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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Nov 06. 2024

가난한 자가 평냉을 즐기는 방법

GS25 ‘시원하게 땡길 땐, 평양냉면’

이병헌 감독이 연출한 ‘스테디셀러’(?) 드라마 ‘멜로가 체질’ 7회에서 함께 평양냉면집에 간 진주(천우희)와 범수(안재홍). 진주는 ‘라면, 짜장면 다 좋아하는데 평냉은 처음이다’라며 호기롭게 평양냉면을 한 젓가락 하고 육수를 마십니다. 이후 표정이 일그러진 진주.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라며 식초를 치려 하자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범수는 그녀를 만류했어요. 이런 범수에게 진주가 가게를 나오며 말을 건넵니다.

출처: <멜로가 체질> 7화
돈 냈어요?


뭐 그런 걸 묻냐는 듯 ‘냈죠’라며 바라보는 범수에게 진주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돈을 내고 먹는 거였구나.
아무 맛도 안나길래.


평양냉면은 그런 음식입니다. 물론 단박에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먹었을 때 꽤 많은 사람들이 보통 진주처럼 반응합니다. 뭐 저도 비슷했어요. ‘음? 이게 뭐지?’라며 배고파서 꾸역꾸역 먹고 뭔가 밍밍한 입맛은 남은 백김치와 달걀 반쪽으로 정리를 했어요. 1/3쯤 남긴 친구의 그릇에 식초와 겨자를 치고 먹어봐도 뭔가 좀 애매하더라고요. 얼마 후 두 번째 먹었을때야 고소한 메밀면의 맛을 느꼈고 그 이후는 평양냉면 ‘빠’가 되었어요.

아마 이건 <진미평양면옥> 물냉면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늘 그놈의 가격이 문제였어요. 서울은 ‘유진식당’이나 ‘서북면옥’, ‘부원면옥’ 같은 곳이 아닌 이상, 평양냉면 가격은 한 그릇에 15,000원이 훌쩍 넘고… 아무래도 거리가 집에서 만만치 않다 보니, 이래저래 부담돼서 그냥 동네 갈빗집 같은데서 대충 때우거나 비빔냉면을 만들거나 했거든요. 그러던 중 만난게 이 녀석입니다.

이게,  검색해보니 L 사이즈는 그닥 찾기가 쉽지 않다더라고요

우연히 들른 편의점에서 이 녀석을 만났습니다. 풀네임은 ‘시원한게 땡길 땐, 평양냉면 육수’. GS25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따라 평양냉면이 너무 생각났는데 먹으러 가기도 그렇고 지갑도 영 허전하고 해서 좀 망설이고 있었거든요. 그러던 중 우연히 들어간 GS25에서 보니 이 녀석이 뙇~ 눈에 띄더라고요. 홀린 듯 육수를 사서 집에 와보니, 그냥 이 육수로 냉면을 해 먹고 싶어졌습니다.

여기에 면과 고명이 들어있다고 누군가 시비를 거나봐요 ㅎㅎ 1,000원 중반대 가격에 뭘 기대한다고...

인터넷을 뒤적여보니 좀 싱겁다거나 가 맛이 연하다는 등 무작정 좋은 평가는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도 이왕 꽂힌 김에,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시장에서 메밀국수와 돼지고기 전지를 좀 사고, 채소는 냉장고에 있던 무 토막을 이용하기로 했어요.


평소에는 표면을 구워 안에 육즙을 가둔 상태에서 삶긴 하지만 이번엔 그냥 귀찮아서 뜨거운 물에 된장 풀고 파 흰 부분과 양파 똥가리만 조금 넣고 팔팔 끓인 다음 앞다릿살 한 근을 집어넣었습니다. 아 구석에 짱박힌 마늘만 한 키위 토막을 넣었어요.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면서 냉면 고명으로 꽤 잘 어울리는 무초절임을 만들어봅니다. 이미 물을 끓이기 전 무를 얇게 포를 떠 한 장당 소금 한두 꼬집씩 뿌려 절여놓았는데요. 한 20분쯤 지나면 이미 소금에 절인 무에 물이 흥건할 텐데요. 여기에 끓인 단촛물을 붓습니다. 단촛물은 보통 설탕과 식초, 물의 비율을 1:1:1로 잡는데요. 뭐 어차피 냉면 육수에 넣을 거라 적당히 넣으시면 될 겁니다.

그냥 채칼로 슥슥 잘라 소금에 절인 다음단촛물을 부었어요.

전 고작해야 무 쌈 여섯 장 정도라 그냥 조금씩 만들었어요. 식히지 않은 단촛물을 그대로 부어주시고, 보통 하루쯤 되면 딱 맛이 드는데요. 전 바로 먹을 거라 무 쌈을 한 시간쯤 절인 후 채를 썰어 30분쯤 다시 담갔다 고명으로 얹었어요. 대파 토막도 찹찹 썰어 넣었습니다.

급하게 하는 바람에 맛이 덜들어 무초절임 채로 변경~
파고명도 조금 준비해 넣어주는게 평냉 스타일~

그렇게 시간이 한 시간 반쯤 흐르고, 고기도 다 익어 냉면 고명에 얹을 네다섯 쪽 말고는 전부 깍둑썰기로 썰어뒀습니다. 이제 국수를 삶을 차례. 메밀 30% 정도로 함량은 낮지만 뭐 있는 거 먹어 치워야겠죠? 얘는 면발이 굵어서 메밀 함량은 낮아도 식감이 좋을 것 같더라고요.

메밀 함량이 떨어지는 면이어도 뭐 그럭저럭...

한 4분 삶아 면 위에 고명을 하나씩 올려둡니다. 마침, 남아있던 맥반석 달걀도 반 커트해 올리니 제법 그럴싸한 냉면 같아요. 쇠고기 고명은 아니지만 뭐 어때요. ㅎ

저 냉면 대접, 넘나 소중한 것

이제 이렇게 고명을 잘 얹은 냉면에 시원하게 땡길 땐, 평양냉면’ 육수를 부어주었습니다. 평소에 평양냉면 먹던 대로 고춧가루도 좀 뿌려주고…

잘 저은 후 한 입 먹어보니… 오, 이거 괜찮은데요? 평양면옥이나 진미평양냉면처럼 육향이 싹~ 올라오는 맛은 아니었지만, 단가가 10배 차이인데 그거야 당연한 거죠. 그래도 꽤 훌륭한 평양냉면의 대안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집에서 만든 냉면을 싹싹 먹어 치웠다죠?

보기에 좀 별로여도 꽤 맛있더라고요. 아, 소주가 없네

뭐 제가 좀 오바쟁이인 만큼, 무 쌈 만들고 고기 삶고 오버를 좀 하긴 했지만요. 그거 없이 메밀면에 파만 좀 썰어 얹고 육수 부어 먹어도 아주 훌륭한 평양냉면 느낌을 내줍니다. 무 쌈은 마트에서 파는 와사비 무 쌈 같은걸로 대신해도 되고요. ‘그냥 수육이나 해 먹을껄’ 후회가 되지 않는 꽤 만족스러운 한 끼였습니다. 갑자기 냉면이 먹고 싶다면, 한번쯤 도전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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