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음악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준 음반
써서는 안 될 말이지만, ‘왜색’*이라는 단어가 있다. 유화해 번역하자면 ‘일본풍’이라는 말로, 일단 접두어인 ‘왜’(倭)라는 말만 봐도 일본 색채가 묻어있는 문화를 얕잡아 표현하는 말이다. (박정희 이래로 내려오는 한국의 매국노 관료들과 거기 선동당한 국민들 탓이기도 하지만) 아직 ‘위안부’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고 독도와 재일 한국인, 혐한 등 가까운 거리만큼이나 수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만큼, 저런 말이 남아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초기 무한도전 등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과 일본 노래를 표절한 셀 수도 없는 히트곡이 증명하듯, 당시 한국만큼 일본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은 곳도 드물었다. 심지어 문화 개방 전인데도….
일본문화 개방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김대중 정부 당시, 뉴스에서는 ‘일본이 한국 문화를 모두 잠식할 것’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는 뉴스를 TV와 신문에서는 펑펑 터뜨려댔었다. 당시 개봉하자마자 ‘러브레터’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 영화들이 개봉되고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다자이 오사무 등 일본 소설이 번역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음악계 역시 일본 뮤지션들의 음반이 공식적으로 유통되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내 서서히 수그러들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고레다 히로카즈’의 몇몇 영화와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 정도가 그나마 관심 있는 일본 문화가 아닐까?
하지만 단순히 ‘일본’이라는 딱지를 붙여 외면하기에, (과거형이기는 하지만) 일본은 문화 강국임에 분명하다. 애니메이션 사업만은 전 세계 어디도 일본을 따라잡기 힘든 상황. 게다가 한 풀 꺾이기는 했어도, 아직도 ‘베비메탈’ 같은 일본 메탈 아이돌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코로나 아니었으면 세계 메탈계는 얘들이 주름잡았을 듯)
그리고, 한국처럼 7080 뮤지션들이 문화 탄압을 받지 않아서인지 일본에는 거장 뮤지션이 꽤 많이 활동하고 있다. 90년대~2000년대 한국 팝 뮤지션들 중 m-flo와 몬도그로소, 오자와 켄지, 프리템포, 피시만스, 피지카토 파이브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받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더 빠를 듯. 페퍼톤스 역시 ‘심벌즈’의 영향을 고백하기도 했다. 세상을 달리 한 누자베스 역시 전 세계 칠아웃 사운드에 한 획을 그은 인물.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혼의 단짝이라 하는 ‘히사이시 조’ 역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뮤지션. 그러나 여태까지 언급한 모든 뮤지션들의 이름값을 모두 합쳐도 이 한 사람의 지명도만은 못하지 않을까? (음악이 아닙니다. 지명도만. 흥분 금지!)
류이치 사카모토는 일본 음악 교과서에 실릴 만한 인물이다. 아이돌 작곡가로 출발해 일본의 팝 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Yellow Magic Orchestra’의 멤버(이자 비주얼 담당)이기도 했지만, 존 케이지, 백남준 등 플럭서스 운동의 영향을 받은 그는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클로드 드뷔시와 바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아방가르드 클래식과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 장르를 시도하는 동시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와 ‘리틀 부다’의 영화음악으로 시작해 한국 영화 ‘남한산성’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골든글러브를 안겨준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 등 수많은 영화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사카모토의 음악도 예외는 없었다. 그가 보컬 없는 음악을 냈을 때의 음반은 발매가 됐지만, 초기에 그가 재즈와 전자음악을 섞은 묘한 팝 음악을 주로 하던 때의 음반은 당최 한국에서 구할 수가 있어야지.
하지만, 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것 아니겠나. 당시 서울 동남쪽 불법 수입 음반의 메카이던 ‘상아 레코드’를 통해 그의 1989년작 <Beauty>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맥도널드 빅맥 세트가 5천 원을 넘지 않았던 1997년 당시 CD를 4만 원에 팔았으니 이 도둑노무 새끼들. 돌아오는 길 CD플레이어에 저 음반을 넣고는 그만 첨부터 끝까지 정주행 해버렸다.
정주행 후 처음 마음에 들었던 노래는 <Rose>. 앨범 두 번째 트랙인 이 노래는 신비하게 깔리는 피아노와 신디사이저 위로 뭉근한 플렛리스 베이스가 하모닉스와 멜로디를 번갈아 연주하며 시작한다. 보컬은 류이치 사카모토 본인. 역시 노래를 좀 못해도 음색이 깡패구나. 자코 파스토리우스가 치는 듯한 베이스 라인에 음산한 듯 유려하게 변하는 멜로디는 (조금은 유치한 주제지만) 화려한 장미의 아름다움과 가시의 공격성을 모두 표현하는 듯 신비하게 흘러간다.
충격받았던 노래는 <Romance>. 신스 베이스와 드럼 라인을 풍부하게 채워주는 리버브와 코러스, 딜레이와 하모나이저가 매력적인 기타를 얹은, 지금 들어도 세련된 사운드에 오키나와의 민요를 능청스럽게 얹어낸 이 노래. 처음에는 어렸을 때부터 주입받은 소위 ‘왜색’에 대한 거부감에 고개를 갸우뚱했던 것 같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일본어는 가사가 아닌 사운드 자체로 느껴지더라.
이후 다른 트랙인 <Asano Yunta>와 <A Pile of Time>, 세네갈의 보컬리스트 ‘Youssou N’Dour’와 함께 한 <Diabaram> 등 모든 트랙이 다르게 들리더라고.
류이치 사카모토도 일본 사람이니 아무래도 일본의 정서가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일본 색을 사용한 것은 ‘일본’을 사운드에 새기기보다 하나의 도구로 일본 음계와 악기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상 전통악기의 사운드 특징은 세계적으로 비슷한 것이 많고, 그 음계들도 어레인지가 다를 뿐 대동소이한 경우가 많으니까.
하필 그것이 ‘오키나와’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메이지 유신 시절 일본에게 강제로 합병된, 지금도 아베 반대 운동이 가장 맹렬히 벌어지고 있는 오키나와의 전통 악기와 음계들을 전 세계를 겨냥하는 월드뮤직의 요소로 썼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너무 갖다붙이나...)
세네갈 외에도, <Beauty>에는 다양한 나라의 악기와 사운드들이 사용되었다. 이 음반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 일본풍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완화되면서 좋은 일본 음악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이 음반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 일본풍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완화되고, 음악 그 자체로만 일본 음악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일본 음악들을 많이 만난 건 그 보너스.
혹시 일본을 찬양하는 우익 인사나, ‘재팬 퍼스트’가 아닐까 생각해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접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 걱정 마시라. 이 양반 췌장암 수술받고 투병 이후 공식적으로 나선 첫 행사가 아베 신조의 안보 법안 반대 시위라니 뭐 말 다했지. 오히려 일본 극우단체의 조롱을 받는 인물이라고 하니 안심하자. 그리고 이 아저씨 의외로 모에모에 한 면이 있다. 이런 것도 뒤집어쓰고.
*왜색이란 말을 왜 쓰면 안 되냐고 갸우뚱하거나, 왜 그게 안되냐고 따지고 싶은 분은 생각해보자. '미색', '영색', '불색', '독색'이란 말은 왜 없는지. 누군가를 싸잡아 비하하는 건 그 자체로 안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