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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Sep 05. 2021

드라마 D.P와 그 밖의 이야기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D.P>


요즘 화제인 넷플릭스 드라마 D.P를 봤다.


주변에서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이들에게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진짜로 저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짜로 저런데, 그렇다고 내가 나온 부대는 저 정도로 심하진 않았다. 이건 대체로 공감하면서 본 전역자들도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인 것 같다. 드라마는 군부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아주 극한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충격적이라고 느끼는 것일 테다.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난 과거의 일들 몇 개만 적어본다.


1. 우리 부대는 내가 전입오기 두 달 정도쯤 전에 창고에서 병사 하나가 목을 맨 사건이 있었다. 때문에 집중 관리 대상인 부대였다.


2. 내가 나온 부대는 모 군단의 강습대대, 일명 군단 특공이었는데 부대 특성상 훈련이 상당히 힘들었다. 탐색, 격멸 작전을 주로 펼치는 부대였고, 때문에 헬기를 타고 밤에 야산에 침투해 산 꼭대기에서 대기하다가 아침에 부대로 복귀하는 훈련을 주로 했다.


3. 저런 훈련을 비롯해, 매일같이 사격훈련을 하고 군장을 매고 구보를 뛰는 부대였다. 그만큼 훈련 강도가 높았기 때문에 부조리는 거의 없는 편이었다. 물론 없진 않았다. 훈련이 힘들면 딴생각을 할 틈이 없는 법이다.


4. 헬기 패스트로프나 사격, 100km 행군 등을 할 땐 엄격하게 통제하긴 했지만, 그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할 때 정신줄을 놓고 있으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특히 패스트로프는 안전장비를 하나도 착용하지 않은 채 10m 높이의 헬기에서 밧줄을 잡고 내려와야 한다. 이런 이유로도 사실 병영 부조리가 거의 없었다. 부조리를 일으키면 후임병이 언제 사고칠지 모르니까.


5. 그래도 없지는 않았는데, 주로 훈련에서 낙오되는 후임병들을 갈구는 일이 많았다. 체력이 필수인 부대였다.


6. 내가 당한 걸 굳이 꼽자면 허구한 날 본인 코딱지를 파서 내 얼굴에 묻히거나 먹이는 사수가 하나 있었다. 내가 정색하면 “야, 꼽냐?”라고 하곤 했다. 그럼 당연히 꼽지 새꺄.


7. 위병소 근무를 나가면 저 위에서 말한 놈과 항상 같이 근무를 나가야 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알 것이다. 위병소 근무를 서는 1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구타와 폭언이 있는지. 제일 끔찍한 시간이었다.


8. 저 새끼 때문에 결국 일병 말 즈음 행보관이 내가 학벌이 좋다는 이유로 중대 인사 계원을 시킨다고 했을 때 넙죽 받았다. 드라마 상에서는 준호가 D.P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생활관 내 악마 황장수를 쳐다보는데, 보직을 변경한 결정적 이유가 선임이었던 나로서는 제일 공감가는 장면이었다.


9. 우리 부대 옆엔 육군 교도소가 있었다. 우리 주 임무는 이 육군 교도소 경계 임무도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한 번은 탈영병이 생겨 부대 근처 야산을 이 잡듯 뒤지기도 했다. 육군 교도소 죄수는 아니었고, 부대 내 탈영병이었다.


10. 이런 일들이 뉴스에 왜 안 나오나 싶을 텐데, 군부대 내에서는 일주일에도 몇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가 나온다. 적어도 내가 있던 군 사령부 소속 예하 부대에서만도 일주일에 최소 한 건 이상씩은 나왔다. 인트라넷 상의 헌병대 공지로 확인할 수 있었다.


11. 육군 교도소에서 사형수들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옷 색깔이 달랐는지 아무튼 그렇게 구분이 됐다. 그중에는 생환관에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한 일명 ‘김일병 사건’의 김일병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종교 행사때 그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12. 실제 우리 부대 지휘관도 드라마 속 천용덕 중령처럼 강한 부대 육성에 목을 매던 사람이었다. 일주일에 세 번 10km 군장구보를 시키거나, 일주일 내내 사격훈련을 시키면서 전 부대원 특급전사 달성에 열을 올렸다. 때문에 무릎이 멀쩡한 부대원이 없었다.


13. 헬기를 타면 실제로 생명수당을 줬다. 10 몇만 원이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잘 안 난다.


14. 드라마 상에서 대부분의 탈영병은 부대 내 가혹행위가 그 원인인데, 그 마음이 너무 공감 갔다. 나도 그러고 싶을 때가 많았으니까. 훈련이 힘들고 군대가 답답한 건 그나마 참을만하다. 근데 가혹행위는 끝이 안 보이는 지옥이다


그래도 뭐, 그 안에서 즐거운 일들도 많았다. 힘든 게 더 많았지만, 그래도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어서 나쁜 사람도 있다면 좋은 사람도 있었다. 물론 좋은 사람이 더 많았고.


그래서 군대가 진짜로 저렇냐고 묻는다면, 진짜로 저렇다. 물론 지금은 좀 나아졌을 테지만.


이래저래 군생활 얘기를 시작하면 끝도 없다. 이렇게 많이 썼는데도 기억이 가물가물 해서 적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가끔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물론 다시 가라면 가진 않겠지만, 그때만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주어진 일과만 수행하면 되는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말이 길어졌는데 지금도 가족 친구 애인과 떨어져 힘든 시간을 보내며 나라를 지키고 있을 모든 국군 장병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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