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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Sep 28. 2021

2017년 부족했던 경주의 추억을 채웠다

경주 황리단길 식당 '사시스세소'

2017년 즈음 다시 취직을 할지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할지 본격 고민을 시작했다. 갑자기 생각이 많아져  무작정 경주로 내려간 나. 돈도 별로 없어 시외버스를 타고 터덜터덜 내려가 조용한 게스트하우스에 자리를 잡고 누워 그냥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다 문득 고로상이 찾아오고… 해가 진 후 무작정 밥을 먹으러 나갔다.

2인분 시켜 반도 못먹은 경주 백반 정식

사실 경주는 그나마 경주 명동골목 쫄면이랑 황남빵 정도를 빼고는 딱히 이렇다 할 전통 음식이 없다. 그래서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중 황리단길 초입의 한식 백반집에 들어 주문을 하려니, 혼자는 안된대서 무작정 2인분을 시키고 경주 전통주라는 인삼 동동주와 음식을 배 터지게 먹고 나와 소화도 시킬 겸 황리단길을 걸었다.

그때 이 집이 너무 궁금했었다. 사시스세소라니...

당시 지금처럼 화려하지 않던 황리단길 한복판에 자리 잡은 한옥 지붕 집에 있던 조금 당황스런 식당 간판. 정말 가보고 싶었지만 그때는 배가 터질 것 같아서 들어가 볼 수가 없었어. 이런저런 생각을 지우러 온 경주 여행이어서 그럴까? 그 여행에서 내게 남은 건 딱 다섯 글자, ‘사시스세소’였다.

적산가옥 같은 집부터 레트로까지...

그러고 4년이 지나, 포항공대로 출장을 가려다 신경주역을 들르게 되었다. 에라 내친김에 사시스세소를 가보자. 일을 마치고 경주로 돌아와 곧바로 황리단길로 향한다. 시간이 흐른 후 황리단길은 한복과 한식 등 우리 문화는 물론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과 문화가 자리한 핫플레이스가 되어 있더라.

그때와 똑같은데 달라진건 늘어난 에어컨 실외기와 수조

이제 날도 선선하고 천천히 걸으며 분위기를 느끼기 좋구만. 하지만 나는  곳만 본다. 다른 모든 가게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사시스세소 향했다. 간판은 예전이랑 똑같네삐거덕 고리 문을 열고 들어가니 코시국 평일인데도 사람이  차있다. 1인석에 자리 잡아 메뉴판을 살펴보니, 아뿔싸 내가 미리 리뷰나 인스타 같은걸 확인하지 않았던가.

 브런치 먹방을 자주 읽으시는 분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날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 사시스세소는 초밥과 사시미를 주력으로 하는 일식당인걸  눈치를  챘을까. 심지어 가게 이름이 히라가나의 ‘さしすせそ 본뜬 건데일하시는 분에게 ‘ 것을  먹는데요….’ 말하니 종업원이 눈으로 이렇게 심한 말을 하는 느낌.


그럼 여기 왜 왔어요?


그러게. 왜 내가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여길 왔지? 좀 당황하다 옆 테이블을 보니 먹음직스러워 카츠동을 주문했다. 그래도 초밥집이니, 장어 초밥은 너무 많고 타마고 스시라도 시켜보자. 얼마 되지 않아 기본 반찬인 시저 샐러드와 함께 타마고 스시가 나왔는데 좀 특이한 비주얼이다.

그래도 스시집이라 시켜본 타마고 스시. 위의 시저 샐러드는 기본이다

보통 타마고 스시는 다시 마끼를 0.5cm 정도 두께로 잘라 초밥 위에 덮은 모양새다. 하지만 사시스세소의 타마고 스시는 다시 마끼를 거의 3cm 정도 두께로 잘라 가운데 칼집을 낸 후 거기에 단촛물로 비벼낸 밥을 끼워낸 스타일이다.

밥이 좀 적은게 아쉽지만 다싯물 넣어 말아낸 다시 마끼가 제대로

일단 한 입 베어 물어보니 다시 마끼가 달달한 게 맛이 괜찮다. 단촛물 밥도 새콤하고 달고 짠맛이 딱 좋았는데 아무래도 밥을 끼워내는 방식이다 보니 밥 양이 많지 않은 건 단점이라면 단점이구나. 이 집 달걀 잘 다루네!

력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이 집은 달걀 정말 잘 다룸

타마고 스시를 먹고 있으려니 금세 카츠동이 나왔다. 사시스세소의 카츠동은 밥 위에 돈카츠를 덮은 후 그 위에 다싯물 달걀 볶음을 얹어내는 방식. 어떤 집은 다싯물 달걀 볶음을 만드는 막판에 돈카츠까지 같이 넣어서 열을 가한 후 얹어내기도 하는데 난 사시스세소의 방식이 더 마음에 든다.

사진엔 잘 보이지 않지만 고기 아래는 시치미, 위에는 후추를 뿌려냈다

다싯물 달걀 볶음을 덮기 전에 돈카츠 위에 통후추를 갈아 뿌렸는지 한 점 한 점 먹을 때 씹히는 후추 향이 좋다. 다시 한번 느꼈는데, 이 집 달걀물 잘 다룬다. 양파를 넣어 볶아낸 다싯물 달걀 볶음이 진짜 포슬포슬하니 맛있구나. 돈카츠는 뭐 그냥 그랬지만 이런 덮밥에는 이 정도면 괜찮지 뭐. 사이드 반찬이 김치보다 락교나 단무지였으면 더 좋았을 뻔했는데 그 정도는 이해됨. 타마고 스시가 4피스 5천 원, 카츠동 8천 원. 가격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밥 먹으며 찾아보다 보니, 이 집 짬뽕을 잘한다던데 이미 배가 불러서 다른 것은 못 먹겠다. 뭐 사실 음식 맛이 뭐가 중요한가. 이름으로만 남아있던 경주의 추억 한 부분을 완성시킨 것 만으로 사시스세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당이다. 다음에 여러 명이 경주여행 와서 꼭 함께 오고 싶은 집. 이로서 2017년 부족했던 추억의 부분이 채워졌다.


P.S)사시스세소는 히라가나 さ열을 본딴 것이기도 하지만 일식을 할 때 기본 조미료 순서인 설탕(さ)과 소금(し), 식초(す)와 간장(せ), 된장(そ)의 앞자리를 딴 말이라고 한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뜻으로 지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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