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한끼

흔치 않은 로컬 부산 맛집 - 영도 왔다식당

스지된장 전골되시겠다!

by Francis

수많은 단점을 기생충처럼 품고 살지만, 지금 이 순간 문득 생각나는 내 단점 중 하나는 ‘생각을 깊게 하지 않고 섣부르게 마구 부탁하고 호언장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단점을 약간이라도 상쇄하는 것 한 가지는, 말한 건 반드시 지키고 수습하려 하는 최소한의 양심이다.


비교적 급작스럽게 잡힌 이번 출장. 늘 부산에 가면 들르는 곳이 있다는 걸 또 깜빡하고 브런치에서 친해진, 부산 사는 작가님에게 삐삐를 쳤다. 즉흥적이고 감상적이지만 사려 깊고 섬세한 작가님은 카톡 대화방에 맛집이 불현듯 떠오를 때마다 툭툭 던져주시고. 오호~ 이번 부산 여행은 삼시네끼 정도로 가야겠어!


그러나 막상 새벽같이 서울을 떠나 부산에 도착한 다음 점심도 굶고 일을 하다 보니 진이 빠지더라. 작가님이 추천해준 맛집은 밀면집과 비빔밥집 말고는 전부 숙소인 해운대에서 거리가 좀 있고… 부산 올 때마다 들르던 서면 전포동 가는 것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니 쉽지 않았다.

부산_소곱창_맛집_구서동_장수돌곱창_요즘_곱창이_대세_8.jpg 사진은 불펌입니다. ㅋ

그래서 첫날은 그냥 부산 사는 친구가 숙소 부근으로 와서 (해운대에서 대체 왜) 곱창에 소주를 와카카캌 퍼마셨더랬지 뭐야. 아침에 일어나 원고를 쓰던 중 불현듯 생각이 났다. ’그래도 시간 내서 써치해 주셨는데, 작가님이 수고하신걸 無로 돌리진 말아야지!’ 숙소 췌킷아웃 시간을 얼마 안 남기고 작가님의 맛집 리스트를 꼼꼼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남포동 치킨은 혼자선 좀 느끼할 것 같고, 껍데기도 낮에는 왠지 망설여지고. 그때 들어온 게 ‘우리가 남이가!’의 산실 영도. 그래. 일단 영도로 가서 카페에서 일을 다 마무리한 후 한 잔 하는기다!


_DSC0498.JPG 뜬금없지만 이걸 보니 윤영배의 <위험한 세계>가 생각나더란....

해운대서 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 정류장에 내려 잠시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위해 화살기도를 날린 뒤 본격적으로 영도 맛집 부근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내 다리가 문득 잊고 있던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 ‘영도의 한자가 영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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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부산 고바우 너무허네.

섬은 많은 경우 작은 산봉우리를 기반으로 생성되어 있는 게 보통이다. 영도 역시 다리를 통해 육지와 연결되어 있을 뿐, 섬 아닌가…. 와.. 지도 앱으로 20분이라 나오는데 어째 이렇게 한결같이 죄다 고바우인 거야… 오늘 그 집 휴일이면 울어버릴 테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 카페에서 일을 마치고 드디어 목적지로 향했다. 부산 영도 ‘왔다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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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파워풀한 메뉴를 보라. 딴거 없다. 그냥 다 스지다.

‘왔다식당’은 한우 스지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스지 전문 식당’이다. 메뉴는 오로지 두 가지. 스지 전골과 스지 수육뿐. 앗쌀하니 좋구만. 메뉴 특성상 1인분은 안된다고 해서 까짓 거 그냥 왔다식당의 시그니처인 ‘스지 된장 전골’ 2인분을 시켰다. 좀 푸짐하게 먹는 셈 치지 뭐.

_DSC0511.JPG 고오급 소주~

잠시 기다리면 간단한 밑반찬이 등장한다. 취나물, 오뎅, 단무지 무침, 톳 무침, 숙주나물, 고사리, 콩자반, 김치. 깨나 거한 상인데다, 이런데 왔으면 한병 까야지. 사장님예. 고급 소주가 뭡니꺼?


