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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Dec 27. 2020

황희정승과 씹선비의 대결, 그 승자는?

누구나 마음 속에 황희정승과 씹선비 하나쯤은 있는 법

대화는 보통 말의 핑퐁에서 생기는 주제의 교감을 이야기한다. 한 명만 줄기차게 떠들어도 주제의 교감은 이뤄질 수도 있지만, 보통 그런 건 대화가 아니라 연설 또는 강의라고 하지. 말의 핑퐁랠리를 이어가는 타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그런데’ 타입.  


A: 야 이번에 제주도 여행 가서 ‘모닥치기’ 꼭 먹어보자
B: 그런데 그거 떡볶이랑 김밥에 김치전 한 접시에 주는 거 아냐?    
         그거 말고도 먹을게 쌔고 쌨는데 꼭 제주까지 가서 그걸 먹어야 돼?


돔베고기, 흑돼지, 오분작 뚝배기, 보말칼국수, 전복죽… 삼시세끼 제주 특산 요리만 먹어도 바쁠 여행. 단체로 가는 여행이라면 저런 비효율은 진즉에 끊어내는 게 효율적일 수 있지. 혼자 가는 여행이라면 모를까 제주의 느낌을 함께 즐겨야 한다면 저런 제안은 어지간하면 빨리 포기하게 해야 한다. 괜히 어물쩡거리다 현지에서 갈등이 생기면 제안자인 A는 물론 모두 어색해지는 상황만 초래하게 된다. 초장에 한방에 깔끔하게 끊어내는 게 부작용이 덜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음 대화를 한 번 살펴보자.


A: 야 이번에 제주도 여행 가서 ‘모닥치기’ 꼭 먹어보자
B: 그래 맞아. 김밥이랑 김치전 위에 떡볶이 끼얹어주는 그거.
제주도 사람들은 분식을 그렇게 먹나봐?
그래도 A야. 떡볶이 김밥 김치전은 제주 아니어도 먹을 거 같으니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걸 일단 먼저 골라보자.


두 번째 방식은 ‘그래 맞아’ 타입. 흔히 이다. 대화를 전체적으로 보면 B는 어차피 A의 의견을 받아줄 생각이 없다. 하지만 A의 의견을 태극권처럼 부드럽게 돌려서 완곡하게 거절하는 것도 방법 중 하니다. ‘그런데’ 방법은 단체의 효율성은 올라가겠지만 작건 크건 A의 기분이 상할 수 있다. ‘그래 맞아’ 타입은 단체의 효율도 챙기면서 A의 기분도 적당히 맞춰줄 수 있다. 

이무성 화백의 그림. 사실 황희정승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던 사람이지만, 여기서는 긍정적인 뜻만 가져가기로 한다.

보통 '그래 맞아' 공감이 우선인 사람을 우리는 '황희정승'타입이라 한다. 반대로 세상만사를 모두 정확히 짚고 넘어가는 '그런데' 타입은 '씹선비'라고 부른다. 황희정승이나 씹선비 모두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의사결정의 과정에서는 두 가지 방법 중 가장 효율적인 것을 택하면 된다. 그러나 친구들과 대화할 때 씹선비가 되는 사람은 상대방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친구의 말이 좀 아닌 것 같고 마음에 안 들더라도 일단 맞장구를 한 번 쳐주는 것은 어떨까? 친구와의 대화에서 황희정승이 되라는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라는 게 아니다. 그것은 ‘나는 너에게 공감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상대방에게 보내는 신호이다. 

신이 아닌 이상, 우리 모두는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 우리는 잘나신 분들이 맨 정신으로 개소리를 지껄이는 사람들을 미디어를 통해 매일 볼 수 있다. 그들처럼 개소리를 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볼 친구라면 굳이 그들을 공격해 상처 주고 적으로 만들 이유는 없다.

별 이유없이 지인까지 가르치려 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당신이 진지만 빠는 씹선비가 아닌지 깊이 생각해보자

친구가 내 이름 석자를 잘못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틀려봐야 뭘 얼마나 틀린다고 즐거운 대화 자리에서 시작부터 칼을 들이대나. 누구나 마음 속에 황희정승과 씹선비는 공존하는 법. 한 번 그 친구의 이야기에 황희정승처럼 깊은 공감을 표한 후, 문제가 있을만한 부분을 부드럽게 이야기해준 후 살짝 씹선비질을 하면 받아들이는 친구도 조금 더 마음을 열고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 지금까지 모든 텍스트는 씹선비질이 옳다고 믿었던 나 자신에게 보내는 반성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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