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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Jun 08. 2021

다음에 잘하자, 좀 못하면 어때?

힘내라는말에 왠지 기운이 빠질 때가있잖아요들?

세윤이는 초6 때부터 이미 청소년 국가대표 에이스로 모든 대회의 우승 트로피로 저글링을 하고 다니는 여자 배드민턴 에이스다. 타고난 재능보다는 꾸준한 연습으로 올라온 ‘노력형 천재’인 만큼, 그의 완벽주의적인 연습과 해외에서 치러질 대회에 대비해, 그 지역 온도에 맞춰 에어컨을 틀어놓고 실전 연습을 하는 그의 모습에 어른들도 별 걱정은 없다. 거기에 준수한 외모에 보이시한 헤어스타일까지 갖추다 보니 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그의 팬. 


그러던 중 한국 대표로  뉴질랜드 퀸스타운 세계 청소년 배드민턴 대회 결승에 올라간 세윤이. 경기 전날 다른 학년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감독과 코치진의 조언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워낙 그를 믿는 스태프들은 ‘너 하던 대로 해. 그럼 우승이야’라며 격려를 건네고, 함께 참가한 다른 국가대표들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은 세윤이가 무슨 말을 듣고 싶었는지는 생각하려 하지도 않는다


마침 도착한 학교 선생님들과 선후배, 배드민턴부 동료들의 메시지는 온통 ‘한세윤 우승 축하, 파이팅’ 등 희망적인 메시지뿐이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시무룩한 세윤은 가장 꼬래비로 도착한 남자 배드민턴부 윤해강의 인사말 “내 생각에 너는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했어. 지금도 충분히 충분하고 대단히 대단하단 말이야.”를 듣던 끝에 세윤이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래서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져도 돼, 한세윤. 꼭 이번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그동안 고생했다. 
기대되는 배우, 아니 현재도 기대 이상으로 너무 잘하는 배우 탕준상이 윤해강 역을 맡았다


드라마 '라켓 소년단'은 수많은 반전과 칼부림, 복선이 난무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간만에 순수함을 구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드라마다. 성인 배우들도 좋지만 특히 윤해강 역을 맡은 떠오르는 루키 탕준상 배우의 연기가 아주 좋다.


요즘 동아리 후배와 성당 후배들을 보면 진짜 대단하고 장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고등학교건 대학교 건 예전과는 다른 공부 과목과 분량도 모자라, ‘필수’라며 강요 아닌 강요를 받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지… 무슨 포커 카드처럼 자격증을 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학연수에 워킹 홀리데이, 몇 번이고 회사 인턴 과정에 도전하기까지 한다. 

난 자격증이라고는 운전면허랑 이게 다였던 것 같은데...

그런데 신기한 것은 진짜 스펙도 좋고 자격증도 빵빵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후배들도 속으로는 불안해하더라고. TOEIC이나 자격증 시험을 볼 때는 막 자신 있어하고 자랑하던 녀석이 취업 시즌이 되면 엄청 불안하고 초조해하더라. 그런 친구들에게 내가 불러준 노래는 결국 <슈퍼스타>로 대표되는 알량한 위로다. (그 노래를 비웃는건 아님 주의. 내가 알량하다는 말)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청춘을 격려하는 송가의 역할을 했던 이한철의 <슈퍼스타>의 후렴구는 이렇다. 분명 활기차고 희망적이지만 어떻게 보면 이보다 더 갑갑한 가사가 없지 싶다. 지금 나는 미칠 듯 갑갑한데 잘되긴 뭐가 잘돼. 차라리 가을방학의 <호흡곤란>의 첫 구절이 오히려 공감을 살지도 모르겠다. 


힘내라는 말에, 왠지 기운이 빠질 때가 있지. 너는 알겠지?


청춘들에게 잘될 거라고 희망을 주고 격려해 주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 1등이 있으면 꼴등도 반드시 있고, 윷놀이에서 매번 윷, 모만 나오라는 법은 없다. 나는 그때 후배들에게 세윤이에게 해강이가 해줬던 대로, 그 잘난 격려보다는 술 한잔 사주며 위로와 공감을 해줬어야 했다. 


재즈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송용창은 이 노래에서 ‘좀 못하면 어때. 뭔가를 간절히 원한다면. 참 멋지지 않니? 뭔가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좀 어설프고 못해도 그 자체로 멋질 수 있다고 노래한다. 원래 기타리스트였던 만큼 보컬 수업을 받지 않은 어정쩡한 창법에 투박한 보이스로 이 노래를 하니 좀 더 진정성 있게 느껴진다. 


 크라잉넛은 그들의 싱글 '다음에 잘하자'에서 '모든 걸 여기 다 쏟아붓진 마 오늘 하루 할 만큼 했잖아. 다음에 잘하면 되니까 테킬라나 마셔'라며 지친 청춘들에게 이번에도 술을 권한다. 그래 볼링도 10세트가 있고 야구도 9회가 있다. 한두 회쯤 말아먹으면 어떤가. 나도 이렇게 계속 국밥 말듯 인생 말아먹으며 사는데.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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