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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Feb 17. 2021

일 시킬 때 뭘 제대로 줄지는 좀 고민하세요

노들 버스커 기획 담당자의  '버스킹은 무료'가 말이 되지 않는  이유

우리가 누군가가 의뢰를 해서 노동을 했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 어떤 노동의 형태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설사 의뢰한 사람이 그 노동으로 인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더라도, 처음에 약속한 대로 열심히 그 노동을 해내기만 했다면 그에 대한 일정한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리스크 때문에 흔히 이야기하는 갑들은 ‘성과급’등 제도를 붙이기도 하지요. 어쨌든 얼마라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번 노들섬 버스커 '노들버스커' 모집 사태는 이러한 것을 기획에 반영하지 않고 자신들이 기획하는 무대를 '수혜'라고만 생각하는 데서 생긴 것입니다.


Episode #1

어느 날 홍대 앞을 지나던 김국밥 씨는 놀이터 앞을 지나다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이정민 씨를 보고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음 저 사람. 시끌시끌하니 액션도 크고… 사람 좀 끌어 모으겠는걸?’ 하고 이정민 씨게 제안합니다.

'내일 오전이든 오후든 우리 가게 앞에 와서 세 번 정도 버스킹을 해줘요. 음반을 팔아도 되고’. 잠깐 고민하던 정민 씨 섭외를 처음 받아봐 고민은 조금 했지만 이내 ‘음, 국밥집 앞이고 내 지역도 아니라 기존 팬은 안 오겠지만, 그래도 동부이촌동. 좋은 동네잖아? 손님들에게 노래도 들려주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내 노래도 들려주며 새로운 팬도 만들고… 나 일 시키는 거니까 일당도 줄 거잖아. 좋겠는걸?’ 생각하며 제안을 수락합니다.

출처: Pacific Legal Foundation (https://pacificlegal.org/)

다음날 정민 씨는 동부이촌동 국밥집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게 소개도 하고 사람들을 가게로 유도합니다. 오, 다른 카페에서도 버스킹을 하고 분위기 좋네요. 사람이 없을 땐 다른 곳에서 버스킹을 하다 올까 고민했지만 세 번 하기로 했으니 그냥 좀 쉬고 옆 가게 공연 시간 피해 가며 다시 가게 앞에서 노래를 합니다. 예전엔 기타 하드케이스에 간혹 팁을 주시거나 음료수를 놔주시기도 했지만 오늘은 좀 허전하네요. 그래도 동네 분들이 라이브를 봐주시고 CD도 만지작 하 고 하니 기분은 좋습니다.

국밥집에 들어가는 손님들도 많고 흥이 나서 막 소주도 시키는 것 같고… 마지막 버스킹에서는 국밥 드시던 분이 나오셔서 CD까지 한 장 사주셔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가게로 들어가 쭈뻣쭈뻣하다 ‘저 오늘 일당은….’ 하니 김국밥씨는 정색을 합니다.


일당이요? 제가 정민 씨 뭘 보고 일당을 주겠어요.
혼자 노래하는 게 기특해서 내 가게 앞에 판 벌려준 거잖아요.
아까 혼자 가게에서 연습도 하게 해 주고 가게 앞에 의자랑 풍선도 달아줬는데…
배고프시면 국밥 한 그릇 내드릴게. 아, 공깃밥 추가는 천 원 내셔야 해요.


미리 일당을 이야기하지 못한 건 실수지만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 이정민 씨는 주인에게 따져봅니다. 하지만 주인은 끄떡도 안 하며 이렇게 되려 반문합니다. ‘정민 씨가 십센치는 아니잖아요. 누가 정민 씨 공연을 보려고 돈을 내요. 나도 수지가 맞아야 일당을 주던지 하지. 당신 공연 보고 가게 들어온 사람도 몇 명 안돼요. 당신 홍보 잘했잖아! 아니, 애초에 하기 싫으면 싫다고 하지 왜 이제 와서 그래요.’ 옆 카페에서 좀 전에 노래하던 싱어송라이터분에게 눈빛을 보내며 하소연해보지만 자리를 슬쩍 피하기만 합니다. 정민 씨는 쓸쓸히 악기를 챙겨 자리를 뜹니다.


'노들버스커' 담당 기획자라는 분이 생각하는 ‘버스킹’이라는 건 딱 이 정도인 것 같아요. 이정민 씨가 자발적으로 가게 앞에서 노래했다면 김국밥 씨가 일당을 줄 의무는 당연히 없습니다. 하지만, 정민 씨가 애초에 동부이촌동 국밥집에 간 것은 엄연히 김국밥 씨가 불러서잖아요. 누구에겐가 노동을 시켰다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설사 그 일이 시킨 사람의 생각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쳐도, 애초에 협의한 대로 일을 열심히만 했다면 대가를 지불해 줘야지요. 기획자 분은 길거리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었는데 맛 없다고 돈 안내고 그러세요? 아니잖아요.

