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한끼

인도에서 생일상으로 탈리를 받았다

내 생일 4월 14일, 2021년엔 짜장면 대신 인도 스타일로

by Francis

내게 있어 이번 주는 소위 ‘생일 주간’이다. 무슨 자의식 과잉인가 하겠지만 여기저기 지인들과 교류도 많아 생일 파티 같은 거 할 일도 많고 하다 보니 거의 1주일은 이런저런 파티 타임으로 보내게 된다. 이런 난장판을 굳이 스스로 ‘생일 주간’으로 정한 이유는, 이 중 하루를 온전한 나만의 시간으로 보내려는 어떤 루틴을 가지려 하기 때문이다.

우주 정거장에서 은퇴하는 캐나다 우주비행사 크리스 헷필드가 부른 <Space Oddity>

가능하면 생일 주간에 겹쳐 해외여행을 가려한 적이 있었다. 낯선 곳에서 생일을 맞이하면 그 기분은 묘한 설레임과 함께온다. 뭐 요즘은 통신이 다 터지다 보니 생일 축하 문자나 카톡, SNS는 밀려들어오는데 막상 그 사람들과는 멀리 떨어진 우주 같은 공간에 나 홀로 있는 적적한 느낌. 이럴 땐 괜히 David Bowie의 <Space Oddity> 같은 노래를 틀어놓고 생전 처음 보는 브랜드의 맥주를 한 캔 까서 즐겨 보기도 하고…


IMG_7198.JPG 2017년 생일 주간 도쿄에서 마셨던 이름 모를 오키나와 맥주

그렇게 청승을 떨다가 기분이 다운되면 밖으로 나간다. 아무 술집이나 바에 들어가 ‘저 오늘 생일이에요’하고 이야기하면 최소한 바텐더만큼은 축하를 해주더라. 우연히 일이 커져 태국에서 골든벨을 울렸던 기억도 나고…

여하간 요즘 같은 상황에는 어딜 쉬이 떠나긴 쉽지 않다. 제주 여행도 일 때문에 생일 주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고… 이번 생일 주간에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내가 처음으로 떠나는 기쁨을 느꼈던 그곳으로 잠시 타임워프 해보기로 했다.

GettyImages-504342172-59b7de646f53ba001179ddb4.jpg 출처: https://www.tripsavvy.com

지금도 인도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내가 떠났던 2000년대 초반은 더욱 그랬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에 인터넷이 어디서든 터지던 상황도 아니었고, 오로지 여행 가이드북과 미리 프린트해간 지도 같은 것에만 모든 것을 의존해야 했다. 인천 공항에서 홍콩을 들러 델리까지 총 10시간의 비행과 공항에서 미심쩍은 택시를 잡아타고 파하르간즈 여행자 거리까지 간신히 도착. 긴장과 불안감 때문일까? 도착하자마자 기절해 버렸던 나는 시차 때문에 여느 때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인도 거리로 나왔다.

Aahaar-Indian-Cuisine.jpeg 그때 찍은 건 전부 필름 사진이라 지금 찾기가 힘드네. 대충 요런 걸 먹었던 것 같다

얼마 걸은지도 안되어서 배에서 나는 쪼르륵 소리… 그러고 보니 전날 기내식 빼고는 아무것도 안 먹었네? 그때 식당에 들어가 처음으로 주문했던 인도 음식이 ‘탈리’(Thali, थाली)다. 처음 나온 탈리에서 제일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반찬을 먹었더니 갑자기 아버지의 스킨 맛이 확 나서 그날 하루는 입맛을 싹 버렸더랬지.

IMG_2244.JPG 나마스떼~

이번 생일 주간 나만의 여행으로 찾은 곳은 동대문 창신동의 에베레스트. 예전엔 그냥 에베레스트라고 했는데 이제는 아예 ‘에베레스트 커리 월드’라고 이름을 바꾸었구나. 인도 여행을 다녀온 후 처음 여길 찾았을 때, 주방의 바 테이블에 해당하는 곳에서 누워 자고 있던 인도인 요리사가 준 충격은 지금도 유효했다.

