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일의 세 번째 솔로 앨범 <psalm>
정재일이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2020년부터 들었지만 발매하는 날짜는 깜빡해 그냥 지나가고 말았다. 그러던 중 마침 정재일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앨범의 존재를 알았다.
정재일의 세 번째 솔로 앨범 <psalms>은 시편, 그중에서도 인간이 신에게 보내는 좌절의 메시지에 주목한다. 정재일의 지휘 안에서, 합창단을 통해 전해지는 시편의 메시지는 어떤 종류의 만트라처럼 노래 안을 맴돌며 꼬리가 긴 여운을 남긴다.
정재일은 5.18 민주화 항쟁 당시 광주 시민들이 느꼈던 마음을 성서의 시편을 빌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5.18 항쟁이 그랬듯, <psalms>에는 시편에 나온 사랑과 세상에 대한 찬가보다 고통과 좌절, 한과 자조만이 담겨있다. 갑작스런 재난과 같은 시련을 맞아들이며 느끼는 당혹감과 위정자들을 향한 증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절망감… 그 참담한 감정들을 정재일은 안개와 같은 모호한 앰비언트 사운드 속에 텅 빈 듯 꽉 차게 담아냈다.
하지만 절망만 있는 건 아니다. 좌절과 분노, 체념이 담긴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전자음과 리버브 사운드 위를 끊임없이 부유하는 것은 ‘memorare’라는 단어, 이 앨범의 또다른 정서인 ‘기록’과 ‘기억’이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광주 5.18에 대한 평전을 쓰기보다 그것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기록하려 했다.
OST를 통해 음악 속에 영화를 담은데 이어, 정재일은 자신의 세 번째 솔로 앨범에서 ‘광주, 5.18’을 기록하려 했다. 거두절미하고 그 결과는… 학자나 음악 전문가는 아니지만, 감히 나는 정재일의 이 앨범을 또다른 마스터피스라 부르고 싶다. 합창과 오케스트라, 앰비언트와 현대음악 등이 의뭉스럽게 뒤섞인 사운드를 이렇게 하나로 주물주물 빚어낸 정재일의 솜씨도 대단하다. 하지만 가장 칭찬하고 싶은 것은, 함부로 재단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의 비참한 정경이 살 속으로 파고드는 <psalm>에는, 현실에 대한 평가와 치유 같은 마음은 없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은 자칫 하면 어떤 것을 함부로 잣대를 들이밀어 단정하게 될 수 있다. <psalm>은 집단적인 상처를 다독이고 위로하며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정재일은 이 앨범에 자신이 느낀 광주를 그저 담아내는데 집중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희망적으로 변하는 이런 종류의 음악과는 달리 <psalm>의 1번 트랙 ’26.9’부터 마지막 트랙 ‘how frail the sons of man you have created’까지, 음악은 사운드와 감정선의 기승전결을 통해 살아남은 자들과 희생된 이들을 묘사할 뿐이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을 들으며 다시 그 아픔을 기억해 본다.
how frail the sons of man you have created?
(하느님이 창조하신 사람의 아들들은 얼마나 연약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