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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Jan 22. 2016

파리의 회색

(2015.01.03 in Paris, France) - 1

파리에서의 넷째 날 아침, 그날도 하늘에선 어김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고, 회색빛의 구름은 땅과 하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었다. 도시는 하늘빛과 같은 회색이었다. 아무런 일정도 계획하지 않았던 나는 비 오는 파리의 거리 속으로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여행 8일 차, 혼자 하는 여행이 주는 편안함은 점차 지루함이라는 감정으로 변해가고 있던 참이었다. 숙소를 나온 나는 무작정 파리 중심가로 가는 메트로에 올랐다. 도착지는 오페라 가르니에가 있는 오페라 역이었다.

샤를 가르니에에 의해 지어진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 혹은 가르니에 궁 Palais Garnier)는 오페라와 발레 공연 등이 주를 이루는 파리의 국립 오페라 극장이었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였던 나는(예매도 하지 않았지만) 당연하게도 안에서 열리는 공연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무작정 찾아간 오페라 가르니에 앞에서, 나는 뜻하지 않은 공연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건 한 브라스 밴드의 버스킹 공연이었다.

브라스밴드의 버스킹이라니. 한국에선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광경이었다. 덕분에 나는 오페라 가르니에에 들어가 공연을 보지 못했음에도 충분히 행복했다.  난생처음 보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한데 뒤섞여, 그것도 오페라 가르니에 앞에서 버스킹을 구경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내게 충분히 특별하고 낭만적인 경험이 되어주었다.


이렇듯 여행지에서의 낭만은 계획되지 않은 곳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몸짓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우리는 대개 웅장한 건축물, 압도하는 자연 광경을 여행의 목적으로 삼고  그곳에 도착해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받곤 하지만, 이와 다르게 낭만은 여행의  목적보다는 여행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더 쉽게 다가온다. 아마도 그건 '낭만'은 '감동'에 비해 소소하고 따스한 느낌이기 때문일 테다.(감동은 어쩐지 단어 내부에 격렬한 힘을 내포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우리는 낯선 여행지에서 타인이 베푸는 친절, 맛있는 음식, 거리의 악사들에게 쉽게 마음을 뺏기곤 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우리에게 '여행은 역시 낭만적인 행위야'라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지만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건 여행을 떠나온 자의 마음 한구석이 늘 외롭고 퍽퍽함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약해진 여행자를 치유해주는 건, 이런 여행의 과정에서 다가오는 낭만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음악을 한참 듣던 나는 굵어지는 빗줄기를 피하기 위해 오페라 가르니에 옆의 카페 드 라 페(Café de la Paix)로 들어갔다. 오페라 가르니에와 마찬가지로 샤를 가르니에가 건축을 맡았다는 이 카페에서, 나는 오페라 가르니에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파리에서의 일정은 런던, 그리고 이후에 있을 이탈리아의 일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로웠다. 항상 시간에 쫓기는 여행자에게 21일의 일정 중 10일이라는 시간을 한 도시에 투자한 것은 꽤나 과감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 결정 덕분에, 나에게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주어졌다. 물론 단 하루뿐인 자유였지만, 그건 시간이 내게 준 사치였다.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부지런히 눈에 담아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열심히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증도 지워낸 그 하루 동안 나는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쉬었고, 발길 가는 대로 걸었으며,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카페에서 가만히 앉아 바깥 풍경을 보는 일도 슬슬 지겨워졌을 때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비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날씨였다. 어디로 갈지 잠시 생각하던 나는 파리 장식 박물관으로 향했다. 유럽에 오기 전 예술의 전당에 들렀을 때 우연히 목격한 '파리 장식 박물관전'이 떠올라 무작정 선택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무엇을 전시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 채로.


파리 장식 박물관은 루브르 박물관처럼 예전 루브르 궁으로 쓰였던 건물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이었다. 그러나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나도 예술의 전당에 갔을 때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곳이었다) 입장을 기다리는 일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덧 비바람이 강하게 몰아치기 시작한 날씨를 피할 겸 들어왔던 장식 박물관은(유럽의 날씨가 변덕스럽다는 걸 이때서야 깨달았다) 무척 조용했다. 입장을 돕던 직원도 "여기는 네가 아는 루브르 박물관이 아니다"라고 했을 정도로 일반적인 여행객은 거의 들르지 않는 곳인  듯했다. 덕분에 나는 유럽의 어느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적막 속에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마침 내가 들렀던 때는 여러 장난감들을 모아놓고 특별전 같은 형식의 전시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유독 가족단위의 관람객들이 눈에 띄었다. 귀여운 꼬마들 사이에서 아기자기한 장난감들을 보고 있자니 춥고 매서운 바깥 날씨에서 고생했던 몸도 마음도 따스하게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장식 박물관에서 한참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밝은 기운이 느껴져 옆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창밖으로 비 오는 튈르리 정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다는 증거는 저 아래서 흔들리는 겨울 나목들과 창문에 부딪히는 굵은 물방울들이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지만, 고요한 박물관 실내에서 바라본 파리는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했다.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 속, 사람 많은 튈르리 정원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시간은 정지한  듯했다. 그런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장식 박물관에 올 이유는 충분했다. 저 멀리 보이는 에펠탑과 그 뒤로 펼쳐진 회색의 파리. 그건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그곳의 모습 그대로였다.


도시에 저마다의 색을 부여할 수 있다면, 파리는 내게 회색의 도시였다. 그곳은 골목마다 차분히 가라앉은 잿빛의 회색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 위에서 다채로운 색들이 저마다 자기주장을 해보지만, 수면 아래에 깔린 강한 회색 빛 때문에 채도만 약간씩 달라졌을 뿐인 잿빛 회색이 넘실거리는 도시.


그러나 그 회색은 지금까지 내가 알던 회색과는 사뭇 달랐다. 그건 파리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다채로운 우중충함(다채로운 우중충함이라니, 듣기만 해도 기운 빠지는 느낌이다)을 내뿜는 '파리의 회색'이었다. 그 회색은 때로는 주황빛이기도, 때로는 분홍빛이기도 했다. 회색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어리석게도 파리를 여행하며 그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내게 파리는 다양한 색의 예술적인 영감이 거리마다 넘실대고 있지만, 어딘지 모를 음울함과 권태로운 회색빛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도시였다. 그곳에서 철저한 이방인이자 풋내기 불문학도였던 나는, 샤를 보들레르가 왜 '파리의 우울'이라는 제목의 염세적인 산문시집을 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파리는, 회색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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