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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Jan 03. 2021

꿀조합 좋아하면 똑같은 것만 나와요

피자에는 소주지. 그래도 생크림 맥주는 좀...

이제 한 해가 시작된 지 고작 이틀도 안 지났지만, 내가 2021년 들은 가장 놀랄만한 이야기는 ‘현대자동차그룹’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1조 57억 원에 인수했다는 소식이었다. 자연스러워서 소름 끼칠 정도의 동물형/인간형 로봇을 제작해 한국의 휴보나 일본 혼다의 아시모를 씹어먹어 버린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막강한 기술력과는 달리 딱히 수익을 내지 못해  소프트뱅크를 거쳐 구글에 인수되었던 상황. 

얼떨결에 현대차에 입사한 보스턴 다이내믹스 신입사원들의 댄스

2018년 말부터 ‘SPOT’이라는 개인용 ‘애완’(?) 로봇을 1억 원 조금 안 되는 비용에 판매하고 있었지만 어정쩡한 상업성으로 붕 떠버린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밑도 끝도 없이 지난 12월 현대자동차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언뜻 보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중후 장대 산업이 주력인 현대자동차그룹이 로보틱스라니… 그러나 조금만 생각의 가지를 쳐보면 꽤 괜찮은 장사다. 그동안 무작정 동물형, 인간형으로 만들기만 했던 로봇을 테스트할 곳이 생긴 것이다. 


그동안 만들었던 로봇들의 행동을 프로그래밍해 공장에 맞는 업무를 시키거나,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공장 설비에 맞게 로봇을 제작하고 튜닝해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공장 라인에 즉각 투입하면 곧바로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타 공장에 맞는 로봇을 제작해 판매할 수도 있다. 또한 로봇의 자세 제어 기술 역시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경함으로 나를 놀라게 했던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현대차 인수는 의외로 찰떡궁합이었다는 평가.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 역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는 현대자동차그룹에 로보틱스 기술이 더해져 미래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할 것’이라 기대감을 표현했다.

사실 많은 문화적 현상들이 생경하고 이질적인 조합에서 일어났다. ‘이게 어울릴까? 하는 의외의 조합을 합쳐보면 색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지만, 이상하다고만 생각하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처음엔 제품의 아이덴티티를 떨어트린다고 싫어하던 농심이, 이젠 아예 대놓고 홍보하고 있다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함께 끓인 것을 말하는 ’ 짜파구리’는  면식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금기시되던 ‘국물라면과 볶음면은 함께 끓이면 어정쩡해진다’는 일종의 불문율을 깨서 대박이 났다. 물을 줄인 만큼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끓여낸 짜파구리는 얼큰한 너구리의 해물맛이라는 장점과 구수한 짜장맛이라는 짜파게티의 장점이 시너지를 일으켜 대박이 났다. 

밴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온스테이지 합동 라이브 <범 내려온다>

밴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는 당시 누구도 생각지 않았던 드럼+베이스+또 베이스라는 이질적인 밴드 구성에 판소리라는, 척 보기에 생경한 매치가 이루어낸 성과이다. 전혀 안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조합은 엄청난 반향을 끌어냈고 전 세계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잠비나이'의 신곡 검은 빛은 붉은 빛으로>

‘밴드계의 BTS’로 소문난 ‘잠비나이’도 그렇다. 거문고와 해금, 피리라는 전통적 국악기와 메탈 코어의 만남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록 마니아들에게 정말 새로운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한국에 있는 시간보다 유럽을 돌며 공연 여행을 하는 시간이 많을 정도였으며, 이제 잠비나이는 한국 음악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밴드가 되었다.  

영화  <극한직업> 명장면 중 하나. '야이 개섓꺄~~~'

영화 <극한직업>의 이하늬가 빛났던 이유도 마찬가지. 이지적이고 도도한 이미지를 유지했던 이하늬 배우가 스크린에서 볼살을 출렁이며 ‘야이 개샛꺄~’라 외쳐대는 코미디 연기는 영화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2021년 올 한 해, 내 사전에서 ‘궁합’과 ‘꿀조합’ 같은 단어는 과감히 지워보려 한다. 치킨에 맥주, 찌개에 소주를 외치는 시대는 이제 떠났거든. 앞으로 ‘피자에 소주를 마십니다’라고 당당히 외치는 한해를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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