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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Dec 18. 2020

목포-제주 크루즈로 즐기는 일출 여행

부제: 님 무슨 약 먹고 이런 여행 계획했어요?

올해만 제주를 여섯 번은 간 거 같은데, 12월에, 또다시 제주에 갈 일이 생겼다. 지난번처럼 제주 자전거 일주를 하기에는 너무 춥고, 그렇다고 둠칫 둠칫 애월 ‘선셋 클리프’나 탑밴드 시즌3 8강에 빛나는, 기깔나게 노래하고 음악 잘하는 밴드 그래서 소은주 사장이 새로 오픈한 제주 서쪽 협재의 ‘서쪽 밤’에서 노래 청해 들으며 술 한잔 하기엔 시국이 시국이고… 올해 마지막 여행인데 평범하게 갈 수는 없지! 그때 갑자기 ‘바닷길 원정대’에서 귀요미 고아성이 그토록 감탄했던 선상 일출이 생각났다. 그래, 이거닷! 

여기는 6층 테라스인데, 한층이 더 있음. 배가 진짜 엄청 크네

일단 목포로 내려가, 잠시 시간을 보낸 후 지난 12월 1일부터 취항한 목포 새벽 1시 출발해 6시 제주항에 도착하는 크루즈 ‘퀸 제누비아호’에 몸을 실었다. 마침 개항 이벤트 기간이라 개인  침대까지 제공되는 티켓이 35,000원! 거의 빌딩 7층 높이의 크루즈는 어마어마했다.

파리바게트, 오락실, 선상 극장, 분수, 별게 별게 다 있는 퀸제누비아호 내부

5층에는 선상 식당과 바, 라이브 공연장과 오락실, 편의점과 테라스 등 시설이 빵빵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손님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모든 서비스들이 짱짱하게 준비해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선상 바에서 맥주 한잔 하며 허세 부리기. 역시 허세에는 맥북프로지
끝도 없이 들어가는 화물과 자동차들

출항 전, 선상 바에서 맥주 한 잔을 사서 선미 테라스에서 맥북프로와 허세를 떨어본다. 4층 높이의 배에는 자차로 제주에 가려는 사람들의 승용차와 어마어마한 크기의 화물차가 잔뜩 들어가고… 섬으로 보내야 하는 각종 화물들이 지게차 등을 통해 끊임없이 선적되었지만 배는 미동도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배 위에서 보는 목표대교의 모습. 뭔가 그럴싸하지 않나?

마침내 새벽 1시. ‘뿌우아아아앙~’ 거대한 경적 소리와 함께 거대한 크루즈가 목포항 물을 지치고 나아간다. 선상에서 소프라노의 아리아, 피아노와 바이올린 앙상블 등 라이브가 시작하며 흥은 올라가고... 난생처음 시도하는 배 여행에 기분이 묘해지며 배가 출출해졌다. 좀 춥긴 하지만 배 여행의 낭만은 바다 한가운데 술 한잔 아니겠어? 선상 식당에서 제육볶음 정식을 시켜 들고 술을 사러 가니, 모든 배가 그런진 모르지만 선상 편의점에는 소주가 없다. 

보기에는 그럴싸한 만찬 같지만, 사실 겁나 추웠다

주변 다른 승객들은 밖에서 사 가지고 탔는지 죄다 소주를 까잡숫고… 아 추워 죽겠는데 맥주를 먹을라니 소피만 마렵누나… 맥주 한 캔이랑 바꾸자고 할까, 한잔만 달랠까 고민하다 맥주 두 캔을 비우는 둥 마는 둥 하고 포기. 어느새 시간은 새벽 두 시 반, 일출을 봐야 하니 일찌감치 잠자리로 향해본다. 

일본 캡슐호텔처럼 있는건 다 있는 퀸제누비아호 스탠다드 침실

6층에 위치한 잠자리는 꼭 일본 캡슐호텔처럼 되어 있다. 자리마다 비치된 전원과 개인 등, 커튼 등 없는 것이 없구먼. 배가 중간에 맹골수도 옆을 지나가니 새벽 네시 즈음 선미로 나가서 묵주기도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잠을 청했다.

땀에 절어 눈을 떠보니 시간은 겨우 새벽 세시. 잠자리가 너무 덥다. 내가 더위를 많이 타는 탓도 있지만 배낭 하나에 짐을 싼 데다 제주는 춥겠거니 죄다 두꺼운 옷만 입고 온 내가 바보지. 결국 5층 벤치와 테라스, 선상 호프 등 야외에서 잠을 청하다 보니 제주항에 도착. 이렇게 나의 배 여행은 끝이 났다.

배에서 내렸을 때 제주항의 모습

그래서, 선상 일출은 봤냐고? 이 질문이 떠오른 당신 역시 나처럼 고라니 정도 지능이겠지?  배가 여섯 시 도착인데 12월에 선상 일출을 보겠다고 생각한 띨띨이가 요기잉네? 뭐 그래도 정준하 없는 준하팀처럼 일출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선상 일출여행을 해 본 사람은 나밖에 없을테니, 이 정도면 됐다.


제주 서귀포 켄싱턴 리조트에서 6:00~7:30까지의 타임랩스. 에이... 일출은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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