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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Feb 13. 2021

그거 알아? 일상은 모두 여행이야

사는 게 여행하는 거고 여행은 먹방이고 먹는 게 사는 거고

목적지를 고른다. 때론 목적지 없이 무작정 출발하는 것도 OK. 원래 깜짝 이벤트가 더 기분 좋잖아. 갈 곳을 찾아본다. 뭐 꼭 검색을 하고 가이드북을 찾거나 해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좋다. 뭔가 두리번거리며 찾는 재미도 있으니깐. 어떤 걸 즐길지 정한 후 최대한 거기에 몰입해 본다. 

주위를 둘러보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면 가볍게 목례를 건네본다. 일부러 말을 거는 것은 실례지만, 이 정도 눈인사면 뜻밖에 즐거운 대화가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혹시 상대방이 갑자기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느낌으로 다가오면 알고 있는 외국어로 인사를 건넨다. 십중팔구는 인사만 하고 도망가게 마련. (만약 그 외국어로 받아치며 대화를 시도하면 낭패)


우리가 흔히 여행을 떠날 때 하는 행동들이다. 그런데 그거 아나? 여행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일상이 사실은 여행을 준비하는 그것과 같다는 것. 심지어 출근해서 퇴근하기까지의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래 두 가지, 실제 내 일기를 공유해본다.


2010. 9. 15. Tokyo, Japan

눈 한 번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어느새 도쿄 시부야. 첫 도쿄 여행, 아니 일본이 처음이라 아는 것도 없는 데다 가이드북을 들고 온 것도 아니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스마트폰으로 시부야를 검색해 보지만 죄다 패션 쇼핑과 예쁜 카페, 식당뿐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다. 무작정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구석에 보이는 간판 ‘Clubhouse GeGe’로 들어가 본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가 눈에 띄는 그곳. 말로만 듣던 일본의 라이브 하우스다. 일단 손짓 발짓으로 입장료를 지불하고 종업원이 ‘Free Drink’를 자꾸 외치길래 메뉴를 보니 죄다 일본어. ‘Beer, Fresh Beer. Not Bottled’라며 생맥주를 주문해 본다. 아니나 다를까. 병맥주를 플라스틱 컵에 따라주네.  아, 생맥주는 Draught Beer던가?

떠나기로 마음먹은 지 4일 만에 첫 도쿄. 그땐 진짜 어딜 갈지 당황스러웠다고. 지금은 아예 골목을 외우는 곳도 있지만...

이윽고 나온 자그마한 키의 뮤지션. 나긋나긋하고 통통 튀는 발라드를 부를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 외다. 마치 밴드가 휘몰아치듯 강렬하게 두들겨대는 피아노 선율에 한참 신인 때의 시이나 링고처럼 몰아치는 보컬이라니… 깜짝 놀라 30분의 라이브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오사카 여행서 우연히 들른 타워레코드에서 마주친 히구치 아이 상. 날 기억하고 있더라. 종종 트위터로 연락 주고받았는데 대형 기획사에 픽업되고는 연락 끝~

공연이 끝나고 뒤쪽에서 아티스트가 직접 음반을 판매하는 곳에 달려가 CD를 집어 들고 ‘I’m from korea. And maybe now I have become your first korean fan’이라 외쳤다. 돌아온 답은, ‘ano… english… no’.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히구치 아이 상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21. 2. 13. Hipjiro(!), Seoul, Korea

명절에 하도 할 일이 없어 무작정 따릉이를 타고 나왔다. 시내 인도를 타고 마구 달리다 보니 어느새 을지로. 땀이 좀 많이 나서 뭐 먹을 것 없나 하고 둘러보지만 대낮의 을지로는 처음이라 1시 좀 넘은 을지로에서는 뭘 먹을지 어딜 갈질 당최 모르겠다.

그 유명한 힙지로 부근이더구먼

좀 서성거리다 문득 불이 켜진 2층 가게 ‘밥 먹는 술집, 광장’? 일단 한 번 올라가 보니 생각보다 넓은 카페 형식의 테이블. 주인은 잠시 어디 간 건가… 잠깐 자리에 앉아 서성이고 있으니 주인이 포스트잇으로 메모를 건넨다. 잘 살펴보니 이곳은 말이 없는 가게란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딱이구만.

