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cis Dec 21. 2020

나님은 괴팍하고 제멋대로인 사람

B형 남자친구와 MBTI로 탄생한 너드

주일학교 교사를 꽤 오래 했다. 애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평생 잘 한일 중 하나로 8년 동안 해온 주일학교 교사가 생각나는 걸 보면 그 시간이 나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긴 했나 보다. 하지만 마냥 좋을 수만 있겠나. 지금도 트라우마가 되는 안 좋은 경험을 겪은 것도 그때였다. 


교사들끼리 겨울 엠티 삼아 단체로 피정을 갔었다. 주제는 ‘나 자신을 정확히 알기’. 이때 신부님께서 전문 적으로 상담 교육을 받은 청소년 상담사를 초빙해 1박 2일 동안 MBTI 상담을 했었다. MBTI 상담은 요즘 다시 유행하고 있는 인터넷 MBTI와는 조금 다르다. 단순히 문제를 풀고, 결과에 따라 ‘너는  이거다’라고 알려주는 게 아니라, 한 그룹씩 자신의 성격과 각각 네 가지 성향 점수에 따른 치중도에 따라 개인 상담과 그룹 상담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단점은 조금씩 보완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개인 상담 시간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도 잘 몰랐던 내 성격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갑자기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둘러대며 회피해버리는 등 내 방어기제 등을 파악하고 그러한 일을 최대한 피할 수 있도록 앞으로 어떤 걸 준비하면 좋을지 상담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테스트 만으로 열다섯 명의 교사 중 크게 ESFJ와 ISTJ가 합쳐 거의 10명 정도였고 나머지 다섯 명은  ESFJ 넷, ISTJ 한 명이 나왔다. 강당에 함께 모여 각각 성격 유형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들었다. 다른 성격 유형도 함께 알면 그 사람들을 평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취지. 그런데 개인의 성향을 하나씩 발표하며 분위기가 묘해졌다. 


현장은 열광의 도가니. ‘신나고 재미있는 일을 추구하며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 능력이 강하다’는 설명에, 전체 중 7명이나 되었던 ESFJ 유형들은 열광했다. 마침 당시 신부님은 친절하고 자상하면서도 쾌활한 태도로 교사는 물론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데다, 당시 교사회 분위기를 리드하며 여러 가지 중재를 도맡았던 교사 한 명도 ESFJ 유형이어서 더욱 분위기는 뜨거웠다. 


문제는 그룹 상담시간에 벌어졌다. 당시. ‘만능 손재주 형에 남들과 다른 개성을 뽐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을 서슴지 않는 모험가 타입’이라 쓰여있는 INTP 성격을 선생님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손재주가 많으나 하나에 꽂히면 다른 일은 안중에 없고, 
분위기에 안 맞는 의견을 제시하며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다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했다. 선생님은 ‘이들은 집단에서 잘 어울리지 못할 수 있어 다른 성격 유형들이 많이 챙겨줘야 한다’며 아주 불에 기름을 부어댔다. 이후 계속 이어지는 대화에서도 INTP는 계속 ‘너드’화 되었으며, INTP 유형을 사회 부적응자 취급을 하는 말에 화라도 내면 ‘야 우리가 이해하자. 잘못했어’라며 웃음거리가 되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 계속 생각났던 피정이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성당 주일학교 교사 엠티에서 재현됨 (출처: 영화 '엑스페리멘트' 캡처)

돌려서 말하는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괜히 돌려 말하면 진도만 더디고 효율이 떨어지지 않나. 감정 빼고 담백하게 말하면 받아들이는 것도 수월할 거고. 이러한 태도 덕에 교사회에서 나는 싫은 소리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쩌나. 월급 받고 일하는데 못하면 징계를 내리던가 무슨 조치를 취하면 되지만, 봉사로 하는 건데 누구 하나가 일을 게을리하거나 꼼수를 쓰고, 교사로서 이미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전체 교사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도 있지 않나. 

어느 날 매번 미사 끝나고 마당에서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교리 수업에 늦게 들어가는 교사 한 명을 교리실로 따로 불러 강한 어조로 지적을 하고, 나도 화난 마음을 잠시 가라앉히고  그 친구를 먼저 내보냈다.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나와 동갑이었던 교사가 그 친구를 위로하는 소리를 들었다. 


괜찮아. 네가 받아들이고 이해해. 걔 B형이잖아


B형이면 잘생겨도 이혼하는 듯 (출처: 영화 'B형 남자친구')

고작 알파벳 몇 글자로 사람을 규정짓는 말도 안 되는 짓들이 대중에게 인기를 얻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디 어느 부서에서 일하는 김 차장, 비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김태희, 무한도전의 버럭 큰형 박명수, 2019 수능 만점자 김수성 … 우리는 자신의 이름보다는 항상 나 자신을 규정하는 타이틀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여기서 가장 범하기 쉬운 오류가 자신이 기억하는 타이틀로 사람을 규정하는 일이다. 나 역시 벌써 ‘INTP’, ‘B형’이라는 원치 않는 타이틀로 두 번이나 규정당했다. 이러한 규정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그들에게 아무리 뭐라고 해봤자 그러한 규정에 벗어날 길은 없다. ‘왜 나를 규정하냐’며 따져봐야 ‘예민하고 까칠한 애’라는 타이틀만 추가될 뿐. 고민해 본 결과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내가 기억되고 싶은 그럴싸한 타이틀로 다시 그들에게 규정되는 수밖에. 그런데 뭐 연예인이나 유명인사가 되지 않는 이상 박힌 이미지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거고. 


그럼 남은 건 다른 한 방법뿐. 무시하자. 어차피 말도 안 되고 내가 원치도 않는 이미지로 나를 규정하는 사람들은 보통 잠깐 재미로 그러다 잊어버린다. 계속 그러면 내가 안 보면 그만이고. 뭐라 하건 말건 내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즐겁게 살면 그만이지. 나에게 젠틀한 사람들 챙기고 잘해주기도 모자란 시간인데, 그런 떨거지들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지 않나. 어차피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과 배두나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리랜서가 자유롭다는 오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