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cis Feb 22. 2021

PX병 최고 장점은 No 훈련도, No 작업도 아닙니다

갇힌 가운데 누리는, 조금 많은 자유

현재 3040 남자들에게 PX관리병, PX병에 대한 이미지를 물으면 거의 십중팔구는 이런 반응이 나온다. 


PX병? 망고 땡이지. 꿀빨잖아


일반 사병들이나 간부들이 보는 PX병의 모습은 보통 이렇다. 


1. 작업중 간식을 사러 가면 멍하니 계산대나 PX 의자에 앉아 있다
2. PX 음식을 쪽쪽대며 밥도 안먹으러 온다
3. 계산대에 서서 죽어라 물건만 팔고 계산한다
4. 물건 값을 속여서 돈을 삥땅친다

일과 시간에 작업이나 훈련 중에 보통 PX병은 참여하지 않는다. 물론 중대나 포대 단위에서는 대대단위 PX에서 물건을 받는 위탁 판매 스타일에 물량도 많지 않다. 때문에 보통 다른 주특기가 있는 사병이 PX병을 겸직하고, 평상시에는 작업을 하다가 단체로 아이스크림/음료수 회식을 하는 등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만 문을 여는 때가 많다. 하지만 대대 이상 PX병은 위탁하는 중대/포대 PX에서 물건을 받으러 오거나 수시로 군납, 민간 업자들의 납품 물량을 받아 정리하고 재고 관리를 하는 등 생각보다 일이 많다. 


많을 때는 하루에 납품 차가 대여섯 번씩 들어오기도 하는데다 각 소대/분대 단위에서 작업이나 훈련을 하다 간식을 사러 랜덤하게 방문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바쁘게 돌아간다. 게다가 가끔 맥주라도 들어오면… (이건 부대의 인원수마다 양이 다르다고 하는데, 들어왔다 하면 맥주 16병 1박스, 소주 20병 1박스 단위로 각각 100박스씩 들어오는 날도 흔하다. 주로 5톤 트럭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이를 하차하고 창고에 쟁여두는 일은 온전히 PX병의 몫. 부사수라도 있으면 좀 낫겠지만 난 상병 2호봉때부터 제대 하기 한 달 전까지 혼자 PX를 운영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낑낑대며 혼자 박스를 날라야 했다. 

너무 힘에 부치고 박스가 늦게 들어와 일과 시간 내에 못끝낼 것 같아 대대에 지원 요청을 하면 ‘하루 죙일 과자나 파는 새끼가 무슨 지원’이라는 말을 듣기 일쑤. 결국 PX에 놀러온 후임이나 동기들을 꼬셔서 몰래 라면이라도 끓여주는 댓가로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일과 시간을 수시로 넘기는 일이 다반사. 짬밥 맛없으니 식당 안올라오고 PX에서 냉동이나 라면으로 으로 밥 때우는거 아니냐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하루이틀이지… 솔직히 짬밥 맛없으면 PX에서 파는 반찬 한두개 사가지고 선후배 병사들과 나눠먹으면 그게 더 맛있고 선후임들도 좋아한다. 음식을 쪽쪽대면서 밥도 안먹으러 오는건, 업체에서 물건을 받을게 있거나 주류 박스를 나르다 시간이 지났거나, 감사 기간 등으로 밥때를 놓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일과가 끝나면 PX를 닫느냐? 에이…. PX병의 본격적인 일은 일과가 끝나고 시작이다. 사실 PX의 본업은 휴식시간에 사병과 간부들에게 간식과 유흥거리를 저렴하게 제공하고 부족한 생필품 등을 판매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일과가 끝난 시간에는 각 계급의 사병들과 간부들이 몰려들어 PX는 만원버스처럼 붐빈다. 요즘처럼 재고 관리 시스템이나 POS기가 없던 시절 계산기를 이용해 현금으로만 결제를 받다 보니 PX병은 정말 눈코뜰 새가 없다. 그러다 보니 솔직히 누가 물품을 훔쳐가는걸 보면서도 고참들 물건 계산하느라 잡지를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보통 식사가 끝난 시간부터 9시까지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게 되는데 8시부터는 서서히 사병들이 줄어든다. 그러니  식사가 끝난 보통  6시 반부터 8시 반 정도까지 PX관리병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오로지 판매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공휴일은 이러한 현상이 하루 종일 계속된다. 부대 내에 교회나 종교시설이라도 있다면 타부대 인원까지 모두 PX로 몰려들어 아비규환을 이룬다. 부사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 그렇게 장사하는 임무를 모두 마치고 9시쯤 올라오면 재빨리 샤워를 하고 취침 점호에 들어가게 된다. 보통 이런 일과가 365일 반복된다고 보면 98% 정확하다. 

