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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Feb 20. 2021

나는 PX병이었다 #1

PX는 군 내부의 매점입니다. 365일 하루도 문을 닫지 않는...

누군 안 그렇겠냐만은, 살아오는 동안 누구나 한 번 정도는 억울한 일을 겪게 마련이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가 제일 힘들고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다고 이야기하게 마련. 특히 군생활이야말로 각각의 억울한 일 천지다.  나 역시 마찬가지. 나 만큼 억울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그동안 인생을 살아오면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군대에서, 동호회에서 오만가지 억울하고 갑갑한 일들이 있었다. 앞으로는 이렇게 억울한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글로 풀어보려 한다. 이렇게 풀어내다 보면 좀 살풀이 기운이라도 받아 내 인생이 좀 덜 억울해지지 않겠나. 그 첫 번째 시리즈는 여자들이 축구 이야기보다 더 싫어한다는 군대 이야기. 

요즘은 PX가 민영화됐는데, 내가 있던 PX는 이 사진 정도도 안되는 찌질한 수준이었다

나는 흔히 이야기하는 피돌이, PX병으로 군생활을 마쳤다. 원래 수송병으로 들어갔지만, 면허 딴지 두 달만에 군대를 가서 운전을 겁나게 못하다 보니 수송부 허드렛일만 하다 정비병으로 보직을 바꾸려던 중 고문관이던 PX병이 계속 정산과 PX 업무에 사고를 치다 보니 PX 관리관이 부사수를 요청해 결국 나를 내려보낸 것. 


PX병은 보통 ‘망고 땡’이라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 맨날 물건이나 팔고 일과 시간에 납품 업자들과 노닥거리기나 하고 PX 내에서 책이나 읽고…. 훈련이란 훈련은 죄다 빠지고… 일단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오늘부터 PX병이 무슨 일을 하는지 조금씩 풀어보겠다. 

흔히 라떼는 말이야 선배들 머릿속에 남아있는 PX 관리병, 속칭 피돌이의 이미지는 딱 이거지만  그건 쌍팔년 이야기...

보통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대대급 이상의 PX 관리병의 업무는 편의점 부점장 정도와 비슷하다고 보면 정확하다. 일단 PX 내의 청결 상태를 관리하고 판매하는 제품이 떨어지지 않도록 진열대에 물품을 채워 넣는다. 창고와 진열대의 제품 유통기한을 관리하고 제품의 판매 주기에 따라 떨어지지 않도록 제품을 관리하는 것은 기본. 군대라는 열악한 환경에 철원이라는 기후 특성상 음료와 맥주, 소주 등등이 얼어 터지지 않도록 케어해주는 것과 PX 밖 오리장 똥도 치우는 등 주변 환경을 관리하는 것도 죄다 나 혼자 해야 할 일이었다. 


뭐 근데 이건 빡세게 작업하고 훈련받는 일반 사병들에 비하면 쉽다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가장 힘든 일은 재물조사. 편의점과 마찬가지로 PX 역시 현재 재고가 얼마고 현찰이 얼마인지 시재를 맞춰 POS기의 재고 기록과 판매 금액 집계 상태가 PX의 총재산과 정확히 맞아야 한다. 이를 위해 매월 두 번째 주는 중간 재고조사, 네 번째 주는 월말 재고조사를 해야 했다. 그런데 첫 번째 문제는 내가 일하던 당시 2000년은 POS기 같은 첨단 기기는 있지도 않았다는 것. 오로지 탁상용 계산기와 매달 날아오는 재고 장부를 토대로 제품의 재고와 현금을 파악해 모든 기록을 맞춰야 했다. 게다가 중간중간 라면이고 과자고 사 먹겠다는 고참들과 간부들 말을 다 들어주려면 장부와 재고의 기록을 손으로 고쳐나가며 삽질을 해야 했다. 


대대장이나 간부들에게 이야기해 PX 운영을 잠시 중단하면 그만 아니겠냐고? 왜 안 해봤겠나. 건의해 재물조사를 위해 PX 문을 닫은 그날, ‘피돌이 새끼 판판이 가게서 과자 팔며 놀다 지 일한다고 PX 못 쓰게 한다’고 고참들에게 귀싸대기를 맞아야 했다. 

내가 근무하던 PX는 이 정도 수준이었다. (출처: https://speedking.tistory.com)

지금은 군 PX가 충성클럽인가 뭔가로 편의점 업체가 들어와 반 민영화 되면서 시설이 좋아졌더라. 하지만 2000년 내가 근무하던 PX는 사병들이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 매장 건물과 창고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건 그럴싸한 표현이고, 실제로는 엉성하게 만들어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가건물 수준의 구조물. 


창고는 겨울이 되면 맥주가 얼어 터질 정도로 온도가 내려가 추운 날에는 위병 중사 근무를 서가며 계속 연탄보일러를 때야 했고 여름에는 비 많이 오면 박스들 썩어나가는 건 기본. 과자봉지가 하나라도 터지면 창고 문을 열었을 때 날파리 폭풍을 고스란히 겪어내야 했다. 관리관은 이렇게 생긴 망실까지 ‘이거 다 내 돈으로 메워야 한다’며 날 들볶아댔다. 어수룩했던 나는 관리관에게 욕먹기 싫어서 실제로 그 얼마 되지도 않던 군인 월급과 휴가 나갔을 때 여기저기서 받은 용돈 꼬불 친 것으로 메꿔놓은 적도 몇 번 있다. 


관리관의 꼬장도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보통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대대급 이상 PX에는 ‘관리비’ 명목으로 일정 수준의 현금 보상비가 지급되며, 내가 근무하던 PX의 현금 보상비는 50만 원 가까이 된다는 것을 제대 후에야 알았다. 자기가 꼬불치던 돈을 PX 망실 제품에 써야 하니 얼마나 아까웠겠나. 


자유시간에 아무래도 다른 사병들보다 몸이 편한 것은 맞다. 물건 파는 건 아무래도 육체적으로는 덜 힘든 데다 청소는 매일 하지만 재고 관리나 재물 조사는 데일리 업무는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일반 사병들이 보기에는 쉬워 보일 수밖에. 그러나 PX병은 1년 365일 매장을 열어놔야 한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게다가 나를 부사수로 받은 고문관 PX 선임은 내가 PX병으로 들어온 지 한 달 만에 사고를 쳐서 영창 4박 5일 갔다가 소각장 관리병으로 '좌천같은 영전'을 하는 바람에, 난 상병 1호봉부터 혼자 PX를 운영해야만 했다. 그 말을 뒤집어 보자면 난 365일 매일 일을 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병장 2호봉 때 미친 척하고 대대장 CP로 쳐들어가 ‘부대 밖을 못 나가 미칠 것 같다. 당장 날 휴가 보내주던지 부사수를 달라’고 꼬장을 부려 군기교육대에 다녀온 후 휴가를 나가기 전에는 8개월간 매일 PX에서 일을 하고 대부분의 훈련까지 뛰어야 했다. 흠… 이 정도면 PX병이라고 비웃음 받는 건 좀 억울하지 않으려나? ‘널럴한 놈’이라고 욕해도 할 수 없다. 그땐 진짜 미칠 것 같았거든. 


* 다음 편에 계속… "PX병 최고 장점은 No 훈련도, No 작업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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