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한 자기애는 타인에게 줄 사랑조차 없애버리곤 해
날씨가 너무 좋은 주말이었다. 집 앞 영화관에 가서 오랜만에 영화라도 한 편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무화과 향이 잘 어울리는 날씨라 생각하며 무화과 향 향수를 뿌렸다. 영화를 한 편 보고 나왔더니 낮게 깔린 해가 도시의 채도를 진하게 만들고 있었다. 저녁에는 지난번 사 둔 잠봉으로 잠봉뵈르를 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바게트를 하나 사서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산책을 하면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있고, 작은 하천을 끼고 있는 공원이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하는 생각들을 했다. 그러고는 잠시 벤치에 앉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러닝을 즐기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문득 나는 내가 미디어에서 자각 없이 그려내는 프랑스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게트, 에코백, 심지어 스트라이프 셔츠까지.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한가로이 사람 구경이나 하던 나는 실소했다. 불문과 졸업생은 알지. 실제 프랑스인들은 이렇지 않는다는 걸.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사 온 바게트를 잘라 꾸역꾸역 버터와 잠봉을 쑤셔 넣으면서, 나는 끝까지 스스로를 너무 사랑하는구나-하고 슬퍼졌다. 날씨와 어울리는 무화과 향 향수를 뿌리는 나, 맛있는 음식을 해 먹는 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바게트를 들고 거니는 나, 꽃 한 다발을 사 사무실과 집 화병에 꽂아두는 나.
작가라 불리는 나,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나, 사랑을 하고 있는 나, 헤어짐에 슬퍼하는 나. 남들에게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해 애쓰는 나. 나, 나, 나. 남들에게 보일 내 모습에 행복을 느끼며, 행위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나는 끝까지 그렇게 이기적이게 나만을 사랑하다 죽을 운명인가 보다-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내가 죽을 때까지 남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법을 깨닫는 날이 올까 하고, 입천장을 자극하는 딱딱한 바게트를 씹어먹으며, 그렇게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