잘 아시네요. 이게 버스킹이 성립이 안되는 거

노들버스커도 마찬가지입니다.   담당자님이 직접 올린 해명 포스팅에서는  버스킹을 애초에 ‘길거리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공연’이라 정의하셨어요. 담당자분 자신은 직접 본인이 해명을 위해 단 댓글에서 노들섬을 ‘굳이 노들섬까지 누가 와서 버스킹을 할 것인가’라 표현하신 것은, 애초에 노들섬은 자발적으로 버스킹이 벌어지지 않는 곳이라는 걸 인정하신 셈입니다.

담당자분의 기획은 ‘유동인구가 적은 노들섬에, 플레이스에 어울리는 버스킹 형태의 공연을 상시 운영해 유입을 늘리는 동시에 공간을 브랜딩 하자’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노들버스커' 기획은  이름만 버스킹이지 담당자분이 정의하신 '길거리'와 '자발성'이라는 버스킹의 두 가지 의미 모두 사라진 셈입니다. 그럼 버스킹이 아닌 , 일부러 주최 측에서 선발을 해 뮤지션을  무대에 올린 기획 공연입니다.


이 버스킹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노들섬은 뮤지션들의 버스킹 스타일의 공연을 통해 ‘유입 확보’와 ‘공간 브랜딩’이라는 두 가지 리워드를 얻게 되실 겁니다. 설마 이 프로젝트에 아무 홍보도 안 하실 요랑은 아닐 테니, 날씨가 좋아지면 어떻게든 사람은 유입될 것입니다. 기대한 만큼 효과가 안 나올 수도 있다고요? 효과가 안나온다면, 그게  뮤지션들의 문제일까요? 아니요. 기획자 여러분이 선발한 20 팀의 뮤지션들이 공연을 하셨다는 가정 하에, 기획은 여러분들이 하신 거잖아요. 그럼 뮤지션들은 자기 할 일을 다 한 셈인데, 노들버스커 기획하신 여러분은 뮤지션들에게 어떤 리워드를라도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제시하신 리워드를 과연 진짜 리워드라 할 수 있을까요?


‘리허설 스튜디오 제공’과 ‘라이브 뮤직비디오 제공’을 리워드로 이야기하고 계신데, 그건 좀 애매합니다. 라이브 뮤직비디오는 아마 뮤지션들이 노들섬 무대에서 버스킹을 할 때 무대를 배경으로 찍어 편집할 테니, 이건 뮤지션들에게 제공하는 혜택이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거꾸로 제가 앞서 다른 글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뮤지션들의 SNS와 팬덤, 지인들을 활용해 노들섬 측이 추가 홍보효과를 얻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리허설 스튜디오... 이게 제일 기가 막히네요.  10개월간 5회 제공은 생각하면 할수록 눈 가리고 아웅입니다. 합주하러 교통 편리한 홍대나 강남 같은 곳 합주실이 아닌, 굳이 노들섬 안까지 악기 바리바리 싸가지고 가는 수고를 할 밴드가 있을까요? 그 다섯 번은 참여하는 뮤지션들이 공연 리허설할 때나 쓰겠죠.


뮤지션들이 원할 때 자율적으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일정을 운영하겠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선발된 20팀이 8개월 내에 각각 10번의 버스킹을 해야 합니다.  1월 12월에 버스킹을 노들섬에서 한다는 건 불가능하니 실질적으로는 6개월 동안 20팀이 200번, 매주 8개의 버스킹 공연을 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공연을 평일날 하겠어요. 죄다 주말에 몰릴텐데...  게다가 어차피 버스킹 하기 좋은 시간과 계절, 타이밍은 정해져 있을 테니 선발된 20팀이 자율적으로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은 스스로는 불가능합니다.  노들섬의 SNS 같은 곳에서 안내라도 하려면 주최측이 일정을 조정해야 겠죠. 그런데 자율성이라고요? 에이… 선수끼리 왜 그러세요. 하다못해 SNS로 공연을 홍보하기 위한 포스팅용 이미지라도 만들텐데,  정말 자율적으로 내버려 두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저처럼 이 기획에 아무 관계도 없는 일반인이 게시글만 보고 문제점을 짚어낼 수 있다는건, 주최 측이 버스킹 팀에게 ‘공연의 기회’ 이외에 줄 리워드와 문제점 등은 아예 고민도 해보지 않고 안이하게 기획을 했다는증거입니다. '올리면 하겠다고 할 뮤지션은 넘쳐날거야' 하고요.

출연료로 대변되는 금전적 보상이 아니어도 뮤지션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걸 더 고민하시고 이야기를 들어보셔야 합니다. 주최 측 담당자분, 나름 ‘바르고 고운 말’로 입장과 변명을 정성스럽게 써 놓으셨는데요. 꼭 욕이나 비속어가 있다고 나쁜 글이 아닙니다. 단어를 고르고 나열하는데에서 보이는 배려 없음과 글줄 사이사이 보이는 벼려놓은 칼날들이 뮤지션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거라는 점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뮤지션 여러분도 꼭 한번 생각해 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이 긴 글에 또 추가로 TMT 해보려 합니다.