코로나 때문인지 원래 그런지는 몰라도, 주문도 포스트잇이고 전화도 나가서 받아야 한다. 당연히 대화는 노노

뭘 시킬지 몰라서 메뉴판을 보다 미묘하게 이국적인 분위기에 창 맥주를 적고,  식사류를 고민하다 양배추 스테이크를 적어 주인장에게 건넸다. 16,900원이라도, 명절에는 고기지. 음음.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니 갑자기 내 자리에 저격병 조준 같은 레이저 포인터가 깜빡인다. 요리가 나왔으니 가지고 가라는 소리.

양배추 스테이크는 생각보다 양도 많고 함께 나오는 피클과 곁들이면 개꿀이다

처음 만난 양배추 스테이크. 솔직히 좀 놀랐다. 향 좋은 올리브유와 발사믹 소스에 식감 좋게 튀긴 마늘을 얹어낸……… 구운 양배추…… 어, 고기가 어디 갔지? 이상해서 가격을 다시 보니, 아…16,900원이 아니라 6,900원이구나. 음 그럼 뭐. 조심스레 양배추 한 귀퉁이를 썩썩 썰어 맛을 보니, 음? 이거 생각보다 맛있다. 적절히 삶아낸 후 구워서 식감도 좋고 소스와 올리브유도 적당하네. 심심할 땐 옆에 곁들인 가지와 줄콩 피클을 함께 먹으면 된다. 생각보다 양이 많으니 두 사람 정도의 술안주로 충분하다. 오 이거 좋구나. 얼른 맥주 한 병을 작살낸 후 카운터로 가 포스트잇을 들이밀었다.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의 주인공 스즈메(우에노 쥬리)는 남편이 해외로 장기 파견을 가고 혼자 살아가는 가정주부다. 매일 거북이 밥을 주는 것을 빼고는 반복되는 일과. 

히피처럼 자유롭게 모험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친구 쿠자쿠를 부러워하며 지루한 삶을 이어가던 중 우연한 기회에 계단 밑에 엄지손톱 만하게 붙은 스파이 모집 포스터를 보고 지원해 덜컥 스파이로 뽑혀버린다. 스파이가 된 스즈메는 뭔가 007에나 나올 법한 첩보물의 주인공 같은 행동을 하려 하지만 그의 스파이 선배인 쿠키타니 부부는 그녀를 말리며 이렇게 명령한다. 

스파이가 튀면 안 되지. 최대한 평범하게 살아


그런데 무슨 마법일까? 그녀의 일상이 180도 변하기 시작했다. 아, 매일 장을 보고 남편과 통화하고, 거북이 밥을 주고 집 근처 식당에서 친구와 라면을 먹는 일상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바뀐 건 '이건 모두 스파이  작전이야'라 생각하는 스즈메 자신의 마음뿐.  

지루하고 따분했던 스즈메의 반복되는 일상은 '나는 지금 스파이 일을 하는 거야'라는 마음가짐 하나에 스릴 넘치고 짜릿한 모험으로 변해버린다

앞서 내가 공유한 여행 글과 음식점 글은 주제는 다르지만 거의 비슷한 감정선을 공유한다. 여행자와 음식점을 찾아 나선 자의 감정선과 행동은 매일 아침 출근해 오전 또는 전날 고민해 찾아낸 일을 마치고 사이사이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 저녁나절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를 만나는 일상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다른 것은 오직 당사자의 마음가짐뿐. 


이것이 내가 음식 관련 브런치 매거진의 제목을 ‘여행한끼’로 정한 이유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 전체가 크고 작은 여행이 모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매일 여행하듯 하루를 즐기며 사는 것이 나만의 인생 모토다. 하루가 지겹다면, 여행을 상징하는 당신의 소품을 하나 챙겨 넣고 하루를 시작하자. 출근길 선글라스 정도와 이어폰에서 흐르는 조동익의 <출발> 정도는 괜찮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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