IMG_2233.JPG 아... 묘~하게 촌스런 이 인도의 분위기라니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지금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고, 깔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영어나 한국말은 어눌한 종업원이 나를 반긴다. 서로 버버버 하며 탈리를 주문한다. 탈리는 한국 식으로 치면 ‘가정식 백반’에 해당하는 메뉴다. 다양한 종류의 커리와 반찬들이 밥이나 난과 함께 나오는 구성인데, 인도에서는 천 원 정도에 먹던걸 여기선 15,000원에 먹으려니 또 좀 아까운 마음도 들고. 인도 라거 맥주 킹피셔도 한 병 주문 했다.

IMG_2232.JPG 20년 만에 맛본 킹피셔. 의외로 맛있네?

주문하자마자 인도식 절임 요리인 아차르와 함께 킹피셔가 잽싸게 나온다. 그 사람 참… 요리랑 함께 달라니깐… 일단 까서 한 모금 넘겨보니 괜찮다. 인도에서는 킹피셔가 드럽게 맛이 없어서 꼭 버드와이저를 시켰었는데, 아마 그땐 덜 차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맥주 한 병을 거의 다 마시니 어느새 탈리 한상이 내 앞에 거하게 차려졌다.

IMG_2235.JPG 1번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머튼티카마살라, 파니르버터마살라, 달, 플레인더히, 아차르, 파파드

사실 인도 요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비슷비슷한 커리 세 종류가 나온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게 하나하나 맛이 다 다르다. 1번은 머튼 티카 마살라. 한국말로는 양고기 커리다.

IMG_2238.JPG 머튼티카마살라. 양고기가 꽤 많이 들어있다

고기가 듬뿍 들어서 그런지 묵직한 맛. 인도에서는 소를 먹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보통 양고기나 닭고기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채식 메뉴를 고르면 감자 커리로 대체된다.

2번이 파니르 버터 마살라. 파니르가 양젖을 발효시켜 만든 인도식 치즈니까 이 녀석은 치즈 커리인 셈이다. 사진에 노랗게 뿌려진 것이 인도식 양젖 버터 ‘기’(Ghee)다. 소금이 들어가 있지 않고 일반 버터보다 몸에 좋다고 하는데, 고소한 맛은 확 올라가는 듯. 이 녀석은 살짝 매운데 고소한 치즈가 그 자극을 잡아준다.

IMG_2240.JPG 부드럽게 씹히는 치즈가 재미있었던 파니르버터마살라

3번은 ‘달’(Dal, दाल)이라는 인도식 비지 찌개랄까. 렌즈콩 같은 것을 갈아 인도의 향신료인 마살라와 함께 끓여낸 것이랜다. 다른 커리는 난에 찍어먹는 게 낫지만, 이 녀석은 난에 찍어먹기보다는 그냥 조금씩 퍼먹는 게 고소하니 맛있더라. 먹다 보니 난이 좀 모자란 느낌이 있어 버터 난을 하나 추가했는데, 기(Ghee)에 부쳐 나오는 건지 아 더럽게 느끼하더라.

덕분에 잘 먹지 않던 아차르를 연신 씹어댔다. 내가 인도에서 처음 탈리를 시켰을 때 먹었던, 아버지 스킨 냄새나는 반찬이 바로 5번 아차르. 4번은 요플레 같은 인도식 요거트 '플레인 더히'다. 6번은 파파드라는 얇은 칩인데 묘한 향신료 냄새가 나는 칩스. 이거를 요거트에 찍어먹으니 괜찮더라. 아... 저 약간 마른 오이는 좀 에러. 어디다 찍어먹어도 별로다. 그래도 어디 하나는 좀 어설퍼야 인도 스럽지....

IMG_2243.JPG 양꼬치집 쯔란과 비슷한 커민과 작은 알설탕을 한꺼번에 털어 넣는 인도식 디저트

식당에는 묘한 인도 음악이 흐르고… 커리를 싹싹 비우고 맥주도 한 잔 했겠다, 계산한 후 한국으로 치면 박하사탕인 큐민+알설탕을 입에 탁 털어 넣으니 어느새 나는 뉴델리 파하르간즈 한가운데 있다. 문을 나서는 내게 종업원이 건네는 한마디.

마시써써?

그래 마시썼다 이 녀석아~ 담에 인도 생각나면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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