뭐 가격도 4천 원 똑같은걸 보니 특별한 술은 아닌가 보다. 밑반찬들은 적당히 짭짤하니 그냥 깨작깨작 밥반찬으로 먹고 있을 만 함. 오래 기다리지 않아 메인 메뉴가 나오니 조금 기다리면 될 듯. 음식을 놓는 사장님 말씀하시길, ‘한소끔 보글보글 끓어오르면 잠시 기다렸다 드이소’

끓을 때까지 꾹꾹 참았다가 그냥 무작정 한 숟가락 떠서 넘겨본다. 으악! 두부가 생으로 넘어갔네. 아 식도 뜨거워… 두부에게 뜨끈한 가르침을 받은 다음 조신하게 밑접시에 떠서 먹을 만큼 시켜봤다. 사람이 생각을 좀 해야지. 밑접시는 괜히 주는 게 아니다.

_DSC0519.JPG 아 침고인다 좀전에 먹고 오는건데도.

‘내 돈 주고 사 먹은 솔직한 후기’는, 일단 그렇게 많은 양이 아니기는 하다. 그런데 이 음식은 소, 게다가 한우 스지를 넣고 끓인 탕. 두 명이 식사로 먹기에는 넉넉한 수준이다. 2인분에 스지가 두 국자 정도 들어있는데 이게 2만 원이잖아. 일단 서울엔 이걸 제대로 파는 데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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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스지, 그리고 단무지와 소스 그리고 스지, 청양고추와 소스 그리고 스지. 1번 탈락

이제 본격적으로 먹어볼까? 잘 식힌 된장 육수 스지를 김치+스지와 청양고추+기본 양념장+스지, 기본 양념장+단무지+스지 세 가지 조합을 먹어봤는데, 일단 김치와 스지 조합은 탈락. 김치가 너무 세서 효율이 떨어지잖아. 같이 나온 노란 양념장은 무려 허니머스터드. 음, 누가 생각해 낸 거지… 된장 육수에 끓인 스지를 허니머스터드에 찍어 먹는다는 신박한 생각은? 짭짤한 된장 맛에 새콤달콤한 허니머스터드가 생각보다 잘 어울리네. 살코기가 붙어있는 부분보다는 스지의 비율이 높은 부위를 여기 찍어먹는 게 좋다. 아, 뭐 사실 다 맛있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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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하며 홀짝거리다 보니 그새 고급 소주가 바닥을 드러내고… 부산에서는 씨워어언~하게 C1 아잉교. 다 먹으면 집에 가기 쉽지 않겠지만 뭐 남기면 되지. 스지는 슬슬 다 먹어가고, 이쯤 되면 반드시 이런 종류 음식의 피날레 의식을 해줘야 한다.

이거 안해먹으면 불법입니다

다 함께 외쳐, 된장죽! 이미 찌개 건더기를 다 비워 밥을 먹기는 배부르지만 조금이라도 밥을 떠서 국물에 잘 끓여본다. 이렇게 고기 맛이 풍부한 육수에 탄수화물을 끓인 건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 같은 믿음직한 녀석이다. 몇 술 뜨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6시가 다 됐고…. 이제 서울로 떠날 시간. 담엔 넉넉히 시간 잡고 올게!!


지금은 왔다식당을 나와 부산역에서 수서로 향하는 SRT. 인트로에서 나의 섣부름과 무책임한 단점, 그리고 그것을 상쇄하려 하는 말은 꼭 지킨다는 그나마 나은 장점을 이야기했다.

IMG_2771.JPG 무겁다 육수.... 아.... 400킬로미터를 달려온 스지전골이라니.

나는 이번에도 이걸 먹고 흥분해서 호들갑 떤 것을 책임지기 위해, 주 성분이 건더기와 육수라는 무거운 녀석 스지 전골을 2인분씩 두 보따리 포장해 서울로 달려가고 있다. 아, 더럽게 무겁긴 한데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 이걸 먹고 좋아할 가족과 친구를 생각하니... 뭐 그래도 견딜만하다. 그런데, 정작 이 집을 소개해준 부산의 러블리한 무라카미 류 @사비나 작가님한텐 뭘 해드린 게 없네. 작가님 감사!



덧) 왔다식당은 평일은 6시, 주말은 5시 정도면 문을 닫는다. 보통 주말에 더 오래 하지 않나 싶은데, 한우 스지가 소 한 마리당 얼마 안 나오다 보니 주말에 재료가 더 일찍 떨어져서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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