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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Feb 08. 2021

당신에게 보내는 한 콘텐츠 작가의 연애편지

여러분은 모두 제 잠재적 클라이언트입니다

안녕하세요? 당신에게 편지는 처음 써봅니다. 제가 누구냐고요? 일단 JYP처럼 제 어머님이 궁금하지도 않을거고. 홍보/ 마케팅 콘텐츠 작가는 신상명세 따위도 별로 중요한건 아닙니다. 어차피 제 이름을 걸고 쓰는 콘텐츠는 아니니까요. 일단 학교에서 맞고 자라진 않았지만 때리거나 할 강단은 없어서 학폭 같은 문제는 없고요. 사회적으로 문제 될 일을 한 적은 얼마 전 주차 위반 딱지가 전부지만 그 정도는 큰 문제는 아니죠. 콘텐츠 작가한테 제일 중요한 건 당연히 글을 얼마나 잘 쓰냐에요. 하지만 콘텐츠 작가가 콘텐츠를 어떻게 소비하느냐는 건 그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랍니다. 콘텐츠 작가인 제 미디어 소비 성향은 대강 이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보통 7시 반 정도에 일어나 스타벅스 VIA 한 잔을 타들고 컴퓨터를 켭니다. 네이버 포털 1면은 날씨만 봐요. SNS나 브런치 추천, 다양한 텍스트 큐레이션 서비스를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텍스트를 읽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후딱 지납니다.

인터넷 창궐 이후 매달 읽는 책의 권수는 확실히 줄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 권 이상은 억지로라도 읽어보려고 노력해요. 소설이나 에세이, 칼럼집이나 르포르타주 등 장르는 가리지는 않아요. 텀블벅 등 클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되는 한정판 책도 사랑합니다. 하지만‘아프니까…’류의 자기 계발서는 무관심보다는 혐오에 가깝습니다. 아프면 환자지. ‘불안한 사람들을 위한 레드불’을 굳이 찾아 읽지는 않아요. 단, 저도 돈은 벌어야 하니 도서관에서 이슈가 되는 자기계발서들의 핵심 정도만 슬쩍 커닝하긴 합니다.

요즘은 이 친구들 음악 참 많이 듣습니다. 상자루.

뷰민라, 펜타포트,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 피스트레인, GMF,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등등… 매년 한국에 열리는 페스티벌에 오시면 어지간하면 절 만나실 수 있어요. 유명한 뮤지션의 무대도 좋지만 신인 뮤지션의 무대를 보고 음반 사는 게 너무 신나더라고요.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공연은 언감생심. 대신 요즘은 유튜브의 ‘네이버 온스테이지’를 열심히 챙겨보며 저만의 신인 발굴을 하고 있어요. 최근 눈에 들어온 팀은 국악밴드 ‘상자루’. 하지만 요망한 아이유의 오마이걸 리메이크도 사랑합니다.

긴장감이 1에서 10으로 마구 널뛰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보다는 허진호 감독이나 김종관 감독의 강약중강약 잔잔한 영화를 좋아해요.

보건교사 안은영 아직 안 보신 분 있나요?

무도 신서유기 빠라서 어쩔 수 없지. 김태호 PD와 나영석 PD의 예능은 어지간하면 모두 챙겨보고요. 이슈가 되는 인기 드라마 첫 회는 2배속 재생으로라도 조금씩 봐서 트렌드를 놓치지 않아요. 물론 재밌으면 곧장 정속주행! 배두나와 정유미가 나오는 영화와 드라마는 각 잡고 무조건 정주행이라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주로 일상을 소통하는 동시에 트렌드를 캐치하는데, 요즘에는 브런치 업로드를 늘리고 있어요.


콘텐츠 작가는 1차 생산자인 농부라기보다는, 채소나 쌀처럼 일단 생산된 원자재를 먹기 좋은 요리로 바꾸는 2차 생산자에 가깝습니다. 식당을 찾아온 손님에게 생식을 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저는 클라이언트가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어 하는 식재료에 제 비법 레시피를 섞어 요리한 후 대중에게 서비스해 잘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셰프에 가깝습니다. 그런 셰프가 남의 요리를 먹어보고 분석하는건 기본이잖아요.

