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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Dec 20. 2020

나는 공정하고 올바르다

고 착각하는 한 꼰대의 고백

어렸을 때부터 나는 중립적이고 공정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요즘 이야기하는 PC함(Politically Correct)이라는 단어를 조물조물해서 사람으로 만들면 그게 바로 나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대학에 들어가고 미팅이나 소개팅을 한다거나 동호회 정모를 하는 등 모르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상황이 자주 생겼다. 그런 자리에서 흔히 나오는 ‘어느 대학 다녀요?’라는질문이 나는 거슬렸다. 자기가 연대나 고대를 나왔어도 서울대 못 간걸 부끄러워할 수도 있고, 지방대나 전문대에 다닌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런 질문을 들은 날이면 친구나 후배들에게 “그런 질문 무례하지 않나. 대신 전공이 뭔지 물어보면 너도 말을 이어갈 수 있고, 그 사람도 대답하는데 문제없지 않을까?”라고 짚어주곤 했던 것 같다. 몇몇 친구들은 ‘쌔끼 유난 떠네”라며 면박을 줬지만 대부분은 ‘지적해 줘서 고맙다’며 내 의견에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 취미 밴드에 새 키보디스트를 영입했다. 첫 합주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풀이에서 이런 얘기를 하다 내가 ‘전공이 뭐예요?’라고 묻자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 상고 나왔어요. 대학은 안 갔는데요?


대학을 묻는 친구와 후배들에게 PC하지 못함을 지적하며 한껏 으쓱했을 내 얼굴이 떠오르니 당장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혹시나 저 말을 들었을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같잖게 보였을까? 이와 함께 ‘나 자신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공정하지 못하게 된다’는, 내가 술자리에서 자주 하던 말도 생각났다. 

프랑스의 문학자 루크 마르키 드 보브 나르그(Luc. Marquis de Vauvenargues)가 “자신의 가치를 거짓 없이 판단할 만큼 충분히 겸손한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자기가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니 지금 자기가 매우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공정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당장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지 깊이 생각하고 사과할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보자. 으슥한 밤에 뒤통수 맞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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