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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May 21. 2021

타향에서 암사동 추억 소환한 떡볶이집

김포 오일장 부근 '오달통 분식

요즘에는 대부분 프랜차이즈화 되어버렸지만, 예전에는 동네마다 시그니처가 되는 떡볶이집이 하나쯤은 있었다. 2003년 정도까지 서울시 강동구 암사 1동 부동의 1위는 암사동 성당 맞은편 ‘암사분식’이었다.

무려 즉석 떡볶이집이었던 암사분식은 상에 버너를 놓고 냄비에 끓여먹도록 하는 그런 방식이 아닌, 주문 들어오자마자 즉석에 떡볶이를 볶아내는 그런 집이었다. 난 1988년도부터 매주 거기를 들락거린 만큼, 그 레시피도 정확히 기억한다.

암사분식은 문 닫은지 오래돼서 자료를 찾을 수 가 없다. 다음 뷰로 본 암사동 성당 맞은 편, 저 건축 설비집 자리인데...

냄비에 물이 끓으면 부러 섞어놓은 고춧가루와 다진 파, 고추장과 조미료를 넣고  일정 분량의 밀떡과 쫄면을 넣어 약 2분간 팔팔 끓인다. 1인분에 떡볶이 한 줌과 쫄면 한꼬집, 2인분은 정확히 그 과정을 두 번, 3인분은 세 번 반복한다. 4인분 시키면, ‘그냥 3인분 무라. 냄비가 작아서 안된다’며 손사래를 치시고, 그냥 3인분에 떡과 쫄면을 조금 더 넣어주신다.  

‘할아버지, 김밥이요!’ 하면 밥 한덩이를 참기름과 맛소금에 비빈 후 김에 얹어, 미리 썰어놓은 단무지와 오뎅, 계란 지단을 한 줄씩 얹어 대강 말아 썰어낸다. 라면을 시키면 얄짤없이 끓는 물에 라면만 넣은 후 파를 조금 넣고 김밥용 계란 지단을 잘게 썰어 넣어주신다. 떡볶이와 김밥, 라면 모두 1인분 1,500원. 지금부터 거의 20년 전이라도 싼 값이다.


암사분식은 암사동 성당 초중고등학생은 물론 동네 1030들의 사랑방과도 같았다. 할머니는 단무지를 직접 담그셨는데, 단무지 좀 더 달라 하면 ‘야이 시끼들아 니들 단무지 더줄라카면 내가 떡볶이를 몇그릇을 더 팔아야 되는지 아나 모르나’ 궁시렁거리시면서도 아주 듬뿍 담아주셨다. 가게가 문을 닫은 후 2010년인가, 지나가다 할아버지를 만나 꾸벅 인사를 드렸더니 '아이고마 이자슥 이제 아자씨 돼부렀네' 하며 어깨를 두드려주셨던 기억이난다. 그런데, 그런 ‘느낌적 느낌’의 떡볶이집을 엉뚱하게 김포에서 만났다.


어쩌다 인천에 가까운 김포로 외근갔던 중 골목을 헤메다 찾아갔던 분식집. 배가 좀 고파 라쫄 떡볶이와 김밥, 만두를 한꺼번에 주문했다. 허름한 가게에는 이른 점심을 해결하는 몇몇 손님이 계시고… 잠시 팟캐스트를 들으며 시간을 버리고 있자니 금세 떡볶이가 나왔는데….

저 그릇이 거의 짜장면 그릇 만하고 생각보다 깊다

오? 이거 짜장색이 도는 것과 라면 사리가 들어간 걸 빼면 암사분식 추억의 떡볶이와 진짜 비슷하다. 비주얼은 그럴싸하네? 일단 한젓가락 떠먹어보니, 짜장 컬러에 비해 그다지 짜장맛은 나지 않고 좀 심심해도 먹을만하다.

있을 것 다 있는 의외로 든든한 김밥

다소 빈약해 보이는 김밥이지만 단무지와 계란 지단, 햄과 게맛살 등 들어있을 건 다 들어있다. 하나 입에 넣어보니 의외로 알맞은 소금간에 참기름 향이 꽤 잘어울리더라.

모두가 아는 고향만두 스타일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별 기대 안하고 시킨 만두는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그래도 전자렌지에 그냥 돌리지 않고 찜통에 쪄서 그런지 촉촉하게 잘 삶아졌다. 심심한 간장에 찍어먹으면 굿굿. 몇 개 먹다 김밥과 만두를 떡볶이 국물에 찍어 단무지와 함께 먹어도 좋다. 아, 옆 테이블에서 공깃밥을 시켜 떡볶이 국물에 부은걸 보니 공깃밥 그릇 바닥에 김가루가 잔뜩 깔려있더라.  

시킨 공깃밥을 떡볶이 위에 엎으니, 저렇게 김가루가 수북

어후. 떡볶이와 김밥을 반만 먹었는데도 벌써 배가 슬슬 불러오는구나. 그래도 배가 고프니   힘을 내어서 만두까지 모두 클리어했다.  짜장색 떢볶이와 김밥, 만두의 가격은 얼마일까?

저게 다 4,000원. 아니 땅파서 장사하시나...

정답은 4,000원. 응? 떡볶이 하나 가격이 아니라? 이게 무슨 밑도 끝없는 숫자지… 글을 쓰면서도 이 말도 안되는 가격을 얼른 까고 싶어 키보드가 근질근질 했다. 떡볶이 1인분 2천원, 김밥 천원, 만두 10개 천원… 아니, 재료를 어디서 훔쳐온건가?

메뉴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시키면 2만 500원이다. 심지어 저게 오른 가격. 단, 만두사리는 떡볶이 주문 전 이야기해야...

먹다가 문득 궁금증이 들어, 메뉴판에 있는 모든 메뉴를 다 더해봤다. 오… 없어진 떡만두국 제외하면 2만 500원이네… 저렴한 가격까지 암사 분식과 판박이다.

이 집의 떡볶이와 김밥 등 음식이 뭐 특별나게 맛있다거나 간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예전에 친구들과 암사 분식에 모여 주인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심심하다고 잔소리 들으며 먹었던 그 기분이 들어서 그런지 음식을 다 먹고 가게 밖을 나서니 무슨 힐링 여행을 한 기분이다. 이 집의 이름은 ‘오달통 분식’. 김포 오일장 부근에 있다니 참고. 아, 카드 계산은 안된다. 그리고 이런 집 오려면, 현금 좀 준비하는게 사람 사는 도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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