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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Dec 29. 2020

누가 나보고 관종이래?

그래요. 조회수 보고 눈 돌았습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3천 원 정도는 있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은 있게 마련입니다. 어디 사람만 그럴까요. 모든 업체나 브랜드들이 관심을 이끌기 위해 긍정적인 홍보 기사를 배포하고 여러 가지 이벤트와 캠페인을 벌입니다.

아, 하지만 제주까지 가서 컴퓨터 박물관을 구경할 정도의 덕후긴 함

저는 ‘전자전기컴퓨터제어공학부’라는 거창한 전공 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중에서 컴퓨터를 전공했죠. 그런데, 이 전공은 제가 원해서 고른 건 아니었어요. 이 이야기를 다 하려면 이 글에서는 힘드니 다음에 해드릴게요. 재미있으니까요. 여하간 컴퓨터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저는 어찌어찌 잡지사를 들어가 글을 쓰며 밥을 먹게 됐고 2009년 망할 노무 MB정부의 기재부 장관이었던 강만수가 MB와 콜라보로 터뜨린 환율파동으로 난리가 나면서 밥줄인 잡지사가 망하면서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습니다.


달래 할 게 없던 저는, 당시 마지막 근무처였던 애플 전문지 ‘맥마당’ 수석기자라는 직분을 살려 ‘맥 매거진’이라는 팀 블로그를 오픈했어요. 당시 해직 기자와 애플 마니아 세네 명이 모여 블로그를 운영하던 중, 갑자기 블로그 팀 후배한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형. 빨리 블로그 접속해봐’

제가 기자였던 시절 다녀왔던 구글 코리아 구내식당에 대한 콘텐츠가 갑자기 난리가 났더라고요. 당일 방문자가 1만 명을 넘어섰고, 글 방문이 잠잠해진 열흘 동안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방문해 100개도 넘는 선플과 악플을 달아댔습니다. 막 저희 글들을 한컴 이찬진 대표가 인용도 하고.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관종이란 걸요.


그 사건 이후로 당시 난리던 아이폰에 대해 MBC가 인터뷰를 요청했고(물론 나는 발음이 극도로 안 좋은 데다 말이 빨라 죄다 편집) 당시 한참 태동 중이던 디지털 홍보/마케팅 대행사에서 콜을 받아 홍보대행사 콘텐츠 작가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잡지나 블로그야 주제를 편집부가 정하는 시스템이지만(주) 홍보대행사 콘텐츠 작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기업 홍보 이슈와 부각되고자 하는 주제에 맞춰 콘텐츠를 쓰고 어떻게 후킹 할지를 고민하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어떻게든 관심을 받아야 했던 거죠. 이쯤 되면 ‘그건 내 삶이 아니야’ 푸념이 나와야 정상인데,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생각보다 그렇게 관심을 받는 게 재밌더라고요. 아마 내 이름을 건 게 아닌, 익명에 기대어 이야기를 하는 시스템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일을 하며 세 번의 이직을 했습니다. 그때야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관심받으려고 노력하는 거 너무 피곤하다.


다행히도 2017년 말 회사를 그만두면서 (그렇게 개판으로 살지는 않았는지) 여기저기 원고 청탁이 들어왔고 지금까지 프리랜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뭐 당연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을 만한 글을 쓰는 게 제 일이긴 해요. 그런 이유로 자체 검열은 힘들게 하고 있어요. 두 번 세 번 읽어보고 어색한 표현과 문제가 될 문구를 정리하고 트렌드를 제목과 내용에 넣어 최대한 사람을 후킹 하려 합니다. 그래도 일단 납품을 마치면, 제게 글을 의뢰한 클라이언트 마음에 든 이상 관심 여부는 제 손을 벗어난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그렇게 또 세월은 흘러갑니다. 아무리 트렌드가 동영상으로 넘어가도 홈페이지나 블로그, SNS에서 텍스트는 꼭 필요한 존재니까요.


그런데 코로나 19 시대가 되니 기업들의 ‘홍보’ 양 자체가 줄어들더라고요. 저 같은 프리랜서는 손가락을 빨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도 제 글빨(보다는 속도와 다양성)을 믿어주시는 분들은 여전히 연락을 주시지만 절대적인 원고량이 줄어들고 시간이 남으면서, 이렇게 글을 안 쓰면 근손실이 되듯 글빨과 관심사 아카이빙 등 ‘글 손실’이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달 어스의 한달 쓰기를 시작한 것도 그 이유예요. 맘 편하게, 가볍게 그냥 손 가는 대로 쓰면서 글 손실을 방지하자.  콘텐츠 라이터가 글 손실이 오면 그건 인생 끝장 아니겠어요?

아씨 이게 뭐지

부담 없이 하루 하나 글을 쓰기로 했는데, 기대도 안 하던 글이 갑자기 잭팟이 터지면서 또 예전에 일할 때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제일 처음,'목포-제주 크루즈로 즐기는 일출 여행'이 1000명을 넘어서고, 두 번째로 '프로세서 갈아탄 M1 맥북에어 언박싱' 콘텐츠가 마찬가지로 1000 이상 조회를 찍으면서 점점 예전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지난 12월 27일 ‘돈가스는 비벼먹는 음식입니다’ 콘텐츠가 하루 13,000 조회수를 찍으니 조바심이라는 것도 생겨났습니다. 분명 이게 내 능력이 아닌 우연찮은 시류 때문에 생긴 조회수일 텐데… 은근히 마음이 쫄아들더라고요. 거품이 꺼진 후, 하루 1만을 넘어서던 제 브런치 조회수가 50명으로 줄어들면서 갑자기 마음이 허탈하고 불안해졌습니다. 이건 제가 원하던 게 아닌데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많은 생각이 오갑니다. 갑자기 반말에서 존댓말로 글 톤을 바꾼 것도 그런 심리겠죠? 사람이 쉽게는 바뀌지 않는다고, 앞으로도 저는 제가 올린 글에 조바심을 낼 가능성이 농후하죠.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하루 하나 글을 쓰는 생활은 계속될 겁니다. 하지만, 이제 더 조바심을 내지는 않으려 합니다. 어차피 제 취향이 엄청나게 대중적이고 친절한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 부탁드립니다. 제가 주절거리는 글자들이 마음에 드셨다면 그냥 ‘하트’라도 눌러주세요. 댓글은 사치스럽잖아요. 결국은 관심을 달라는 구걸이군요.

유치원 발표회에서 사람들 앞에서 단체로 추는 춤을 못 춰서 부모님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고 남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놈이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8년이나 애들 앞에서 되지도 않은 교리를 떠들고 아이들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자기주장도 제대로 못하고 부들부들 떨며 화만 내던 놈이 잡지 기자로 6년 넘게 인터뷰하고 취재기사를 썼습니다. 홍보의 ‘ㅎ’ 자도  제대로 모르던 녀석이 디지털 마케팅에 뛰어들어 남들 보라고 수많은 콘텐츠를 생산해 냈습니다. 


결국 저는 관종입니다. 심지어 그 녀석의 가장 큰 취미는 기타를 치고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는 것이라죠. 이게 무슨 아이러니일까요? 그러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어서 자신도 관종의 기운이 있다는 걸 인정하시는 동시에 제 글에도 관심의 따봉을 눌러주세요.



(주))) 생각해보면, 사실 그것도 그렇게 자유롭진 않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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