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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Oct 06. 2022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올해도 사랑과 평화였다

2018년 남북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 갑자기 뜬금없는 페스티벌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DMZ PeaceTrain Music Festival


DMZ에서 평화? 웃기는 소리 하네. 예전에 이미 판문점에서 Woodstock 페스티벌을 하느니 마느니 온갖 뻥을 다 들은 페스티벌 러버로서는 험한 말이 튀어나올 수 밖에. 하지만 당시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한국의 현직 대통령과 북한의 자칭 ‘최고 존엄’이 휴전선을 넘어 악수를 나누고 포옹하는 장면을 보며 당시 우리들은 ‘진짜 뭔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거든. 결과만 이야기하자면, 페스티벌은 성공적이었다. 

이 뜬금없는 신생 페스티벌에는 가까운 일본과 대만부터 프랑스와 헝가리 등 한국과 전 세계를 아우르는 뮤지션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쳤고 거의 1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철원으로 유입되었다. DMZ PeaceTrain Music Festival(이하, 피스트레인)이 단순히 무료 페스티벌이라 그런 것은 아닐 듯.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


‘평화’를 표방하는 피스트레인의 메인 슬로건이다. 진영 논리건 계급이건, 지위 고하건 여기서는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일단 음악을 즐기고 춤을 추자는 이야기. 실제로 피스트레인은 고작 3년차라는 초짜 페스티벌 답지 않게 늘 사랑과 평화, 양보와 여유가 언제나 넘쳐났다. 


코로나 사태로 3년만에 재개된 피스트레인. 올해도 피스트레인 음악 열차에 오르기 위해 성당 대자와 아침부터 철원으로 달려갔다. 아직 오픈 시간도 아닌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일단 밥을 먹어보자. 메뉴는, 원고료 두둑히 받았으니 한우로 출발~! 

철원 전통 막걸리와 철원의 전통 발효주라는 ‘솔직담백한 철원오대쌀로 빚은 증류식 소주’도 한 병 시켰다. 시원한 맥주도 빼놓을 수 없지. 


한우를 치익 치익 구워가며 먹고 마시는데 갑자기 옆자리가 시끄럽다. 사람이 많아 1인 식사는 안된다며 한 사람이 일하시는 분과 실랑이 중. 응? 근데 팔에 피스트레인 입장 팔찌가? 나와 후배는 동시에 이렇게 외쳤다. 


합석하시죠. 이리 앉으세요


생전 처음 만난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먹고 마시다 보니 어느새 시켜놓은 고기와 술이 동이나고, 어느새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그냥 저희꺼 드시죠?',  '형 그만써 내가 살게', '아녜요. 이번 차는 제 타임입니다. 여기 불고기랑 이 증류주 한 병 더요~’ 아재스런 겸양과 권유가 오간다. 모르긴 몰라도 그 테이블에서 셋이 20~30만원어치는 먹고 마셨나보다. 

고백하자면, 첫날 피스트레인 무대에 오른 아티스트들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건 고량주를 넣은 ‘임시정부 하이볼’을 마시다 만난 핀란드 아이들과 되도않은 영어로 낄낄대며 서로 막 하이볼을 사와 권하던 일과, 갑자기 단체 사진을 찍자는데 끼어들어 날 졸졸 따라다니던 스페인 여자아이, 밴드 ‘효도앤베이스’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멤버들과 사진을 찍은 것 정도? 

비가 왕창 오기도 했고, 전날 술을 너무 마신 탓에 다음날은 정말 살살 가볍게 음악을 즐겼다. 하지만 알 수 없는 편한 기분은 여전했다. 어제 어울렸던 각국 사람들은 웃으며 하이파이브와 그리팅 펀치를 날렸고, 어김없이 스탱딘존에서 마주치면 같이 춤을 추고 몸을 부딪쳤다. 비가 너무 많이 와 마지막 무대인 한영애와 노브레인까지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집에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울 때까지도 그 따스한 기운은 계속 내 몸과 마음에 남아있었다. 다른 페스티벌도 음악 중심일 텐데, 왜 피스트레인은 다르지?

아마도 그건 운영진과 관객의 마음이 통해서가 아닐까? 피스트레인 제작진은,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기는 하지만 그들이 내건 슬로건 대로 ‘어떤 선을 긋기 전에 일단 음악으로 편견 없이 어울리는 것’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페스티벌에 오는 관객도 마찬가지. 1회부터 참여한 사람들은 진짜 ‘여길 뭘 믿고 오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밑도 끝도 없는 페스티벌의 틀을 잡도록 해 준 음악 평화주의자들. 공통점은 오로지 음악.

아무래도 공통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은 금방 마음을 열고 친해지게 마련이다. 보통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얼굴은? 키는? 뭐하는 사람이야?' 많은 허들을 거쳐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면 이 허들들은 정말 확 낮아지고 왠지 그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2019년 피스트레인에서 만난 사람들. 꽤 유명인도 섞여있지만 전엔 전부 하나도 몰랐던 사람들

맞아. 착각일 수 있지. 그런데 그 착각 덕에, 처음 만난 사람들도 그 자리에서 만큼은 마음을 활짝  연 채 웃고 떠들며 진심으로 놀게 되잖아. 실제로 피스트레인을 통해 이전엔 접점도 없었던 여러 사람들과 느슨한 연대를 맺고 여러 사람들과 친해졌다. 


심지어 올해 피스트레인도 200% 만족이었다. 운영진 여러분, 내년에도 기꺼이 철원에 돈을 쓰게 해달라. 제발 내년에도 고석정 메기메운탕을 먹게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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