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ly Dan - <Gaucho>
*음향 전문지 '월간PA'의 기자로 3년 넘게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 고가의 노이즈 캔슬링 블루투스나 비싼 이어폰을 구입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성능을 크게 체험하시는 분들이 없는 것 같아 이렇게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좋아요, 구독, 댓글 부탁드립니다. 언제든 반론 환영합니다.
예전에 나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에 크게 돈을 들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길거리 시끌벅적한 데서 듣는게 좋아봐야 얼마나 더 좋다고… 그냥 아이팟이나 MP3 플레이어를 샀을 때 번들로 주는 이어폰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2008년도였던가? 초청을 받아 갔던 Shure의 신제품 발표회의 기념 선물로 Shure E3C 모니터링 이어폰을 선물로 받았더랬다. 당시 가격이 한 18만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처음 써보는 고급 이어폰이었다.
이래저래 사양을 살펴본 후 이어팁을 선택하다 보니 어느새 내릴 역에 다 와서 주섬주섬 아이팟에 이어폰을 연결하고는 전철에서 내려섰다. 처음엔 멋모르고 역 플랫폼을 내려선 후 자판기에서 콜라 캔을 하나 뽑아 마시며 걸어가다 역에서 지상을 통해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그제서야 음악을 재생했다. 노래는 Steely Dan의 세 번째 앨범 ‘ Gaucho’의 타이틀 넘버인 <Gaucho>. 갑자기 천국이 펼쳐졌다.
Steely Dan은 밴드로 최고의 재즈팝 사운드를 만들겠다는 도널드 페이건과 월터 베커의 의지로 탄생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지금으로 치면 유희열의 TOY와도 같은, 인기보다는 음악적 완결성에 방점을 찍은 팀이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은 Steely Dan의 이러한 노력이 정점에 오른 결과물이다. 대부분의 드럼에는 세션 드럼의 정점을 찍은 스티브 갯과 제프 포카로, 기타에 마크 노플러와 래리 칼튼, 하이럼 벌록이 포진하고 있다. 베이스 기타에는 안소니 잭슨, 색소폰 주자인 데이빗 샌본 등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세션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 불세출의 세션 트랙은 이글스와 에릭클랩튼의 엔지니어이자 푸 파이터스와 데이빗 보위와 함께 한 엘리엇 샤이너가 믹스했고 마스터링은 최근 은퇴한 다프트펑크의 ‘Randon Access Memories’와 ‘비욘세’의 앨범을 마스터링한 밥 루드윅이 담당했다.
이 음반은 ‘최고로 믹스가 잘 된 앨범’으로 칭송받으며 많은 엔지니어들이 음향 튜닝의 레퍼런스로 삼고 있는 앨범이다. 음악적으로도 너무 완벽하게 조율되어 있고 하모니와 작곡, 편곡 모두 눈물나게 완벽하다. 하지만이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은 'Balance'다. 각 악기의 레벨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가운데 완벽할 정도로 정확히 믹스되어 있다. 1980년대에 만들어진 앨범이지만, 지금도 완벽한 밸런스와 음압을 느낄 수 있다. 기자와 엔지니어 선배들이 왜 이 노래를 번들 이어폰으로 들어서는 안되는지를 그때야 느낄 수 있었다.
색소폰의 숨고름과 호흡이 명징하게 느껴진다. 스네어 드럼의 명확한 노트 플레이는 물론 살금살금 스네어 헤드를 건드리는 고스트 노트 플레이까지 정확하게 들리며 노래가 더욱 리드미컬해 졌다. 약 40초 간의 전주가 끝난 후 도널트 페이건의 느끼한 보컬이 시작되면서 또다른 우주가 시작된다.
보컬에 걸린 섬세한 리버브와 뒤를 받쳐주는 베이스와 키보드, 월터 베커의 일렉트릭 기타의 깔끔한 플레이가 비어있는 사운드 스펙트럼의 모든 부분을 채워준다. 노래의 시작부터 마지막인 5분 30초까지, 사운드의 빈 곳은 바늘 구멍 하나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처음 이 노래를 Shure E3C로 들은 그 날... 정신을 차려보니 노래가 끝나고 나는 지하철 역 계단 출구 앞에 서있었다. 사운드에 압도되어 5분 30초 동안 그냥 듣고만 있었나보다. 이날 나는 그 자리에서 <Gaucho>를 계속 반복하면 네 번은 들었던 것 같다. 잘 만든 인이어가 주변의 모든 소음을 차단한 가운데 울리는 정확한 위상과 레벨을 유지하는 사운드로 인해 Steely. Dan의 위대한 음악성과 그 뛰어난 사운드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이건 흔히 이야기하는 ‘개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을 정말정말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매일 출퇴근하고 주변을 오고가며 듣는 이어폰에 조금 더 비용을 투자해 보자. 매일 그냥 습관적으로 오가며 듣던 음악이 또다른 흥분과 재미로 다가오리라 믿는다. 앞으로 그런 음악도 많이 추천해 줄라니까. 나 믿고 따라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