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tera - Live In A Hole
캠핑과 인간관계의 공통점 중 하나는 ‘화’를 다스리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캠핑에서 불을 너무 세게 피우면 (불이 나는 것 이런 거 말고) 재가 날리고 너무 뜨거워서 고기가 죄다 타고 기분도 잡치게 된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노긍정처럼 사는 게 쉬워 보여도 이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화를 내지 않으면 심한 경우 ‘이래도 허허, 저래도 허허’ 하는 무른 사람 취급을 받을 거고, 그렇다고 떠오르는 화를 모두 내뿜으면 ‘저 미친 싸움꾼’, ‘인간 캡사이신!’ 하며 왕따 당할 거고.
음악도 마찬가지다. 내 연주와 노래에 어떻게 내 ‘화’의 기운을 담아내느냐가 그 노래의 분위기를 좌지우지 한다. 밴드가 함께 연주하다 보컬이 아무 때나 막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기타가 갑자기 날카로운 고음을 남발하면 그게 어디 들을만하겠나… 부드러운 음악에도 그 '화'의 기운은 꼭 필요하고.
헤비메탈은 ‘화’의 기운을 뭉쳐 만든의 음악이다. 여기서 잠깐, 요즘은 보컬이 날카롭게 질러대는 샤우팅과 짐승처럼 그르르르 거리는 그로울링이 들어가면 ‘헤비메탈’, 그냥 정상적으로(?) 멜로디를 부르면 ‘록’으로 분류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고… 사실 록과 헤비메탈 모두 표현의 방식이 조금 다를 뿐, 모두 기본적으로 억눌린 화를 분출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음악이다.
‘화’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밴드는 ‘판테라’다. 1980년대 초반 당시 말람 말랑하던 팝 메탈을 하던 판테라는 밴드 활동을 아무리 해도 인기가 없자 고민에 빠진다. 여러 가지로 고민하던 중 가창력을 기반으로 한 날카로운 샤우팅과 힘 있는 그로울링을 주무기로 한 보컬 ‘필립 안셀모’를 영입한 판테라는 결심한다.
그래, 말랑말랑은 무슨… 달리자.
그런 각오로 판테라는 밴드 리더인 기타리스트 다임백 대럴이 설계한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기타 프레이즈와 든든한 리듬 워크 위에 필립 안젤모의 공격성을 끼얹어 명징하게 직조해낸 그들의 변신 앨범 ‘Cowboys from Hell’은 평단의 지지와 팬들의 열광을 한 몸에 받으며 밴드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과연 판테라가 변신 후 성공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켰다고 하지만, 사실 ‘Cowboys from Hell’은 각 멤버들의 본능을 깨워준 앨범이었다. 말랑말랑한 음악을 연주하던 그들은 음악이 180도 바뀌면서 여과 없이 그들의 공격성을 노출하게 된다. 이 앨범에서 그들의 음악은 그냥 화 그 자체이다. 모든 멤버들이 열 받아서 소리 지르듯 연주하는 모양새에 엄청난 힘이 느껴졌달까.
이 비디오는 '으르신'들이 이야기하는 ‘소련’이 무너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Live at Moscow Monsters of Rock’의 한 장면이다. 헤비메탈을 부담스러워하시는 분들에게는 고역이겠지만, 흑백 필름으로 촬영된 영상에서 판테라의 모든 멤버는 모두가 열 받은 듯 강하게 자신들의 연주를 펼쳐낸다. 그들의 화에 응답하는 모스크바의 관중들은 경찰들의 곤봉을 맞아가면서도 밴드와 서로 화를 주고받으며 음악을 즐긴다.
이 공연 이후 판테라는 명실공히 록/헤비메탈 씬의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로 자리 잡는다. 이제 전 세계적인 인지도도 확보했겠다. 판테라는 그다음 앨범 작업에 착수한다. 그렇게 탄생한 앨범이 전설의 명반 <Vulgar Display of Power>다. 이 앨범은 이미 표지부터 화나있다. (필시 아주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 여겨지는) 사람의 죽탱이를 힘차게 날려버린다니.
하지만 커버와는 달리, 이 앨범에서 판테라는 어떻게 화를 내야 효과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한 구성을 모든 트랙에서 보여준다. 첫곡 <Mouth for War>로 시작하는 모든 노래에서는 화의 완급 조절을 모티프로 한 사운드를 여지없이 펼쳐낸다. ‘강약중강약’이라는 리듬의 기본을 노래에 적용한 것처럼, (물론 시작이 50부 터지만) 피아니시모부터 포르테시모까지 펼쳐진 다양한 종류의 화를 긴장감 있게 펼쳐내는 판테라의 이 앨범에 정말 반해버렸다. 아쉽게도 기타는 너무 어려워서 따라 하려고 마음도 먹지 못하겠더라.
그중 가장 완급조절이 돋보였던 곡은 앨범의 8번 트랙, 흔히 이야기하는 B사이드 수록곡인 <Live In A Hole>이다. 강렬한 폴리 리듬으로 시작해 기타 솔로로 이어지는 1분가량의 인트로에서 기타리스트 다임백은 ‘듣기 싫음 꺼지든가’라 하는 듯 연신 불협화음이 섞인 트리키한 플레이를 펼쳐내고... 잠시 호흡을 고르다 펼쳐지는 기타와 베이스, 드럼의 콤비네이션이 이어지나 싶더니 어느새 필립 안젤모의 독백 같은 보컬이 이어진다. 이러한 넘실넘실을 반복하다 3분가량부터 시작하는 밴드의 변주와 테크니컬 한 기타 솔로는 또 분위기를 확 반전시킨다.
그러나 이 노래의 백미는 2분 30초부터 2분 50초까지이다. 넘실넘실한 연주가 이어지다 공격적으로 뱉어대는 필립 안젤모의 2절 두 번째 보컬 버스. ‘Cause they understand what burns in my mind’ 부분을 마무리하는, ‘Mind~’의 감아주는 숨소리까지 느껴지는 샤우팅에서는 필립 안젤모의 진정한 빡침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의 화를 들을 수 없다. 이후 네 장의 앨범을 더 발매 한 후 자신의 음악을 하겠다며 판테라를 해체하고 음악 생활을 계속하던 기타리스트 '다임백 대럴'은 라이브 클럽 연주중 보컬 필립 안젤모의 광팬의 총격에 죽어버렸거든...
요즘은 세상이 힘들어서 그런가? 이렇게 강한 화를 담은 노래는 좀처럼 나오지도 않고, 나왔다고 해도 별 인기를 끌지 못한다. 미디어에서 들리는 음악들은 죄다 샤방샤방하고 말랑말랑한 것들 뿐. 어렸을 때부터 록 음악을 듣고 자란 나는 뭔가 허전한 마음이다. 물론 힙합과 재즈도 좋아하고, 요즘은 국악 밴드 ‘상자루’에 빠져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음악의 향수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얼른 뮤지션도 관람객도 소리 꽥꽥 지르며 뛰어노는 페스티벌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