않도록 기록을 많이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남기는 것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싫다가도, 여전히 얼굴은 아기 같은 아롱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도대체 왜 이러느냐고 묻는 것만 같아서,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을 간신히 추스른다.
그래선지 요즘은 문득문득 아롱이가 '춉춉춉'하며 마룻바닥을 멋있게 박차며 경쾌하게 달려와선 라면이나 과자 따위를 달라고 나를 괴롭히던 장면들이 생각난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고무공을 던지면 총알처럼 달려 나가 헥헥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공을 물어 오던 아롱. 귀를 팔랑거리면서 공원을 산책하면 사람들이 저마다 귀엽다고 말을 걸어오던 그녀. 그러나 주인을 닮은 건지 다른 사람이나 강아지들의 시선 따위는 쳐다도 보지 않고 그저 자기 갈 길만 가던 수줍고 도도하던 아롱. 그래도 주인에게는 늘 따뜻했던 강아지.
아롱이에게는 늘 하던 습관이 있었다. 그건 바로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어 허벅지에 자신의 고개를 베고 자는 일이었다. 추운 겨울이면 자신의 체온을 나눠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옆에 딱 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코를 심하게 고는 아롱이가 옆에서 잠을 잘 때면, 나는 그게 짐짓 귀찮고 번거로워서 떼어 내려고 한 적도 있었다고 뒤늦게 고백해본다. 가끔은 지 침대라도 되는 것 마냥 내 침대에서 베개를 베고 세상 편하게 자고 있는 녀석을 보고선 어이가 없어 코웃음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래도 슬픈 날에는, 아롱이가 귀찮아하는 티를 팍팍 내는데도 굳이 굳이 옆구리에 껴안고 한참을 누워 있던 날도 있었다. 그럴 땐 또 야속하게도 벗어나려고 했다. 아롱이는 마치 고양이 같은 강아지였다.
아마 가족 모두가 알고 있을 테다. 아롱이와 우리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하얗고 귀엽던, 때론 멋지고 날렵하던 우리의 반려견이 언젠가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걸. 그래선지 우리 가족은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듯이 아롱이의 상태에 대해서 누구도 입 밖으로 내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차오르는 눈물을 수십 번도 더 참아내지만, 아롱이와의 기억이 슬픔과 괴로움으로 남게 내버려 둘 순 없으니까. 그러니까 아롱이 앞에서 만큼은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게 우리가 아롱이와의 마지막 시간들을 보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나의 늙은 반려견 아롱이에게,
늘 고마웠고, 지금도 고마워.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