미디어를 꼭꼭 씹고 잘 소화해 내 것으로 만드는 건 콘텐츠 작가에게는 정말 중요해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뭔가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나오는 거 아닐까요? 시대와 함께 가는 콘텐츠를 소비하고 이해해 체화한 작가가 써 내려가는 글줄의 행간에는 현재를 관통하는 시대의 향기가 묻어있다고 전 믿습니다.


콘텐츠 작가라는 요리사의 레시피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흐름은 비슷해요. 팩트라는 원 재료를 잘 씻어 정리하고 다듬어 먹기 쉽고 요리하기 쉽도록 손질합니다. 때로는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취재해 직접 재료를 준비할 때도 있는데요. 그때는 이야기의 행간을 고민해 듣기 거북하거나 걸리는 흙 같은 언어는 털어내고 잔가지와 이파리를 잘 쳐내 부드럽게 데칩니다.

재료 손질이 끝났다면, 클라이언트의 브랜드와 기업 등 의뢰한 콘텐츠의 느낌을 내는 ‘흐름’이라는 소스를 더해 칼럼이나 에세이, 튜토리얼 같은 ‘형식’이라는 팬에 잘 볶아내줍니다. 여기에 소위 ‘글빨’이라는 향신료를 조금 뿌리면 맛이 확 살아나겠죠. 이렇게 잘 요리한 콘텐츠는 홈페이지나 블로그, SNS나 오프라인 잡지, 사보 등 플랫폼 그릇에 디자인이라는 데코를 거쳐 잘 담아낸 후 대중에게 서빙합니다.

제 글은 말하자면, 요런겁니다

IoT와 중후 장대 사업, 방위산업 분야부터 광고와 홍보, 미디어와 예술, 역사와 종교, 라이프 스타일과 유머까지 사람이 살아나가는 모든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아주 재미있고 싱싱한 이야기 재료예요. 깊지는 않아도 다양한 문화와 사회 현상을 꾸준히 관심 가지고 연구해 요리에 토핑해 그 콘텐츠의 맛과 비주얼을 좋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느 재료 건 모두 글로 요리하는건 언제나 신나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 가장 재미있는 재료는,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관심을 가지는 바로 그것입니다. 이게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요리해 대중에게 서빙하는 전업 홍보/마케팅 콘텐츠 작가인 저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랍니다.


미안하지만 지금 나를 사랑하냐 물으셨나요? 그럼요. 이 편지를 읽는 분은 모두 제 잠재적인 클라이언트인걸요. 광고와 홍보를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담당하는 클라이언트를 연인처럼 사랑한다’는 숙명을 타고났습니다.  20세기 말 미디어 변혁기부터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해  ‘뉴미디어’라는 단어가 이미 구닥다리가 된 21세기 현재까지 통신사와 소비재 기업, 광고 홍보대행사와 식음료, 제약 회사 등 수많은 크라이언트를 각각 또는 동시에 사랑해 왔어요. 오프라인 월간지의 특집과 각종 리포트, 칼럼 등 그 연애 방법도 다양하죠. 설마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진 않겠죠. 콘텐츠 작가는 기본적으로 문어다리 사랑을 지향합니다. 한 명만 사랑한다는 말은 홍보/마케팅 콘텐츠 작가에게는 맞지 않아요. 함께하는 잠재적 클라이언트는 모두 제 사랑인걸요.


 당신과 소통하기 위해 쓰는 연서 같은 글을 쓰는 지금도, 저는 잠재적 고객인 당신을 깊게 알고 알고 사랑하고 싶습니다.  아 그렇다고 굳이 절 사랑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긴 세월 글만 써온 한 남자의 지루한 넋두리를 여기까지 참고 읽으며 시간을 낭비해 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요. 이 간지러운 텍스트를 여기까지 참고 읽어준 당신에게 무한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보내드립니다. 원래 잘 읽었다는 말은 댓글과 하트로 표현하는 것 다들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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