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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Mar 17. 2021

기타 스트링을 갈아주었다

기타 스트링을 갈다 인간관계를 생각하다

집합 금지로 밴드 연습을 멈춘 지 10개월이 되어 간다. 원래 천성이 게으른 나. 합주가 없으면 개인 연습을 워낙 잘 안 하는 관계로 기타 역시 그냥 가끔 만져주는 정도 외에는 스탠드에만 걸려 있어 늘 미안했다. 그래. 오늘은 손을 좀 보고 스트링도 갈아주자. 

GHS에서 나온 데이빗 길모어 커스텀 게이지 스트링. 줄 몇개의 굵기가 다르지만, 뭐 소리가 큰 차이가 있겠나 싶기도 하고

원래 스트링은 한 달에 한 번은 갈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자주 안치다 보니 4개월이나 그냥 방치해뒀네. 그래서 평소에 쓰던 Ernieball Regular Slinky 보다 조금 비싼 GHS David Gilmour 모델로 갈아주기로 했다. 

기타 건강검진과 셋업을 위한 연장들

뭐 어차피 기타를 안치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기타 스트링만 갈아줘서는 기타가 제 소리를 내지 못한다. 와이어로 감긴 6,5,4번 줄은 두 번 정도 쭉쭉이로 잘 펴서 걸어줘야 쓸데없는 공진이 일어나지 않는다. 사진에 맥가이버 칼 같은 건 기타를 정밀하게 튜닝하기 위한 자와 렌치, 드라이버 등이 들어있는 공구. 

넥 곳곳에 레몬오일을 떨어뜨리고 잘 펴 바른 후 어느 정도 스며들었으면 싹 닦아내준다

일단 오래된 줄을 모두 빼낸 후 넥에 레몬 오일을 발라준다. 레몬오일은 로즈우드 재질의 핑거보드를 청소하고 컨디션이 유지되도록 유분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너무 많이 바르면 오히려 소리가 먹먹해질 수 있으니 겨울 시즌에 스트링 갈 때  한 두 번만 발라주면 된다.

기타 관리를 위해 필요한 약품. 어렸을 때 '니 얼굴에도 그렇게 뭐좀 발라라'라며 욕을 먹었지

이제는 바디를 청소할 차례. 전용 헝겊으로 된 장갑을 끼고 바디를 닦고 나무 재질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전용 기타 폴리시를 조금 뿌려 잘 닦아준다. 바디를 잘 닦았으면 넥에 발라준 레몬오일로 잘 닦는다. 

자 이제 스트링을 걸어줄 차례. 내 주력기 John Suhr Modern Satin은 튜너 쪽에 잠금장치가 있어 줄 갈기가 쉽지만 그렇지 않은 빈티지 튜너를 장착한 모델들은 길이까지 잘 맞춰서 차분하게 걸어주는 것이 좋다. 


줄을 다 걸었으면 튜너로 정확하게 튜닝한 다음 여섯 줄을 모두 잡아당겨 다시 튜닝하는 일을 반복해준다. 줄이 조금씩 늘어나 안정화되고 헤드 부분에 걸린 줄이 팽팽해지면서 튜닝이 틀어지기 때문에, 이걸 반복하지 않으면 연주하다 자꾸 튜닝이 나가게 된다. 

역시 내새끼. 칼튜닝이구만. 

일반 튜닝이 끝났으면 렌치를 활용해 피치 튜닝을 한다. 이 작업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하이 프렛 연주를 했을 때 음정이 정확하게 맞지 않고 불쾌한 음을 내게 된다. 피치 튠을 끝내고 넥 상태를 보니 다행히도 큰 이상이나 변화는 보이지 않아 수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 이제 연주할 준비가 끝났으니 오랜만에 기타나 한 번 열심히 쳐봐야겠다. 


걸어놓은 기타 스트링처럼 한번 건 줄은 평생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튜닝해 놓은 기타 스트링은 그냥 두어도 튜닝이 조금씩 변할 수 있다. 사운드는 먼지가 끼어 점점 소리가 뭉툭해지고 스트링이 늘어나 끊어지기까지도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번 맺은 인연이 천년만년 계속 갈 것 같지만, 관계를 이어나가고 발전시키려면 기타를 튜닝하고 스트링을 갈아주면서 기타의 상태를 체크하듯 끊임없이 점검하고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 가끔 맺은 인연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전화나 문자, SNS를 통해 연락을 이어가고 상대방과 공유하는 관심사를 늘려나가야 한다. 


오랜만에 연락하고 만남을 가지면 반갑고 신나기도 하지만, 뭔가 서먹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 서먹함을 이기지 못해 단발 만남 이후 다시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 서먹함을 이겨내고 계속 연락하고 관심을 가지며 관계를 유지하고 다듬도록 노력해야만 즐거웠던 추억을 유지하는 가운데 새로운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 


오래간만에 내 주력 기타 John Suhr Modern Satin을 가지고 놀려니 영 어색하다. 오랜만에 자주 듣던 노래의 쉬운 부분을 카피하고 그냥 막 떠오르는 대로 쳐봤는데 영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이 민망하고 부끄러운 기분을 기억하며 계속 연습을 통해 기타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엉망진창 레코딩이지만 업로드하고 공개해버렸다. 난 우리 존써 친구와 다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 것으로 만족스러우니, 다들 마음껏 비웃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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