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사진 골목떡볶이 노점과 낙원상가 추어탕집
아무리 유명한 맛집이어도 음식이 꼭 내 입에 맞으라는 법은 없다. 사실 입맛이야 제각각이고, 음식의 이름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기본적인 맛들이 나고 간만 적절한 데다 신선한 재료와 1인분의 양만 적절하다면 그다음부터는 개인 취향의 영역. 하지만, 지저분하거나 상한 재료를 쓰는 게 아닌 이상 절대 욕할 수 없는 두 개의 식당을 알고 있다.
첫 번째 가게는 충무로 사진 골목 안쪽에 있는 포장마차 떡볶이. 충무로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던 2006년, 나는 돈이 없었다. 학자금 융자 갚고 부모님 용돈 드리고 어쩌고 하면 내 수중에 남는 돈은 한 4~50만 원? 이 돈으로 교통비와 전화 요금, 인터넷 요금을 감당하고 나면 결국 30만 원 언저리에서 모든 용돈을 해결해야 했다. 게다가 밴드 생활까지 하려면 결국 줄여야 하는 건 식비. 다행히도 김영란법이 없던 시절 기자간담회 등에서 점심 식사를 해결하는 일이 많았지만 그런 일이 없을 때면 나는 무조건 충무로 떡볶이집을 찾아갔다.
당시도 나이가 좀 있었던 부부가 운영하는 당시 그 집의 가격은 충격적이었다. 개당 한 25cm쯤 되는 오징어 튀김이나 두툼한 김말이, 알싸한 고추튀김 등 아무거나 골라서 세 개에 천 원, 어린 생 깻잎을 듬뿍 넣은 떡볶이 한 사발에 천 원. 떡볶이 한 사발 먹으면 어느 정도 배를 채울 수 있었고 뭔가 좀 아쉽지 싶을 때 튀김을 두 개 정도 먹으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좀 특이했던 점은, 세 개 천원인 튀김을 두 개 먹으면 어느 날은 600원, 어느 날은 700원을 받으시더라.
1주일에 두세 번씩 점심을 그 집에서 해결하다 보니 대충 주머니 사정을 눈치챈 아저씨는 이미 조리된 김말이에 당면을 덧대고 깻잎으로 감싸 뚱뚱하게 만들어 한 번 더 튀긴 후 내 앞에 놓아주고 같은 값만 받고는 했다.
2009년 잡지사를 떠난 이후, 충무로를 들러 음료수 두 개를 사드리고 인사하니 그 무뚝뚝한 두 분이 ‘아 그 돈 없던 총각!’ 하면서 알아보시더라고. 주문도 안 했는데 예전에 먹던 레시피대로 아주머니가 내주신 튀김 두 개를 비빈 떡볶이, 이미 점심을 먹고 와서 배가 불렀지만 남길 수가 없더라고. 다 먹고 인사를 남긴 후 2,000원을 내미니 아주머니가 ‘아녀. 아녀. 이건 내가 그냥 주는 거야’ 하며 손사래를 치신다. 아주머니 앞주머니에 돈을 팍 꽂고 도망갔지만 끝까지 쫓아와 돈을 돌려주셨던 아주머니. 지금도 충무로에 들를 때면 그 집 앞을 꼭 한 번씩 들러 튀김을 집어먹고 가곤 한다.
이 집은 주문하면 생깻잎을 바로 넣어 주는 떡볶이가 특징이다. 신기하게 내가 다닌 것만 20년인데, 아직도 두 분이 떡볶이 내는 방법이 다르다. 아저씨는 떡볶이를 깻잎 통에 넣어 휘휘 저어 퍼주고, 아주머니는 그릇에 깻잎을 깔고 그 위에 떡볶이를 퍼내신다. 튀김을 집게로 바로 집어 간장에 찍어먹는 맛도 일품이다. 튀김 맛도 맛이지만, 찍어먹는 간장 양념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아주머니에게 비법을 물었지만 그냥 웃기만 하더라. (나중에 간장 배합하는 걸 봤는데, 그냥 진간장을 물로 묽게 한 것…)
아, 지금은 떡볶이 1인분에 2,500원인가 2,000원인가 그렇고 튀김은 세 개에 2,000원이다. 워낙 양이 많아서 지금도 꽤 싼 가격이니 괜히 이 글 보고 1인분이 왜 천원이 아니냐고 우기지 말자.