Episode #2

동부이촌동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로하 씨는 음원을 출시하고 음악 레슨도 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싱어송라이터입니다. 두 달 전부터는 동부이촌동 단골 카페와 근처 다이닝 펍 작은 무대에서 라이브도 하고 있어요. 가끔은 따뜻하고 날씨 좋은 주말에 단골 카페 앞에서 의자를 놓고 기타를 치며 작은 라이브를 하면 사람들 반응도 좋고 손님도 많아져 기분이 좋습니다. 주인들도 고마워하며 소정의 수고비를 챙겨주시기도 합니다. 가게에는 아로하 씨의 음원이 흐르며, 가끔 가게에 음반을 쌓아두면 그게 팔리기도 하고요.

출처: Nother Quota(https://thenorthernquota.org/)

그런데 어느 날 단골 카페 옆 국밥집을 하니 웬 시커먼 사람이 와서 통기타 치면서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얼추 보니 주인이 가게 손님 끌려고 부른 것 같더라고요. 아… 음정도 영 안 맞고 기타는 왜 이리 삐걱대지. 잘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로 김광석 노래 같은 거 불러대니 국밥집 손님들은 평소보다 소주를 더 마시는 것 같아요. 나와서 막 춤도 추고. 아… 저렇게 장소 모르고 돈 벌라고 노래 부르는 것들 때문에 뮤지션들의 가치가 스스로 낮아진다는 생각을 하니 그 남자가 꼴도 보기 싫습니다. 가서 ‘노래 좀 잘하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또 부딪치고 엮이긴 싫고요.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카페 앞 라이브를 마치고 슬쩍 보니 가게 주인이 일당을 못주겠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당연하지, 이 사람아.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우리들까지 도매금으로 싸구려 취급당하는 거잖아. 아, 마침 나랑 눈이 마주친 그가 막 ‘아니 주인이 불러서 온 건데 노래 별로라 돈을 못준다는 게 당연한 건가요’라고 막 하소연 하지만 도와주기 싫습니다. 이런 급 떨어지는 뮤지션과 한데 묶이기 싫더라고요. 어느새 그는 일당을 포기한 채 돌아갔더라고요.


어느날 라이브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왔는데, 평소와는 달리 사장이 봉투를 챙겨주지 않습니다. 애초에 내가 달라고 한건 아니라 쭈뼛쭈뼛하다 아르바이트생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그러더라고요. ‘우리가 돈 준다고 부른 것도 아닌 애들인데 왜 굳이 돈을 챙겨주냐. 지들 어차피 홍보하고 CD 팔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며…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았습니다. 결국 나도 그 시커먼 사람과 다르지 않은 신세가 되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울적해집니다. 가게 주인은 잠시 후 ‘팁 박스를 놓고 공연하시는 건 어떠냐’고 묻더군요. 아로하 씨는 사장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신세가 처량해진 것도 있지만, 그 시커먼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하고 무시했던 게 계속 생각이 나서요.


홍대 앞의 소위 ‘버스커’들을 보고 많은 뮤지션이 느낄 감정. 저도 조금은 이해합니다. 죄다 남의 노래만 앵무새처럼 부르는 것은 고사하고 악기도 없이 MR은 고사하고 노래방 기계 틀어놓고 버스킹이랍시고 하고 있는 안타까운 광경…. 심지어 꽤 알려진 사람도 그런 버스킹 판에 끼어서 양민학살하며 YouTube에서 대박 나는 경우도 가끔 있죠. 저도 홍대의 그 버스킹 거리를 정말 싫어합니다. 한 번은 술 취해서 ‘야이 씨, 최소한 가사는 좀 외워라! 스마트폰 보고 부르지 말고!’라고 소리 지르다 정말 다구리 당할 뻔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요. 이거 하나만은 여러분이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아마 노들 버스커 모집에도,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여러 뮤지션들이 도전할 것입니다. 돈을 못주겠다고 해도 공연이 하고 싶어서, 혹여나 찾아올  팬들이 생각나서… 그런 뮤지션들을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말았으면 해요. 여기서 그냥 ‘일확천금’ 하고 단순히 유명해지고만 싶어서 음악 시작한 분은 없잖아요? 다들 음악이 좋고 공연이 좋고, 그걸 즐기는 관객들을 보고 싶어서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할 거예요. 어떻게든 무대에서 자신들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럴 무대가 없는 뮤지션들은 이런 기회라도 잡고 싶을 거예요.


그러니 뮤지션 여러분, 그런 버스커들을 비난하거나 안 좋게 생각하는 대신 우리가 모두 떠들고 상황을 공유해서 주최 측이 정당한 리워드를 뮤지션에게 지불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어떨까요? 제가 뭐 유명한 글쟁이는 아니고 팬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여러분들이 제보해주시거나 의견 내주시는 것 최대한 떠들어 드릴게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해 주시고 떠들면 뭔가 바뀌는 척이라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고려 가요의 ‘구지가’를 이야기하며 이 긴 TMT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대한민국의 뮤지션 모두 파이팅!


龜何龜何 구 하 구 하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수 기 현 야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 약 불 현 야        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번 작 이 끽 야   구워서 먹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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