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cis Feb 12. 2021

회알못이 무슨 인생횟집을 리뷰하니?!

회귀신 친구들도 인정한 암사동 최고 오마카세 횟집

육고기와 물고기는 자고로 익혀 먹어야 합니다. 잘 다듬어 적절한 방법으로 다듬고 깨끗하게 불순물을 손질한 고기나 생선살을 팬에 구우면 살의 단백질이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켜 조직이 부드러워지고 감칠맛이 살아납니다. 동시에 열을 가하면서 내부의 지방이 녹아 나와 표면을 바삭하게 튀기듯 익혀주고 소위 불맛을 살아나게 하죠. 숯불에 구울 때 특히 이 지방분은 또 다른 역할을 합니다. 살에서 녹아 나온 기름이 숯에 떨어져 나온 연기가 살점에 닿으면서 굽고 있는 살에 스모키한 느낌을 더해줍니다. 


삶아먹는 건 또 어떻고요. 고기를 삶을 때 넣는 양념과 향신료에 따라 고기에 배어드는 맛은 육질을 부드럽게 하고 날고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다양한 맛을 선사해 줍니다. 또한 지방도 부드럽게 풀어져 고소한 맛이 배가되지요. 삶고 난 물을 육수삼아 고기국수 등 다양한 2차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습니다. 생선 조림 국물에 밥을 썩썩 비벼먹는 건 어떻고요. 이런데도 고기나 생선을 날로 드시겠다고요? 에이.......... 지금까지 날고기나 날생선을 먹지 못하는 자의 쪼잔한 푸념이었습니다. 

흑... 자고로 고기는 불에 구워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켜야... 하지만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라면 날로 먹어도 됩니닷

회를 먹지 못합니다. 아, 정확히 얘기하면 날고기나 날생선 등 익히지 않은 동물을 못 먹어요. 어렸을 때 집이 좀 어려웠어서, 회나 육회는 어른들의 명절 술상에나 오르는 고급 안주였습니다. 나이가 스물이 넘어가고 집안 형편은 물론 나도 알바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입맛이 굳어버린 후였어요. 꾸준히 먹어서 익숙해지면 천국이 찾아올 거라고요? 노노. 회나 날고기를 먹을 기회에 따라 늘 도전해보지만, 전 무슨 맛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초장이나 와사비 맛으로 먹어보라고 하지만 그 두 가지도 그닥 즐기지 않다 보니 영 익숙해지지도 않고요. 

‘정말 좋은 걸 먹어보면 달라질 거다’라고 하시는데, 1인분에 25만 원도 넘는 오마카세 코스를 먹어도 맛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 때문에 술자리나 모임의 분위기가 깨지는 것은 싫어서 날걸 못 먹는다고 강짜를 부리거나 빼지는 않습니다.  


어제는 명절이기도 해서 오랜만에 지인들과 동네의 유명한 횟집 ‘인생횟집’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전 지글지글 고기 굽고 소주 마시는 게 좋아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내 사람들이 먹고 싶다잖아요. 내가 살아가며 만난 감사하고 또 감사한 누나와 동생들이 먹고 싶다는데 그게 회면 어떻고 고기면 어떻습니까. 저는 그 사람들이 즐겁게 먹는걸 보기만 해도 본전 뽑는겁니다.  

지인과 여러 SNS상 암사동 최고의 횟집, 이름 자체가 인생횟집 입니다.

인생횟집은 암사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 동네 구석에 있는 오마카세 스타일 횟집입니다. 원래 암사동에는 태양회수산이라는 비슷한 스타일의 오마카세 스타일 횟집이 이미 있었는데요. 태양회수산 사장님은 가게가 궤도에 오른 후 ‘회를 더 연구해봐야겠다’며 가게를 친구에게 넘기고 공부를 위해 여행을 떠나셨다고 해요. 그렇게 몇 년의 회 수련을 마치신 사장님께서 공부를 끝내시고 다시 암사동에 돌아와 차린게 ‘인생횟집’이라고 합니다. 


일단 가게에 들어서면 스타터로 죽을 내어 속을 보호하게 해 줍니다. 오마카세 스타일인 만큼 메뉴도 바뀌는데요. 제가 갔을 때는 쇠고기 죽이 나왔습니다. 쇠고기 죽을 먹은 후 곧바로 나오는 회가 어마어마합니다. 

