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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Mar 21. 2021

나도 선행으로 폼 좀 한 번 잡아보자

놀면 뭐하니에서 치킨집 돈쭐 내주신 박혁진 씨에게 보내는 따봉

오늘 ‘놀면 뭐하니’의 하이라이트는 요즘 계속 돈으로 혼나고 있는 홍대 '철인 7호 치킨' 사연이었다. 상수동 ‘진짜 파스타’에 이어, 어려운 아이들에게 진심을 어쭙잖게 전했다가 주문으로 혼쭐이 나고 있는 집들의 이야기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그런 집은 맛이 좀 없어도 된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동네에서 자주 가는 단골집이 정말 음식이 맛있어 가는 건지...  맛이 좀 떨어지더라도 이런 집에서 받을 수 있는 좋은 기운이 있고, 이런 사장님은 돈 벌면 손님에게 더 잘할거고 이웃에게 더 주머니를 열텐데 뭐.  


그건 그렇고, 오늘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날 치킨 돈쭐 사건의 주인공인 박혁진 씨다. 박혁진씨는 뮤지션의 꿈을 키우며 홍대 앞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근근이 살고 있는 뮤지션 지망생이다. 처음에는 당근마켓에 '활동' 글을 올려 몇십 명이 조금씩 모아 치킨 120마리를 사서 은평구의 보육원에 가져다 준다 생각했다. 뮤지션 지망생이 집값과 물가 비싼 홍대에서 버티고 살아남는 것 자체도 큰 일일텐데.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알고 보니 그 치킨 120마리는 모두 박혁진 씨가 사는 거라고… 당근마켓에는 '치킨 120마리를 운반할 수단이 없으니 차량이 있는 분은 도와달라'고만 올렸단다. 

치킨 한 마리에 2만 원 정도만 잡아도 120 마리면 240만 원. 이 돈은 박혁진 씨가 한 달에 버는 수입의 거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유재석과의 대화에서도 박혁진 씨는 ‘현재 내가 가진 재산의 절반을 쓰는 것’이라며 웃었다. 박혁진 씨가 ‘내가 좀 돈이 없더라도 아이들이 치킨 먹고 즐거웠으면 좋겠고, 사장님이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으면, 채 널을 돌렸을 것 같다. 아 박혁진씨가 뭐 가식적이라던가 그런건 아니지만, 좀 재미없잖아. 심심하고. 하지만 박혁진 씨는 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떵떵거릴만한  
스토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착한 가계를 큰 돈으로 '혼쭐' 내주는 것도 뿌듯하고 치킨을 신나게 먹을 아이들의 즐거윤 표정도 좋지만, '크~ 마 내가 그때 전 재산의 절반을 털어 치킨 120마리 시원하게 쐈다 아이가' 하며 어깨 으쓱 하고 싶다는 박혁진 씨의 솔직한 멘트에 낭만이 넘실거린다. 유재석도 박혁진 씨가 120마리의 치킨값을 계산 하는데 '내가 내겠다' 함부로 끼어들지 않는다. 그래. 스웩 넘치는 FLEX를 고작 돈 몇푼으로 방해하면 안되지. 강수연 배우가 배우들 회식 때마다 이렇게 외쳤다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이때 유재석이 카드 꺼내서 내가 계산한다고 설쳤으면 평생 처음으로 그에게 실망했을거다

자신이 기부하는 걸 숨기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당당히 좋은 일 했다고 밝히는 것도 부끄럽지 않은, 스웩 폭발하는 일이라 믿는다. 남을 위한 동정에서 시작한 선행은 오래가지 않는다. ‘나 자신이 사회에 보탬이 된다’는 자부심이 담긴 선행은 힘든 가운데서도 계속 이어지며 평생을 이어갈 수 있다. 다 됐고 일단, 멋있지 않나?


박혁진 씨를 보고는 15년 전 일이 떠올랐다. 집안 사정이 너무 어려워 늦깎이 대학생으로 야간 대학에 진학하는 걸 고민하던 후배 택상이(가명)가 속상하다고 맥주 한 잔 사달라고 연락이 왔다. 다니던 회사가 망해 1년 가까이 쉬고 있던 내가 그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건 고작 맥주 한 잔에 실업 급여받은 것 중 10만 원을 쥐어주는 게 다였다. 

며칠 후,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 사정에 밝지 못했던 성당 형이 전화가 왔다.  ‘야. 그 택상이 얘기 전해 들었는데, 진짜 그렇게 힘드냐?’ 난 이 양반이 왜 갑자기 이러나 생각하면서 조심스레 그 친구에 대한 스토리를 전했다. 그날 밤 술자리에서 갑자기 그 형은 욕을 내뱉으며 나한테 봉투를 하나 던졌다. 

야이 씨발놈의 동네는 왜 이렇게 기구한 새끼들이 많아!!


봉투에는 돈 200만 원이 들어있었고, 형은 내게 한마디 툭 던지고 집으로 가버렸다. ‘야. 난 택상이인지 그새끼 난 잘 몰라. 내가 이 동네 온지 몇 달이나 됐다고. 내가 주면 뻘쭘할 거잖아. 그냥 니가 학비 쓰라고 줘. 에라 썅 술값은 니가 내’. 츤데레 같은 양반. 나중에 택상이라는 친구한테 시달려 결국은 천기누설을 하고 말았지만, 나중에 그 얘기를 꺼내니 형은 이렇게 말했었다.  

망나니 같이 나 좋은 대로 살 때였거든.
그런데 안타까운 사연 들으니, 나도 좀 멋있고 싶더라


그래. 인생 뭐 있나. 간지 나게 살다 모양 안 빠지게 가는 거지. 주사 있고 독선적이었던 그 형의 뒷모습은 어느새 멋지고 배려 돋는 츤데레 형으로 변해있었다.  


박혁진 씨가 베푼 FLEX에 철인 7호 치킨 사장님은 더 힘내서 일해 번 돈으로 자신도 즐겁게 살고 힘든 사람들에게 더 좋은 일을 하리라 믿는다. 우리 츤데레 형은 계속 그렇게 세상에 투덜대며, 사람들 짠 한 꼬라지 안 봐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겠지. 박혁진 씨는 치킨집을 돈쭐 내줄 때의 그 뿌듯하고 으쓱한 기운을 담아 더 열심히 음악하며 사람들을 감동시킬 것이다. 그 사연 담은 치킨을 먹은 아이들은 사장님과 박혁진 씨 같은 멋있는 어른을 꿈꾸며 자랄 것을 믿는다. 나도 이제부터 호시탐탐 FLEX 한 번 하며 가오잡을 기회를 노려봐야겠다.


p.s) 다 쓰고나니 빼먹은게 있다. 철인 7호 치킨에 '치킨은 됐고, 그 아이들 오면 먹을 치킨 내가 선결제 해준다'며 주문을 넣어준 전국의 많은 힙스터들에게 엄지손가락 따봉 두개 올려준다. 그치. 멋은 이렇게 부리는거지. (그걸 다 모아 기부하신 철인 7호 치킨 사장님도... 휴...) 사실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내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만 고민하면 모두 알이즈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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