두 번째 가게는 낙원상가의 추어탕집. 낙원상가 빌딩 아래 꼬질꼬질한 골목 초입에 들어서면 보이는 이 집의 식사 메뉴는 오로지 하나, ‘우거지 얼큰탕’이다. 가게에 들어서서 자리를 잡으면 묻지도 않고 가마솥에서 바로 한 국자 떠서 후추를 뿌린 우거지 얼큰탕과 고봉밥 한 그릇, 깍두기를 턱 놓아두시고 사라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영 빈약하다 멀건 국물에 어정쩡한 우거지 건더기, 듬성듬성 떠있는 두부… 자세히 보면 왠지 넣기 싫어지는 고춧가루를 넣고 먹어보면, 어? 제법 맛이 괜찮네? 영 허여멀건한 깍두기도 일단 먹어보면 의외로 아삭하니 상큼한 게 맛있다. 슬금슬금 퍼먹다 보면 당신도 어느새 밥을 다 말아서 퍽퍽 퍼먹게 될 것이다. 아, 처음 국물 맛을 본 후, 술을 마실 수 있다면 한 번 외쳐보자.
소주 반 병이요
이 집은 소주 반 병을 판다. 냉장고를 가만히 살펴보면 깨끗이 씻은 병에 반으로 나눠 잔으로 뚜껑을 덮어놓은 소주병들을 볼 수 있다. 술꾼의 가장 알맞은 반주의 양이 소주 세 잔이라고 했던가. 역시 경험의 힘은 위대하구나.
이 집은 송해 선생님의 단골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무려 1951년 1.4 후퇴 이후부터 이 집을 하셨다고 한다. 내가 처음 왔던 때는 1996년 한참 대학교 음악 동아리 생활을 하며 낙원상가를 들락거릴 때였는데, 당시 우거지 얼큰탕 한 그릇이 1000원이었다. 친구와 함께 국밥 한 그릇에 소주 반 병 먹으면 추운 겨울날도 후끈후끈 알딸딸 아주 기분이 좋았더랬지. 25년이 지난 지금도, 가격은 한 그릇 2,000원이다. 낙원상가 부근에도 맛집이 엄청나게 많아졌지만 처음 이 집에서 우거지 얼큰탕과 소주를 마셨을 때 기분만큼 즐겁지는 않았다.
사실 이런 집들은 맛도 맛이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와 주머니에 부담이 없다는 기분으로 가는 일이 많다. 마음에 안 들면 앞으로 안 가면 그만. 1000원 2000원 오락가락하는 이 음식에 욕을 해서 뭐하나… 몇 년 전 우거지 얼큰탕을 먹던 중 다른 테이블의 어떤 아저씨가 소리를 버럭 지르더라.
아니, 이런 걸 사람 먹으라고 내주는 거야?
맛이 왜 이리 거지 같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인에게 삿대질을 하는데 주인은 웃기만 하더라. 그러던 중 화를 못참은 어떤 할아버지가 일어나 숟가락으로 머리통을 때리며 소리쳤다.
야이 새끼야. 한 그릇 이만 원이면 아주 주인 때려 죽이겠다
순간 가게 안은 웃음바다가 됐고 그 아저씨는 얼굴이 시뻘개져 자리를 떠났다.
우리가 식당에 갈 때 기가 막힌 맛은 물론 끝내주는 서비스를 받고 싶은 마음도 가져가는게 보통이다. 그런데, 맛은 그렇다 쳐도 흔히 이야기하는 '친절한 미소와 공손한 태도'로 대변되는 끝내주는 서비스가 과연 당연한걸까?
우리가 식당에 내는 돈은 음식과 그 음식을 먹기 위한 기본적인 서비스를 포함한 가격이다. 거기에 생명만큼 고귀한 '한 사람의 영혼의 값'은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예전 ‘혼고기로 깨달은 말 한마디의 힘’에서 처럼 친절한 배려와 감동 섞인 말 한마디가 담긴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베푼 친절일 뿐. 그런걸 못 받았다고 서운해하고 화를 내는건 욕심이 너무 큰거지. (그게 아니라고, 당연히 영혼의 값도 포함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 이딴 글 읽지 말고 사이코패스 테스트부터 받아보기를 권장한다.)
충무로 떡볶이집과 낙원상가 추어탕집은 이미 가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 가치를 다하는 집이다. 이 집에서 한 그릇의 떡볶이나 국밥을 먹으면서 우리가 흡수한 정서와 그 기운만도 그 돈 몇 푼은 넘지 않을까? 그게 싫었다면 그냥 안 가면 그만인 거고. 아… 그나저나 이렇게 쓰다 보니 우거지 얼큰탕이랑 깻잎 떡볶이, 튀김이 너무 먹고 싶구나.
덧) 참고로, 낙원상가 추어탕집에 추어탕은 없다. 이제 사장님도 이런 질문받기 귀찮으셨는지 30년 만에 간판을 바꾸셨음