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욱 Mar 08. 2017

황혼의 그림자를 남기며

영화 <로건>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건은 Sunseeker라는 배를 사고 싶어 했다. 바다에 나가 해를 쫓는 삶.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이미 그의 삶은 해를 쫓는 삶이 아니라 황혼의 그림자로 저물고 있다는 사실을.


엑스맨 시리즈의 탄생은 악을 무찌르는 영웅적 존재였던 기존의 슈퍼히어로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들은 미국에서 히피문화와 반전 운동이 번지던 60년대에 등장했다. 본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와 선과 악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는 슈퍼히어로. 그들은 히어로가 아닌 돌연변이, 뮤턴트로 불렸다. 엑스맨 시리즈에선 오히려 인간이 초인적 힘을 지닌 존재들을 괴롭히는 악으로 나온다.


로건에서 엑스맨들은 더 이상 초인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로건의 재생능력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찰스는 치매에 걸린 노인일 뿐이며, 돌연변이들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어린 돌연변이들은 그저 인간에 의해 탄생되고 이용되는 존재들일뿐이다. '울버린'으로 대변되는 캐릭터 자체가 자신이 누구인지 찾기 위해 분투했던 존재임을 상기해봤을 때, 이 영화는 이런 엑스맨과 울버린의 태생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미지 출처: https://www.comicbookmovie.com

로건에겐 치열했던 과거도 지리한 현재도 모두 도망치고 싶은 존재일 뿐이다. 치매에 걸린 노인이나 돌보며 리무진 기사일을 하는 현재에서 도망치려 하는 순간, 그 앞에 로라가 나타났다. 로라는 도망치고자 했던 그의 과거였다. 결국 그가 나아가야 할 곳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지 알 수 없는 내일 뿐이었다.


로건은 서부영화 <셰인>을 직접적으로 인용한다. 할리우드 서부극의 주인공은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과거의 로건이 죽지 않는 존재였다면, 현재의 로건은 서부극의 주인공이 되어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본인이 죽는 존재가 되었다. 지금까지 로건의 삶은 결국 서부극의 주인공이었다. 돌연변이 동료들이 모두 죽은 2029년에도 살아있는 그는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가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는 삶에 회의감을 느끼며 아다만티움 총알을 만지작거린다. 살아남은 이에게 과거의 영광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에게 영광이란, 그저 살아남아 내일을 사는 일뿐이다. 이것은 삶의 아이러니다.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 자가 생의 끝자락으로 내몰렸을 때, 아이러니는 다시 한번 발휘된다. 생의 끝자락에서 그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한다. 그의 삶은 '로라'로 대변되는 다음 세대를 위해 길을 내어줄 때 비로소 평온해질 수 있었다. 황혼의 어스름에 그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다 죽는다. 그가 로라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결국 너의 삶을 살라는 것이었다. 본인은 결코 한 번도 누리지 못했던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 그는 이렇게 영웅이 된다.


“여기선 살인을 저지른 뒤 살 수 없어. 옳든 그르든, 그건 낙인이야. 돌이킬 수 없어. 이제 가서 엄마에게 말하렴. 모든 게 잘될 거라고. 이제 이 계곡에 총은 더 이상 없다고.” - 영화 <셰인>


로건은 직접 차용된 <셰인>뿐 아니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를 생각나게 한다. 나이 든 세대가 자식 세대에게 자신을 희생하며 건네는 미래. 이렇게나 장엄하고 비극적인 해피엔딩이라니. 히어로 물이라기 보단 차라리 서부극에 가까운 로건은 지금까지의 울버린과 엑스맨 영화에 대한 인상까지도 바꿔버릴 수 있는 영화이자, 떠나가는 울버린의 뒷모습에 바칠 수 있는 찬란한 마지막 헌사다.

이미지 출처: http://www.foxmovies.com/movies/logan


매거진의 이전글 20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