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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Jul 06. 2021

레코스케: 레코드 마니아의 일상을 담은 카툰

내가 음원으로 노래를 들으면서도 CD를 사는 이유

얼마 전 벌룬티어스*(The Volunteers)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이 공개됐다. 마침 알라딘 앱에서 미리 알림을 받고 예약해놓은 지라 음원 사이트 출시일에 맞게 음반을 배송받을 수 있었다.

예전 단골 레코드점에서 받은 CD 껍데기 제거 전용 칼. 안쪽에 날이 있어 쭉 내리면 비닐이 쩍 벌어진다

일단 음반의 비닐을 까서 음반을 외장 CDR/RW에 넣었다. 아직 CD 비닐 벗기는 전용 칼은 날이 벼려져 있구나. 맥북에어의 음악 앱에서 추출 버튼을 클릭한 후 음원이 추출되는 동안 부클릿을 뒤적여 본다. 프런트맨의 유명세와는 다르게 밴드 멤버들의 사진이 고루고루 실려 있다. 

아이폰에 음원을 넣은 모습

띵동~ 음원 추출을 마치면 아이폰을 연결해 음원들을 옮긴다. 아. 그전에 표지를 입력해줘야겠지? 그게 없으면 안 예쁘니까. 그런데 사실 이 노래들은, 이미 앨범을 발매하기 전 밴드가 이미 사운드 클라우드에 모두 음원을 무료로 공개해놓은 상황이라 스트리밍을 하거나 음반을 사지 않아도 이미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난 음반을 굳이 왜 산 것일까?



‘레코스케’는 90년대 일본의 잡지 ‘레코드 콜렉터즈’에 만화가 모토 히데야스가 자신의 필명과 같은 이름으로 연재한 만화를 묶어낸 책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단종되었다 미발표 원고들을 추가해 재발매되었는데, 알라딘에서 번역 발매 펀딩을 진행해 2020년 11월에 빛을 본 책이다. 

만화의 주인공 레코스케는 음반을 사지 않으면 좀이 쑤시고 가슴 한구석이 근질근질해지는 레코드 광이다.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음반을 사서 그 부클릿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며, 그 음악들을 질리도록 듣고 관련된 뮤지션을 찾아 듣는 것이 인생의 낙인 사람이다. 

이 책은 비틀스와 조지 해리슨의 광팬인 레코스케가 음반을 모으러 다니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레코드점 사장에게 속아 휘어진 LP를 사버린 사연이나 같은 취미를 가진 여자를 만나 설레며 썸을 타는  이야기, 무인도에 가져갈 단 한 장의 음반을 고르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는 레코스케의 이야기는 음반 수집(이라기엔 뭐하지만 그래도 사모으는) 취미가 있는 나에게는 꽤 설레는 내용이었다. 가끔은 억지같은 내용도 귀여운 에피소드지만 공감할 내용들이 많았달까. 비틀즈나 지미 헨드릭스, Chi-Lites 같은 옛날 팝이나 록 음반을 들으며 읽기 좋은 책이다. 


나는 멜론이나 지니 같은 음악 스트리밍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유튜브로 간단히 들어본 후 멜론에서 음원을 사기도 하고, 마음에 들면 아예 CD나 LP를 구입하는 편이다. 앞서 말한 대로, 차를 바꾸면서 차에서도 CD플레이어가 없어진 이후 음악은 거의 아이폰이나 고음질 음악 플레이어로 듣는다. 요즘 CD를 산다고 하면 주변 선후배들이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그걸 왜?’  

음원을 추출하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외장형 CDR/RW

요즘 스트리밍 음질도 올라가서 사실 스트리밍이나 음원 다운로드로 듣는 게 전혀 차이가 없는데 굳이 이렇게 수고를 해가며 음반을 사고 음악을 듣는 이유는, 그 음원과 음반은 온전히 ‘내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음원이나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한 친구들은 모르겠지만, 카세트테이프, LP, CD로 음악을 들어온 내게는 똑같은 음질이어도 실물이 있는 것이 훨씬 안심이 된다. 


얼마 전 NAS 개인 서버를 구축할 때 2001년부터 모아 온 음원을 거의 다 지워먹을 뻔한 적이 있었다. 거의 300GB 정도, 37,000 곡 정도에 연속으로 플레이하면 114일 내내 들을 수 있는 무지막지한 양의 음악이 지워지니 정말 아찔하더라. 다행히도 이전에 백업해 놓은 것과 1,500장 정도 되는 CD에서 모조리 다시 음원을 추출하는 노가다를 통해 거의  80% 정도 살려낼 수 있었다. 아… 음반을 모아놓은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1936년 세계 최초로 TV 방송이 시작한 이래, 모두 ‘라디오는 이제 망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심지어 영국 뮤지션 ‘버글스’는 1979년 <Video Kiil The Radio Star>라는 노래까지 만들어 불렀을 정도. 하지만 80년이 넘은 지금, TV는 유튜브에 밀려 거의 죽어가고 있지만 아직 라디오는 규모만 좀 줄은 채 지금도 건재하다. 음반도 마찬가지 CD의 판매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일정량의 음반이 팔리고 LP 판매는 오히려 부쩍 늘고 있다. 

뭐 미디어가 바뀌는 만큼 언젠가 음반이 아예 나오지 않는 날도 오겠지. 아무래도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한 사람들은 음악을 소유한다는데 대한 특별한 감흥이 없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어떡하나. 피지컬 매체로 음악을 시작하다 보니, 실물이 있는 게 훨씬 좋은걸…. 계속 음반이 나오는 한 나는 꾸준히 음반을 사 모을 것 같다. 

이제  8월에는 이소라 6집 한정판 LP, 11월에는 잭 블랙의 ‘Tenacious D’ 비틀즈 리메이크 싱글 LP가 도착한다. 아이고 신나라~. 이렇게 레코스케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구나. 마지막은 더 벌룬티어스의 뮤비로 끝낼란다 요즘 많이 듣는 노래. 



*벌룬티어스(The Volunteers): 프런트맨 백예린이 결성한 록밴드. 2000년대 초반의 브릿팝/기타팝을 기반으로 한 음악을 한다. 백예린이 이전부터 공연때 오아시스나 벤폴즈파이브 등 영국 록밴드 음악을 자주 커버하더니 결국 이렇게 밴드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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