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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Feb 14. 2021

저는 음악 서바이벌을 보지 않습니다

참여자들 모두에게 정당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또 몰라도요

요즘 <싱어게인> 때문에 난리다. 다들 부산 출신 헤비메탈 보컬리스트 정홍일에 열광하고 이승윤의 다양한 모습에 입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무명시절 그들의 활동들이 재조명되고 눈물 나게 힘들었지만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의 감동 스토리로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데… 음악을 주제로 하는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의 킬러 아이템이다. 그 이유도 명확하다.


첫째, 참가자들의 수준이 보장되어 있다. 예선을 통과한 일정 수준 실력이 검증된 뮤지션(주로 가수)들이 무대에 오르는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는 보장되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둘째, 방송국에서는 최고의 세션맨과 음악감독들을 붙여 그들이 선곡한 노래들을 편곡하고 연주한다. 뮤지션들이 직접 피아노나 기타를 연주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손길 위에서 음악 서바이벌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최선을 다해 노래하다 보니 그 감동은 더해진다.

셋째, 평가단들의 감동 어린 심사평은  시청자들의 부푼 마음을 펑 터뜨린다. 거꾸로 날카로운 비평으로 마음을 차게 식히기도 하지만 업다운을 통해 흥분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러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있나. 하지만  이런 음악 예능이  불편하기만 하다.  이유는 얼마  암투병중에도 공정한 노동을 위해 힘든 상황에서 치러낸 ‘희망뚜벅이 마친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김진숙 지도의원이 크레인 위에서 1 가까이 농성하신 이유와도 같다. 부당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크게  가지다.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아직 무대를 꿈꾸는 모든 가수들의 한 번 더(!) 오디션
조건은 단 하나! 단 한 장이라도
앨범을 낸 적 있는 가수라면
누구나 도전 가능.
나도 가수였고, 가수다!


이것의 <싱어게인>의 모토다. 이미 데뷔를 했지만 제대로 이름을 알리지 못한 무명 뮤지션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되는 무대를 선사한다는 달콤한 이 말. 이건 심각한 문제다. 뭐가 문제냐고?

야이 방송국 놈들아. 최저시급 정도는 좀 줘야 되는 거 아니냐!!

 번째, 과연 그들은 정당한 대가를 받을까? 얼마  다른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여해 8강에서 떨어졌던  뮤지션은 그동안에 받은 것은 하루 김밥  줄과 교통비 3 원뿐이라는 뉴스가 잠시 이슈가 되었다. 이전에도 이런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출연료를 주지 않거나 박하게 준다는 것은 많이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 이게 얼마나 큰 홍보인데
그런 큰 기회에 출연료가 문제야?


하지만, 이건 그것과는 다른 문제다. 예선도 그렇지만 본선까지 오른 뮤지션들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인건비를 지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방송국 때문에 촬영 시간 내내 다른 일 못하고 붙잡혀 있지 않나. 게다가 <싱어게인>의 참여자는 그들의 기준대로라면 이미 데뷔한 뮤지션. 과연 그들이 정당한 출연료를 받았을까?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는 고운 말로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방송국에서 그들의 능력을 빼먹는 것 아닌가.

음원 수입이라는 것도 어차피 기존에 그들이 발표한 노래들이 아닌 남의 곡 리메이크한 2차 저작물에다 그 수익마저 방송국과 나눌테니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두 번째, 그 심사라는 것도 마뜩잖다. 유희열 같은 명 프로듀서이자 제작자, 김종진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뮤지션, 이미 안목이 높을 탑 작사가 김이나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심사위원들은 그런 권위가 있을까? <싱어게인>의 경우 소위 프로라고 하는 사람들을 경연에 붙이고 심사하는데 이런 인기에만 치중한 심사위원진을 보고 있으면 평가받는 뮤지션들의 착잡한 마음이 느껴져 괴롭다. 자칫 잘못하면 이건 심사를 가장한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세 번째, 과연 시청자 투표라는 게 공정할까? 투표 조작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한 번도 방송을 보지는 않았지만 정홍일과 이승윤이 박빙으로 인기라는 말은 많이 들었고, 가끔 SNS를 통해 짤방도 자주 보았다. 그때마다 정홍일은 늘 흔히 이야기하는 ‘록커’의 이미지였고 이승윤은 ‘싱어송라이터’의 이미지였다.


정홍일의 초반 복장은 록 뮤지션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최대한 록커로서의 안 좋은 스테레오 타입을 피해 가는 코디였다. 하지만 3라운드부터는 코디에서 록커의 정체성을 진하게 드러내는 코디로 변화했다. 노래 역시 샤우팅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곡했고 세미파이널부터는 아예 가죽재킷을 입고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막이나 편집도 모두 샤우팅에 집중. 반면 이승윤은 시종일관 젊고 발랄한 코디를 유지하며 경연을 펼쳤다.


나만의 스테레오 타입일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머리를 기르고 가죽재킷을 입은 록커의 이미지는 전반적으로 이런 투표 상황에서 불리하다. 이런 게 투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 과대망상일까? 이런 프로그램에서 본선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경연자 별로 PD가 따로 붙는데, 과연 코디나 이미지 메이킹에 아예 손을 대지 않았을까?

야이 방송국 놈들아. 나도 경연 프로그램 좀 맘 편하게 보자

뮤지션들에게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힘든 생활에 찾아온 또 다른 기회이자 행운일 수도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끼치는 선한 영향력 또한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1억 원의 상금과 음반 제작 지원, 전국 투어는 1등 단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것 아닌가? 최소한 다른 뮤지션들에게도, 그들이 붙던 떨어지던 출연하는 만큼의 정당한 대우는 해주기를 바란다. 그러기 전에 나는, 이런 음악 서바이벌은 마음이 불편해 앞으로도 계속 보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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