그럼 PX병은 언제 쉬느냐? 원칙상 PX병 역시 50분 판매 10분 휴식을 지켜야 하지만, 가뜩이나 하루종일 논다고 갈굼당하는데 그딴게 어딨나. 하루 종일 거의 3000~4000만원 어치의 과자와 음료, 술을 재물조사 하느라, 몇백 박스의 술을 나르느라 PX문을 잠궈도, 사병은 물론 간부들은 알게 뭐냐는 식으로 가게 열라고 문을 뻥뻥 걷어차대기 일쑤. 사실 부사수가 없으면 휴가를 마음대로 갈 수도 없었다. 대대급 PX병은 육군 복지단의 업무 관리를 받으면서도 소속은 예하 부대인지라 PX 관리관이 휴가를 건의해도, 대대장이 안주면 그만이다. 


부사수가 없어 상병 1호봉때 상병휴가 외에는 8개월간 휴가를 전혀 가지 못해 관리관이 ‘휴가를 보내달라’ 건의했지만 돌아온 답은 ‘과자나 파는 놈이 무슨 휴가’ 였다. 그 말에 돌아버린 나는 병장 1호봉때 대대장 CP로 쳐들어가 ‘휴가를 보내던 부사수를 주던 영창을 보내던 바깥 좀 나가게 해달라’ 대대장에게 꼬장을 부린 결과, 1주일간 군기교육대에 다녀온 후, PX 문을 닫고 3박 4일의 휴가를 다녀올 수 있었다. 그나마 군기교육대도 우리 부대의 연병장을 군장메고 돌다가 손님이 오면. PX로 뛰어들어가 물건을 팔고 다시 군장을 도는 것...


PX병이 맘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은 보통 사병이 작업이나 훈련을 막 시작하는 아침 9시~10시와 식사 시간인 12시~12시 30분과 저녁 6시~6시 반, 사병들이 막사로 복귀해 점호를 준비해야 하는 저녁 8시 반부터 9시까지이다. 물론 이것도 그 시간에 간부나 관리관이 오면 그딴거 없고. 그러나 이때는 정말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온전히 나 하나, 기껏해야 부사수 한 명 정도 있다 보니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며 방해 없는 휴식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게다가 민간 납품 업자들과 친해 놓으면 원하는 책이나 음반도 마음껏 구할 수 있었다. 

가끔은 나르다 어디 찍혀서 터져버린 맥주를 홀짝거리기도 하는 그야말로 나만의 아지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PX병의 가장 큰 장점이랄까. 그 시간때문에 갑갑했던 PX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 그때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와 알베르 까뮈의 ‘시지프 신화’와 ‘이방인’도 읽을 수 있었고 그때 내 밥줄이 되었던 글쓰기를 처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PX병이 음식 값을 속여 차를 뽑았다’, ‘한 학기 등록금 정도를 챙겨갔다’는 등의 이야기를 믿는 분들이 있는데 이건 PX병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대대급 PX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내가 PX 생활 하면서 단일 제품을 가장 많이 팔아본게, 당시 처음 나왔던 ‘엔초’라는 아이스바인데 160명 가량이 생활하는 본부포대와 알파포대에서 많이 팔릴땐 하루 100개를 넘긴 적도 있었다. 이때 ‘PX병이 아이스크림 가격을 속인다’는 소원수리가 접수되어 육군 복지단의 모진 감사를 받아야 했다. 다행히 별 혐의를 찾지못해 개고생만 하고 끝났지만 왜 그런 소원수리가 접수되었는지는 알 것 같다. 


요즘에도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1999년~2000년도 PX는 한 달에 한 번씩 가격 공시표가 내려와 벽에 붙여놓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몇몇 제품들은 매달 가격이 몇 십원씩 오르락내리락 했다. 특히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없어지고 없었다 다시 포함되는 것들이 많다보니 이걸 봤던 사병들이 의문을 가질만은 했다. 요즘처럼 POS로 자동 계산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이런 가격을 내가 잘못 알고 말하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게다가 매일 저녁에 관리관이 판매 대금을 수거해 가는 구조에서 판매 대금을 삥땅치는건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요즘에는 민간 편의점 업체가 군에 들어오니 더더욱 이런 것을 불가능하니 이런 오해는 이제 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럼 PX병은 과연 일반 사병들이 하는 훈련을 받기는 할까? 그건 다음 회에…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PX병이었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