왼쪽부터 도미 몸통살, 뱃살, 광어 몸통, 꼬리, 단새우 순서

두툼하고 넉넉히 썰어낸 광어 지느러미와 몸통살, 도미 뱃살과 몸통살에 단새우가 1인당 한 마리씩 먹기 좋게 손질되어 나옵니다. 날생선은 먹지 않지만 그래도 맛은 봐야죠. 와사비를 아주 조금 바르고 함께 내주신 트러플 소금에 찍어 도미 뱃살을 한 점 입에 넣어봅니다. 살이 아주 싱싱하고 씹을수록 고소한 지방 맛이 올라오는 게 정말 싱싱해 보이네요.

질좋은 참치회와 생굴

회 한 점 먹었는데 금세 참치회와 생굴, 고등어 구이가 서빙됩니다. 줄다랑어 볼살과 주도로 부분인데, 볼살이 쇠고기처럼 고소합니다. 굴은 우윳빛깔이 도는 게 엄청 신선해 보였어요.

아... 포스팅하는 지금도 감태+우니 초밥 냄새가 기억나네요. 고등어구이도 굿굿

참치와 생굴 바로 뒤에 가져다주신 고등어구이와 초밥. 아무래도 회 못 먹는 저 때문에 참치와 새우, 감태+우니 초밥을 내주신 것 같아요. 와… 향이 진짜 기가 막힙니다. 성게알의 짠맛이 향이 진한 감태와 만나 맛을 확 올려줍니다. 날건 간신히 맛만 보는 저인지라 감태+우니 초밥과 새우 초밥으로 배를 채운 후 고등어구이에 소주를 촵촵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생선이 많이 떨어져서 미안하다며, 사장님은 또다시 참치 뱃살과 도미살을 추가로 썰어 주시고…

크림소스 버터구이와 팽이버섯 우삼겹말이 찜

 와 이제 배부른데 또다시 나오는 전복 크림 버터구이와 팽이버섯 우삼겹말이 찜. 찜은 마장에 찍어 더 고소함을 부스트 해 먹습니다. 이제 내 세상이다! 잠시 후 따라 나온 새우튀김과 이리를 넣은 알탕. 튀김도 아주 고소해서 소맥을 말았는데 어우 이리 넣은 알탕이 정말 소주 안주로 짝짝 붙네요. 이거 코로나 19 때문에 9시에 나가야 하니 시간이 아쉽네요. 그래도 최대한 음식을 비우고 기분 좋게 가게를 나섰습니다. 

새우튀김과 알탕마저 아주 짝짝 붙습니다

날 것을 못 먹는 제가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친 것은, 늘 함께 해줘서 감사한 고마운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런데 음식 퀄리티도 정말 좋아요. 날 것도 잘 못 먹는 녀석이 무슨 회를 평가하냐면 할 말은 없습니다. 이렇게 어찌저찌 횟집을 다니다 보니 어떤 회가 좋은지 정도는 알아볼 수 있겠더라고요. 나름 어떤 게 좋은 회냐는 기준은 가지고 있습니다. 날것을 잘 먹지 않다 보니 , 날 생선살을 씹으면 어지간하면 비린 맛이 올라오더라고요. 하지만 잘 손질된 질 좋은 생선은 씹었을 때 비린 맛을 거의 느낄 수 없더라고요. 

인생횟집에서 낸 모든 생선들이 정말 질이 좋았습니다. 지인들은 엄지 척하며 정말 맛있게 먹더라고요. 회가 아닌 조리된 식품들도 고등어구이와 새우튀김은 물론 마지막 탕까지 맛있게 먹었어요. 


2021년 한 해에는 코로나 19 사태가 좀 좋아져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러한 행복을 자주자주 많이 많이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와... 이렇게 포스팅하니 제가 꼭 다 쏜 것 같군요. 


이렇게 보니 인생횟집 다찌도 괜찮네요. 테이블은 뒤쪽에 4인용 네 개뿐입니다

인생횟집은 단품 메뉴는 없고 오로지 1인당 코스 메뉴만 있습니다. 1인당 2만 5천 원인데, 이 정도 퀄리티를 이 금액으로 즐길 수 있다는 건 속칭 개꿀이죠. 이곳은 4인용 테이블 4개에 바 테이블 6자리 정도로 운영되는 작은 가게인 데다 늘 손님이 그득하니 꼭 전화로 예약을 하는 걸 권합니다. 저 아는 분들은 여러 가지 수단으로 연락 주세요. 제가 예약을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전 23화 을지로에서 카오산로드를 만났다:도이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