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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Mar 11. 2021

야망, 그거 꼭 커야되나?

근데 야망이 뭐꼬? 묵는기가?

본격 홍보 콘텐츠 작가로 발을 디뎠던 회사에서 회식을 할 때 일이었다. 다들 한 잔 거나하게 걸치고 사무실로 이런저런 술과 안주를 사들고 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분위기. 당시 ‘유유자적’에 꽂혀있던 나는 ‘복작거리는 서울 대신 속초나 제주 같은 곳에 레코드점과 서점, 카페와 작은 라이브 하우스를 겸하는 공간을 운영하며 살고 싶다’는 (지금 생각하면 거대했지만) 소박한 꿈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막내 직원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작가님은 야망이 없어요?


그 야망이라는 게 꼭 있어야 돼요? 그리고, 꼭 그게 커야되나’라며 하하호호 눙치고 넘어갔지만 그 후 ‘꿈과 야망’이라는 문제는 뭔가 중요한 결정 때마다 날 괴롭혔다. 진짜 내가 성공하고 싶은 그런 욕구가 없어서 이런 마음이 드는 건가? 그래서 팀장이랍시고 부하직원들 일도 부드럽게 못 시키고 엉뚱한 포인트에서 싫은 소리 하고 그러나? 그래서 내가 일시키는 팀장 직에 적응 못하고 프리로 나섰나? 이게  정말 야망이 부재한 탓인가? 진짜 내 야망은 뭐지?라는 생각이 (지금 생각하면) 삶의 중요한 포인트마다 떠올랐다. 근데, 그 야망이란게 '' 아냐?

내게 처음 여행이라는 꿈과 환상을 심어준 김정미 작가의 여행기. 그런데, 지금 이 분 뭐하시는지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온다

고등학교 때까지 나의 꿈은 ‘여행가’였다. 여행가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중학교 때 서점서 무턱대고 집어 든 <배낭 하나 달랑 메고>라는 여행기는 책 읽는 것 말고는 달래 꿈도 취미도 없던 나의 눈을 뜨게 했다.  당시 개인 여행자들에게는 내주지도 않던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비행기 값을 아끼기 위해 해외로 입양 가는 아이를 안고 유럽 비행기에 오르고, 인터넷은 무슨… 영어 사전 하나 달랑 들고 유럽 사방팔방을 다니며 수많은 친구를 만나고 다닌 우리나라 1호 배낭여행 작가 김정미의 배낭여행 무용담에 푹 빠져들었다. 

 치앙마이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라임에 매주를 마시다 결국 다른 여행자들과 밤새도록 퍼마셨더랬지

내가 대학을 가려고 맘먹은건 오로지 배낭여행 때문. 엉뚱하게도 군대 가기 전에는 학교에서 록밴드 하느라 여행은 개뿔 기타 치고 합주하기 바빴지만, 군 제대 후 여름 방학 때 40일간 인도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그런 욕망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지금처럼 내가 글을 쓸 줄 알았다면 애초에 작정하고 떠돌며 여행 콘텐츠를 쓸걸…. 뭐 지나간 일 후회해서 뭐하나. 코로나 이전까지는 그래도 1년에 한두 번씩은 동남아, 일본, 중국 등을 돌아다니며 나만의 여행기를 차곡차곡 쌓았으니 일부 꿈은 이룬 셈인가?


제대 이후 내 꿈은 ‘남들과는 다른 인생’이라는 막연한 것이었다. 그냥, 양복에 넥타이 매고 모니터 화면만 바라보는 인생을 살아보지도 않은 채 환멸부터 느꼈달까나. 

뭐 컴퓨터 보고 자판만 두들긴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래도 남들과는 달리 여기저기 노트북과 카메라 들고 취재와 인터뷰하고 다니는 ‘잡지 기자’와 ‘홍보대행사 직원’이라는 삶은 나 하나 건사하기 바쁜 빡빡한 월급에 잦은 야근을 안겨줬어도 그런대로 살만 했고, 내가 바랬던 대로 일반 회사원과는 다른 다른 즐거운 인생의 추억을 남겼다. 


2019년 상하이 뮤직 엑스포에서 만난 필라와 피에르. 상하이 곳곳을 누비며 수다 떨던 그때가 기억난다

지금 살고 있는 ‘콘텐츠 작가’ 역시 마찬가지. 코로나 때문에 지금 삐걱거리고 있는 중이지만 제대 이후 내가 꿈꿨던 삶과 가장 근접하게 인생을 즐기는 중이다. 이런 직업이 아니었다면, 상하이 출장 가서 아침에 한국 클라이언트 기업의 홍보 콘텐츠를 마감하고 오후에는 중국 음악 박람회 취재를 한 후 저녁때는 전 세계 취재진과 술에 취해 어깨동무를 하고 날뛰는 영화 같은 삶, 제주 바닷가 벤치에서 여유롭게 원고 마감을 하고 놀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 글을 쓰는 안빈낙도의 삶을 어떻게 살아볼 수 있었을까. 


지금은 좀 힘들지만, 그래도 나 ‘여행가’와 ‘남들과는 다른 인생’이라는 꿈과 야망대로 열심히, 재미있게 살아왔다. 이런 작고 소박한 꿈이 하나 둘 모이면  제주도에 서점, 레코드점, 공연장 겸 카페를 짓고 사는 날도 다가오겠지. 지금은 잠시 멈춰서 있지만, 직업적으로 기업과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홍보 콘텐츠 작가가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곧 달리게 될 테니 힘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으로 오늘 이 글을 쓴 목적은 달성했다. 


뭐 사실 이 글은 야망 운운한 그 막내가 결국 자신의 욕망을 위해 갖은 수를 다하다 몰락하는 것을 비웃고 욕하는 메칸더 브이 的 권성징악 마무리여야 아름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련다. 원래 스스로 즐겁게 사는 사람은 풍류도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 욕 안 하는 법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메칸더 브이의 망할 원자력 에너지는 3~5분밖에 못가는 조루 아닌가.


P.S) 그 막내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조용히 제게 물어보세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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