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냐, 아니면 기질 또는 성향이냐
엇비슷한 일을 이상하리만치 반복적으로 겪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매번 같은 둔턱에 걸려 넘어진다거나, 매일 가는 길을 잘못 들어 헤멘다거나, 여행지만 가면 식중독을 앓는다거나. 그쯤 되면 사고가 아니라 한 사람의 기질이나 성향이 빚어내는 필연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친구를 한 명 알고 있다.
그가 고등학교 3학년, 학원 단과반을 다니던 시절. 한 여자 아이를 마음에 들어했다. 마침 그녀는 그의 친구 A와 같은 수업을 듣고 있었다. 간신히 삐삐 정도만 있던 시절인 만큼 A는 그와 그녀 사이에서 다리가 되어주겠다고 나서 쪽지와 편지, 선물 등을 전달해 주었다.
조금씩 썸을 타게 되면서 음악을 좋아하던 그는 A를 통해 그녀에게 자신의 음반들을 빌려주기 시작했고, 한 3주 후 A와 그녀는 완전히 연락이 끊기고 학원도 그만두었다. 알고 보니, CD를 전달해주며 함께 듣다 둘은 정이 들어 사귀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CD도 몽창 떼어먹혔고.
대학에 입학해 처음 가게 된 OT. 국문과의 한 여학생을 보고 반해버린 그는 재수해 그와 같은 대학을 간 국문과 형에게 그 여학생을 소개받아 보려 했다.
아, 우리 학년 ***? 우리랑 스쿨버스 같은 라인이야. 내가 한번 알아볼게
간단히 소개를 시켜줘서 한 두번 눈인사를 하고 차츰 버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그의 눈빛을 피했다. 이윽고, 그는 캠퍼스에서 그녀와 손을 잡고 다니는 형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는 이후 당분간 스쿨버스를 타지 못했다고 한다.
시간은 1년이 흘러 대학교 2학년, 그는 활동하던 주일학교 교사회에 새로 들어온 여교사 B를 맘에 들어했다. 붙임성은 좋지만 ‘골 결정력’이 부족했던 그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계속 망설였고, 그와 함께 교사회에 들어온 친구는 자기가 판을 벌여주겠다며 계속 자리를 만들어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다.
함께 갔던 MT 자리에서 큰 마음을 먹고 마침내 그녀에게 고백한 그. 아직 답은 듣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앞서가는 친구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친구의 집을 찾아가 이야기라도 들어보려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축하해주길 바라’라는 삐삐의 음성 메시지만을 듣고 친구는 만나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꾸준하기도 하다. 군에서 전역한 후 복학해 그 파이팅을 바탕으로 여자친구를 사귄 그. 하지만 그가 능숙하지 않아서인지 상성이 안맞아서인지 계속 다시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에 그는 많이 힘들어했다. 이 모습을 보다못한 같은 밴드의 기타리스트 형은 ‘야 대체 뭐가 문제인데!’하며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고, 형에게 받은 위로와 격려 덕에 그는 많이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녀는 아무리 전화해도 연락을 받지 않았고, 이후 그는 ‘저 새끼는 선배 형의 여자친구에게 자꾸 치근덕대고 전화하고 그런다’며 여기저기서 욕을 먹기 시작했다.
어느덧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 열심히 일하던 중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 소개했다’며 클라이언트의 친동생을 소개받았다. 둘다 성당 활동을 오래 한 만큼 만나는 동안 웃음과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썸썸썸 분위기도 좋았다. 하지만 한달이 좀 지나 그녀는 더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부터 ‘그’를 L차장이라 불러보기로 하자. 조급해진 그가 클라이언트에 전화를 했더니, ‘사실 제 동생이 수녀원에 간다고 해서, L차장님 만나면 마음을 돌릴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미안해요’라는 답을 듣게 된다. 잘 되게 해달라고 그렇게 하느님한테 기도했다는데, 결국 그여자가 하느님을 찾아가네… 또 같은 일은 반복되었다.
이건 기질 문제일까, 아니면 그가 억세게 재수가 없는 것일까? 웃을수만은 없는 그의 스토리를 생각하다 보니, Kiss가 부른 노래 <Hard Luck Woman>이 떠올랐다. 영화 대본이라고 하기에도 작위적이고 진부한 그의 스토리, 언젠가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길 한번 바래보며 잠깐 든 상념을 정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