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수의 하소연 에세이
일주일 사이 십 년은 늙은 것 같은 얼굴을 한 친구 S의 얼굴을 보자 눈물이 핑 돌며 같이 콱 죽어버리자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힘든 사람 앞에선 지나친 위로도, 감정이입도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입맛이 없다는 그녀를 데리고, 야채가 많이 든 샌드위치 가게로 갔다. 일단 해가 잘 드는 창가에 S를 앉히고, 가장 매운 소스를 추가해 달라는 친구의 오더를 받아 카운터에서 샌드위치를 기다렸다. 멍 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앉아있는 S를 바라보며 왜 이렇게 세상은 너에게 유독 가혹한 걸까 생각하며, 세상의 무수한 불공평함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푸석한 얼굴로 꾸역꾸역 샌드위치를 넘기는 친구를 보며, 나는 그만 평정심을 잃어버렸다.
“S야... 시발 세상은 왜 이렇게 좆같고, 개 같고, 불공평하냐... 대체 이 많고 큰일들을 너 혼자 어떻게 감당하라고...”
나의 아저씨에 아이유는 이선균이라도 있었지 내 친구를 지켜줄 어른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차갑고 버거운 현실 속에서도, 기어이 꿈을 꾸자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는데 오늘 처음으로 미래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 시기에 S에게 미래라는 단어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굿이라고 할 판... 가만있어 보자. 굿? 번뜩이는 표정으로 S에게 말했다.
“우리 점 보러 가자, 사주 같은 거 말고 진짜 굿하는 무당한테 가보자”
갑자기 친구의 얼굴에 생명력이 돋아났다. 아, 이래서 사람이 점을 보러 가는구나. 친구는 젊은 도령을 알고 있다며, 유투브를 검색해 보여줬다. 훈남으로 유명한 박수무당의 유투브 팔로워와 조회수가 내 다큐멘터리 채널보다 10는 더 많아 보였다. 으 ... 이놈의 지긋지긋한 외모지상주의. S와 나는 박수무당의 얼굴을 전면으로 내세운 마케팅용 유투브 썸네일을 보고, 아무래도 여기가 제일 용한 것 같다며 예약을 걸었다. 가능한 가장 빠른 시간으로 예약을 걸었으나, 지금부터 6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앞으로의 미래는 잠시 6시간 반 후로 미뤄두고, 일단 날도 좋으니 가게 밖으로 나가 동네를 슬슬 걸어보기로 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드물게 쾌청한 날씨였다. 친구네 동네는 나무와 꽃이 아주 많아 보였고,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거리마다 asmr처럼 잔잔하게 깔려 특유의 생명력이 넘쳐났다. 놀이터를 지나치며 술래잡기하며 뛰어다니는 귀여운 어린아이들 그리고 벤치에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떠는 할머니들을 구경했다.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어떠한 걱정도 없이 행복해 보였다. S에게 말했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 뭐 별거 있냐고. 그냥 이런 거 아니냐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저 안심할 수 있는 일상을 보내는 거 아니냐고. 아무 말 없는 S와 나는 걷고 또 걷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옛날에 많이 사 먹었던 백 원짜리 불량식품들과 문구 류들 사이에 먼지 쌓인 별 접기를 발견했다. 갑자기 별을 접고 싶어졌다. 현금이 없었던 나는 s에게
“이 와중에 미안한데, 천원 있냐?” 말하고, 기어이 그녀에게 구걸하여 별접기를 획득했다. 그리고 근처 S의 단골 카페에 들어가 그녀가 좋아하는 당근 주스와 흑임자 케이크를 먹으며 별을 접었다. 손재주가 좋은 S가 단숨에 별 세 개를 예쁜 모양으로 접는 사이, 간신히 엉망진창 별 하나를 완성해 그녀 손바닥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야 ~선물 ~ ^^”
S는 입가에 삑사리 같은 웃음이 새어 나왔고, 이건 좀 심하지 않냐며 나를 나무랐다. 우리는 낄낄낄 생각 없는 애들처럼 막 웃었다. 2시간 전에 그렇게 악쓰며 같이 꽉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시계를 확인해보니 점을 보러 가기까지 여전히 3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근처 S의 자취방에 잠깐 쉬었다 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방이 지저분하다며 절대로 안 된다던 S는 본인도 꽤 고단했던 모양인지 대신 방을 치우기 전까지는 절대로 들어오면 안 된다고 당부하고 벤치에 나를 앉혀 놓은 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의 청결도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을 굳게 믿던 나는 꽤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다 예상하고 벤치에 앉아 빌라 앞마당에 심어놓은 화분들을 구경했다. 화분에 커다랗게 솟아난 청순한 하얀 꽃. 그 꽃들이 S의 매일의 기분을 지켜줄 것 같다는 생각에 안심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금방 S의 부름을 받고 자취방으로 들어가 두 번째 안심이 들었다. 집 안이 너무나 깨끗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살림이 제대로 된 집. 그 안에 사용감이 있어 보이는 든든한 밥솥과 30대가 되면 꼭 섭취해야 하는 영양제들을 보며 내가 자취를 시작했을 때 S가 건네주었던 집들이 선물이 떠올랐다. 감기약, 마데카솔, 후시딘, 소화제 같은 것들이 잔뜩 담긴 가정용 상비약. S는 어떠한 최악의 순간에도 자신을 방치시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S는 침대에 앉아 티비를 틀고, 나에게 말했다.
“나... 매일 하루하루만 살아가면 되는 거지?
“응, 그러다가 너무 힘들면 오늘처럼 좋아하는 것들로 잠시 도망치면 돼”
그리고 우리는 점집 예약을 취소했다.
왠지 점집에 가지 않아도 미래를 맞이하는 방법을 알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