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cis Apr 13. 2021

제주 자전거 투어 #3: 셀프메이드 돔베고기 수육

여행에서 직접 해먹은 요리에 대한 즐거웠던 기억

이명진 비평가님과 록샨 형님이 준비해준 게스트하우스 조식 스페샬. 나 혼자만을 위한 식사라 더욱 고마웠다

전날 작가님들 이야기를 듣다 늦게서야 잠이 들었지만 아침의 찬 공기에 7시가 좀 안되어 깨어났다. 그냥 아침은 패스하려 했지만 스태프 록샨 형님이 삶아주신 달걀과 이명진 비평가님이 준비해 주신 토스트와 과일로 든든히 아침을 먹고 힘차게 출발.

아따 바람 무지하게 분다잉...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지 않을 지경

그런데 전날 어쩌다 무리하게 달린 100km가 아무래도 무리였을까?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종아리와 허리, 허벅지야 그렇다 치는데 생각보다 어깨와 팔뚝이 엄청 쑤시다. 며칠 내내 자전거 핸들을 붙들고 같은 포즈로 있어서 그런가보다. 일단 오늘 점심 식사 목적지인 세화 오일장으로 내달려 보지만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 쉽지 않다. 

저 엽서를 작성해 우체통에 넣으면 카페에서 부쳐준다

장터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네? 마침 원고 수정 건이 있어서 세화 오일장 입구 앞 해변을 마당삼은 ‘카페 라라라’에 자리잡았다. 바람이 차서 몸이 으슬으슬해 에스프레소 샷을 넣은 핫초코를 주문. 차를 주문하니 색연필과 엽서를 준다. 여기에 이것저것 적어 가게 앞 우체통에 넣으면 1~2개월 내에 배달해 준다네. 여자친구도 없고 하니 가족 건강하란 메세지를 슥슥 적어 한 번 넣어본다. 

원래 세화오일장은 국밥이 유명하다는데, 사람이 많아서 먹을 수 가 없더라

원고 수정을 모두 마친 후 배가 고파 슬슬 장터로 들어가보니 사람이 바글바글. 원래 장터 내 국밥과 떡볶이, 피순대가 유명한데 거긴 사람이 너무 많아 앉을 틈도 없다. 코로나때문에 좀 찜찜하기도 해서 장터 바깥에 있는 은성식당에 들어갔다. 좀 특이한걸 먹어볼까 고민하다 생전 처음 들어본 ‘각재기국’과 ‘새끼보’를 주문했다. 

오른쪽 구석에 보이는게 새끼보, 가운데가 각재기국이다. 저래뵈어도 국물 맛은 끝내줌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음식… 뭔가 선뜻 손이 안가는 비주얼이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새끼보는 돼지의 태반이고 각재기국은 ‘전갱이’ 한마리를 얼갈이 배추와 맑은 생선 국물에 통채로 넣어 끓여낸 국이다. 새끼보는 좀 꼬리꼬리한 냄새가 나서 많이 먹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갱이국은 충격적인 비주얼에 비해 국물이 시원하고 맛도 좋더라. 전갱이 살도 부들부들하고…

김녕 부근의 해변. 바람때문에 모래가 도로위로 올라와 사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비닐과 모래주머니로 덮어놓았다

어찌됐건 식사를 즐겁게 마친 후 인파를 뒤로하고 숙소로 예약한 김녕 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바람이 심하지만 월정리에서 김녕으로 향하는 해안에 구성된 사구와 멋진 해변의 모습에 그래도 좀 힘이 난다. 

오늘까지 빡세게 달리고 밤에 빡세게 놀았다가는 몸살 날 것 같아 오늘은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작은 단독 펜션을 잡았다. 그런데 3만원 좀 넘는 싼 값이라 그런가? 근처에 식당이고 카페고 편의시설이 아무 것도 없더라. 가장 가까운 매점이 자전거로 20분 거리에 있는 하나로마트. 그때 몇년 전 도쿄 여행이 생각났다. 

1일 만찬을 위한 성대한 재료들

그때 마땅히 땡기는 식당도 없는데다 마침 숙소가 간단한 주방을 갖춘 곳이어서 이것저것 음식을 해먹었던 기억이 꽤 좋았다. 그래. 오늘도 맛있는걸 해먹어보자. 하나로마트서 1~2인분 정도 살 수 있는 재료로 조합해본 메뉴는 흑돼지 보쌈과 냉면. 그래도 이것 저것 사니 양이 상당하다.

쌈장 양념 사골육수 수육은 이제 나만의 고유한 레시피!

특별한 양념 같은 것이 없어 냄비에 파를 깐 후 청양고추 두 개와 쌈장 한숟갈을 퍼넣고 990원짜리 사골 곰탕과 물, 소주 두 잔을 부어 껍질이 붙어있는 흑돼지 앞다리살 400g을 넣고 끓였다. 

해변이 보이는 부얶에서 나혼자 만찬. 저 고기 자태 좀 보소

한 50분 정도 삶아 일단 반도막을 도마에 꺼내어 썰어내니 영락없는 제주 흑돼지 돔베고기다. 재료비 1만원 이하에 완성!! 150원짜리 새우젓 소스와 쌈장을 곁들이니 천국이구나. 게다가 바닷가가 보이는 저녁 식탁에 혼자지만 기분이 몇 배로 업된다. 

고기가 물릴 즈음 물냉면으로 리셋하는 것은 법으로 정해진 사안

김치 같은게 없으니 좀 느끼하다. 나머지 반도막을 꺼내어 썬 다음 얇게 저며낸 파를 얹고 거기에 팔도 비빔장을 뿌려본다. 냉면을 삶아 비빔장을 올린 후 미리 냉동고에 넣어놓았던 냉면 육수를 부어 함께 먹으니 남은 소주를 싹싹 비워내기 부족함이 없다.  번 여행 내내 먹었던 음식 중 셀프메이드 돔베고기가 제일 맛이 좋았다. 또 이렇게 좋은 기억으로 하루를 채우는구나. 다음번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제주환장자전거길 일주 3일차 요약

-이전글: 제주 자전거 투어 #2: 3번의 고백, 어쩌다 북콘서트

-코스: 비욘드게스트하우스-신풍포구-신양포구-종달리 해변-세화오일장-월정리 해변-김녕해수욕장

-거리: 약 52km

-들른 곳: 세화오일장, 종달리 수국길

-마신 술: 제주펠롱에일, 한라산 500ml PET

-기억나는거: 셀프메이드 제주 흑돼지 돔베고기 수육

-다음 글: 제주 자전거 투어 #4: 일주 끝나고 남는거? 없음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 자전거 투어 #2: 3번의 고백, 어쩌다 북콘서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