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혼비∙박태하에세이<전국축제자랑>
2010년 트래비스가 내한했던 펜타포트부터 가장 최근 위저가 내한했던 펜타포트까지… 꾸준히 페스티벌을 찾아다녔다. 봄에는 ‘Beautiful Mint Life’와 ‘렛츠 스프링’, 여름에는 ‘펜타포트’와 ‘지산밸리’, 가을에는 ‘자라섬재즈페스티벌’과 ‘GMF’… 시간과 돈과 기회만 주어진다면 어떻게든 페스티벌을 찾아가 방방 뛰어댕기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2012년 라디오헤드의 내한 덕분에 지산 리조트의 지축 구조가 바뀌는 줄 알았다던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세계 각국 페스티벌 마니아들과 마시던 맥주, (왜 그랬는지 대체 이해는 안 가지만) 매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입장하기 전 사랑하는 우리 동생들과 송도 유원지의 이상한 제육볶음 집에서 넷이 부어라 마셔라 때리던 소주 일곱 병,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 취재하러 갔다가 일도 꼬이고 비가 와서 홧김에 가평 한우와 소맥, 철원 DMZ 페스티벌 다음날 소주와 곁들어 남은 고기를 찍어먹던 너구리 스프………… 왜 음악 이야기에 죄다 술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매년 페스티벌은 지루했던 내 일상을 리프레시하는 중요한 이벤트였다.
하지만 코로나 덕분에 2020년 1월 영화 기생충의 음악감독인 <정재일 단독 콘서트>를 이후로 나의 음악/공연 덕후 생활은 뚝 끊기고 말았다. 이후 ‘공연 가고 싶다’와 ‘페스티벌 가고 싶다’라는 말은 감염병 시대에 사치품 같은 바람이 되었다. 나처럼 역마살까지 있는 상황에 이런 상황은 정말 갑갑할 수밖에 없다. 그때 만난 책이 김혼비 작가와 그의 남편 박태하 작가의 에세이 ‘전국축제자랑’이다.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벌교꼬막축제’나 ‘양양연어축제’ 같은 지역 특색을 살린 축제는 물론 ‘젓가락페스티벌’, ‘의좋은형제축제’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축제까지 다양한 축제 현장에 서있는 그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김혼비∙박태하 부부는 축제의 소개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의좋은형제축제’ 현장에서의 아기 상어 뽀로로 EDM과 세종대왕 체험 프로그램 같은 황당한 코너를 통해, 영암왕인문화축제에 뜬금없이 끼어있는 유교문화 체험을 통해 그들은 엄근진 한 듯 우스꽝스럽고 완벽한 듯 허술한 사람들의 모순과 함께, 그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재미를 찾는 기쁨을 이야기한다.
어떤 어이없고 황당한 축제 현장에서든 그네들은 그 현장의 재미를 찾아 즐기고 그 장단점을 나누며 모든 상황을 추억으로 소화해 나간다. 어떤 당황스럽고 황당한 축제여도 분명 그만의 재미는 있게 마련이다. ‘젓가락 문화 발전을 위한 한중일 3국의 제언’이라는 젓가락축제의 서슬 퍼런 학술 심포지엄에서도 그들은 각 나라의 젓가락 문화를 비교하며 한 자리에 있는 즐거움을 깨달으며 젓가락으로 즐겁게 식사를 한다.
그래, 인간은 어떻게든 주어진 상황에서 재미와 할 일을 찾게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생물이다. 오죽하면 유태인들은 절멸수용소에 갇혀서도 농담을 던지고 필라테스를 개발했을까… 우리도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혼술 문화와 ZOOM으로 소통하며 한 잔 하는 문화를 만들었을까…
이 책은 전국에서 진행되는 축제의 가이드북이라기보다는 축제를 빙자해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가이드북에 가깝다. 작가의 전작인 <아무튼, 술>이나 요즘 SBS 스포츠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이 생각나게 하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등의 책에서처럼, 김혼비 작가는 지루할 만하면 문장의 방향을 꺾고 호흡을 조절해 재미있는 리듬을 만들어내는 에세이의 비트메이커이기 때문에 이 책이건 다른 책이건 그녀의 이름 세 자 ‘김.혼.비’가 새겨진 책은 무조건 읽을만하다고 감히 예언해 본다.
P.S) 김혼비는 <하이피델리티>, <어바웃 어 보이>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 닉 혼비의 이름을 ‘우라까이’한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