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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설게하기 Sep 21. 2020

무소유를 소유

코로나 백수의 한풀이 에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허기진 마음으로 사람들이 마트에 들른다면 나는 서점에 들른다. 이렇게 말하면, 엄청난 지식인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냥 서점 평대에 놓인 것 중 제목이 주는 정서가 내가 필요한 허기와 맞닿아 있을 때 프롤로그를 훑어보고 대충 합격이라는 생각이 들면 구매한다. 

 그런데 실패 확률이 너무 컸다. 공복에 쇼핑을 하면 보상 심리로 인해 충동구매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맞닿아있는 이치다. 이사 올 때 엄청난 양의 새 책을 알라딘에 팔았을 때 고작 한 권의 책값으로 환원되는 것을 보고 무작위로 책 사는 소비 습관부터 고치겠다고 ‘어제’ 결심했는데... 아우 모르겠다. 지금 마음의 허기로 치면 아사 직전인데 수화기를 들어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싶다 들들 볶느니 만 오천 원짜리 책 한 권으로 혼자 위로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인 듯했다. 



 오늘 산 책 제목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책을 구매한 이유는 열심히 살고 싶지 않은 욕구 때문일 것이고 동시에 이 작가는 틀림없이 열심히 살았을 게 분명할 것이기 때문에. 작년에 읽었던 김하나 작가의 ‘힘 빼기의 기술’에도 같은 맥락이 있었다. 


요즘 나의 별명은 망원동 혜민스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내 놓은 뒤 결코 멈추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속세를 질주하고 계신 혜민스님처럼, 나도 ‘힘빼기의 기술’이란 책을 내놓고는 좀처럼 힘을 빼지 못한 채 바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힘 빼기의 기술> 김하나 

 


그 이후로 김하나 작가님의 근황을 인스타에서 훔쳐보면 팟캐스트와 각종 행사 mc부터 신간까지 그 누구보다 힘찬 나날을 살고 계시는 듯하다. 물론, 힘 뺀 느낌으로 힘차게! 이것은 무작정 힘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같은 맥락으로 이 책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은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을 열심히' 하는 방법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의 저자 하완 작가는 책의 제목처럼 맹목적으로 열심히 사는 삶의 레이스에 기권을 선언한 후 나이에서 오는 조급함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의 나이를 줄이기로 결심한다.


 그럼 우선 나이를 정해야지. 돈은 안 되지만, 재미있는 일에 도전해도 괜찮은 나이는 몇 살일까? 마음 같아선 20대로 해버리고 싶지만 그건 너무 염치가 없고, 그래, 서른두 살이 좋겠다. 아, 진짜로 그 나이로 돌아간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엥? 글귀를 읽던 32살의 김송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 나이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나이라고? 누군가 간절하게 돌아가고 싶은 그 창창한 나이!? 

갑자기 스물다섯 살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적당한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기 때문이다. 스물다섯 살이 되면 나는 뭘 하고 싶을까? 리스크가 너무 커서 못 해본 한 가지가 단숨에 떠올랐다. 



 직접 시나리오를 써서 극 영화를 찍는 것. 스토리 있는 CF 영상 말고, 영화 같은 느낌의 뮤직비디오 말고 순수하게 영화. 대부분의 영상인들이 꿈꾸는 최종 목적지 영화. 그레타 거윅 감독이 연출한 작은 아씨들과 레이디버드처럼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그리는 영화. 그녀들이 재미있거나 중요한 일을 하고, 다양한 외모와 취향을 가지고, 자기 일을 사랑하고, 정의롭고, 연인에게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권력과 야망을 품고 그런 과정 속에서 그들을 두렵게 하고 약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계속 나아가는 영화. 상상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다 이내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영화감독 중에 빚 없는 사람 봤니? 갑자기 허파에 무슨 바람이 들었어....이 나이에 영화는 웬 영화?” 

 

음...

음...

음...


아니지 ! 허완 작가는 자신이 32살이라고 최면을 건 이후 용기를 내어 에세이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으니 나는 서른둘이 아니라 스물다섯인 아닌가?  



순간 읽던 책 맨 뒷장을 펴 보았다. 



<초반 24쇄 발행. 2019년 7월 1일>



24에 작가에게 들어오는 1쇄 금액을 곱하기했다. 



'많이 버셨네....'



책이 몇 쇄 팔렸는지 맨 앞장이나 맨 뒷장을 들춰보는 것. 별로라는 걸 알면서도 책만 보면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다. 

이미 순수한 마음만으로는 뭔가가 시작이 안되는 32살의 김송미는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을 열심히 한 책의 인세를 가늠해보며 세속적인 의도 없이 세속적이고 싶은 마음과 돈 밝히는 의도 없이 돈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을 서서히 품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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