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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May 07. 2021

한가롭고 평화로운 카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무엇이든 인생은 실전이다! 카페 사장 체험기

약간 늦은 아침 문을 열자마자 에스프레소 머신을 예열시킨 후 가볍게 가게 안팎을 청소한다. 예열이 끝나자마자 첫 간판 불을 켜고 입간판을 세운 후 원두 상태를 체크할 겸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며 재고를 확인해 본다.


음,  재료가 들어오는 금요일까지는 충분하겠네.


늘 같은 시간에 테이크아웃 해가는 단골손님들과 여유 있게 눈인사를 나누며 커피를 낸 후 단골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 식후 커피 손님을 바쁘게 쳐내고 한가해지는 2시 무렵 읽다만 책을 펼쳐 들고 조용히 나른한 오후를 즐긴다. 늘 5시쯤 되면 찾아와 태블릿을 펼쳐놓고 공부하는 학생에게 내일이면 유통기한이 끝나는 샌드위치를 서비스로 내주었다. 매일 허기져 보이던 그가 샌드위치를 베어 물고 웃으며 인사하는 표정만 보아도 누군가에게 우리 카페가 힘을 준 것 같아 기분이 뿌듯하다.


보통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작은 카페 사장의 하루는 이 정도가 아닐까? 카페 주인은 소박하게 그럭저럭 먹고살고 싶은 사람들의 로망 같은 직업이다. 향기로운 커피 향 속에서 손님들과 일상 속 작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늘 책을 가까이하며 좋은 기운을 주고받으며 한가롭게 일하는 일상은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 상이나 <리틀 포레스트> 속의 혜원을 떠오르게 한다.


문을 열면 이런 풍경이 보이는 엄청난 선유도 카페 '카페 드 선유' 하지만 그 실상은....
여기 좀 1주만 내려와 주면 안 되나?


얼마 전 군산 선유도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혼자 카페를 하고 있는 친구는 전화를 걸어 대뜸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 어린이날 연휴가 낀 주 영업이 아무래도 혼자서는 부담이 되어 SOS를 쳤나 보다. 이럴 때 일반 직장인들은 움직일 수가 없으니 아무래도 프리랜서인 내가 제격이었을게다. 게다가 난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 할 수 있는 전업 콘텐츠 작가지 않나. 마침 이미 커피를 내려본 경력도 있고.

설거지도 어마어마하다. 1회용품을 최대한 줄이고 싶은 주인의 의지에 맞추려니...

일단 내려와 바리바리 싼 짐을 풀고 친구와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누고 놀다 푹 잔 후 5월 5일 영업부터 함께 일을 시작했다. 이 날은 어린이날. 그야말로 ‘악!’ 소리가 나올 정도로 바빴다. 12시가 좀 넘은 시간부터 사람들이 몰아닥쳤고 줄줄이 이어지는 테이크아웃 주문과 홀 손님 덕에 점심은커녕 다소 잠잠해진 5시까지 잠깐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7시에 장사를 마감하고 POS를 까 보니 음료가 꽤 팔렸더라. 하루 종일 서있느라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붓고 하다 보니 저녁 먹고 맥주 한 잔 하자마자 곯아떨어져 버렸다.


다음날은 휴일이라 여유가 좀 있더라. 군산 선유도는 인구 600여 명 남짓인 데다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휴일 부근 관광객 말고는 사람 보기도 힘든 섬. 실제로도 밤 6시가 지나면 대부분 식당이 문을 닫기 시작할 정도다. 문 여는 시간인 11시부터 7~8시간 팔린 음료는 대강 50잔에 좀 못 미쳤다. 



언제나 그렇듯 영화는 영화일 뿐 인생은 실전, 현실은 전혀 다르다. 첫날 5월 5일 150잔 남짓한 음료를 만드는데 산술적으로 시간당 20잔씩 만든 셈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일상 패턴은 거의 비슷하다보니 사람은 몰릴때만 몰리게 되어있다. 점심 먹으면 차 한잔 하며 이야기 나누고 싶고 오후 3~4시 나른한 시간에는 커피 한 잔으로 지친 몸을 깨우고 싶은 법.


실제로 150잔 중 110잔 쯤은 1시부터 3시에 모두 몰려 팔린 것이다.  둘이 시간당 60잔의 음료를 만들어낸 셈. 둘이 100잔 넘는 커피를 포터 필터에 담아 템퍼로 눌러주고, 기계에 연결해 에스프레소를 내리느라 오른팔 팔뚝은 저려오고  30잔 넘는 에이드를 만들려고 탄산수 캔을 까느라 오른손 집게손가락 끝이 욱신거렸다. 점심은 개뿔. 아르바이트 없으면 진짜 요강에다 오줌 눠야 할 수준. 선유도의 끝내주는 풍경을 두고, 저녁 먹으면서 맥주 한 잔에 그만 곯아떨어져 버렸다.

이렇게 한적한 카운터는 오픈 전 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고 30잔이 팔린 날은 망고 땡 한가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바쁜 날과 마찬가지로 음료의 대부분은 특정 시간에 팔린다. 앞뒤 남는 시간 역시 짬짬이 손님들이 계속 오는 데다 중간중간 재료 공급 업자에 길을 물어보는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책도 읽고 휴식을 취하는 내 시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안 먹고 짬짬이 간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처럼 애매하게 지치게 되어 있다.


애초에 선유도에 기꺼이 내려온 것도  바쁠 땐 일을 돕고 한가할 때는 내 원고를 쓰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하지만, 드문드문 오는 손님들 덕에 효율이 영 나질 않았다. 보통 두어 시간이면 금방 하던 인터뷰 텍스트 정리나 자료 리라이팅을 하는데도 영 진도가 나가질 않더라고.



야망, 그거  커야 되나?’에서 밝혔던 것처럼 ‘복작거리는 서울 대신 속초나 제주 같은 곳에 레코드점과 서점, 카페와 작은 라이브 하우스를 겸하는 공간을 운영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 하지만 조금 더 계획과 시뮬레이션을 단단히 해야겠다는 새로운 마음가짐이 자리 잡았다. 레코드점과 서점, 카페와 라이브 하우스… 하나도 벅찬 일을 네 가지나 한다는 건 정말 보통일이 아닐 것 같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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